DMZ의 검독수리와 파헬벨의 <캐논>

콘모토의 명상적 음악듣기_01

by 콘모토

어언 20년 전 이야기다. 바야흐로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이른바 ‘카페’)가 폭발적 인기를 끌던 무렵 나는 직장인이 주축이 된 클래식음악 동호회의 운영자로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오로지 닉네임 하나로만 통하던 온라인 친교의 꿀재미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그 무렵 심심풀이 대화의 주제 중에 ‘딱 5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슨 음악을 들을 것이며, 그 이유는 뭣인가’ 하는 것이 있었다.


나의 답은 파헬벨의 <캐논>을 듣겠다는 것이었고, 그 이유로 온라인 게시판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나는 군대생활을 비무장지대에서 했어요. 경기도와 강원도가 만나는 중부전선 XX사단의 GP(감시초소). 아름답지요. 수십 년 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태고의 신비함. 말하자면 원초적 아름다움입니다.

넓게 펼쳐진 개활지 사이로 군데군데 늪과 소沼가 자리 잡고 개활지 너머 둔덕에선 인민군들이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갈대밭 사이로 노루 떼가 뛰놀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검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선회하지요.


이십대 중반을 넘기며 아직껏 벗지 못한 학생이란 딱지가 너무 지겹고 부담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왜 월남전은 그렇게 일찍 끝나버렸던가?”라고 치기 어린 탄식까지 해가며 입대를 했던 것인데 덜컥 비무장지대로 배속을 받게 된 것이었어요.

내겐 구원이었지요! 24시간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들고 양 가슴엔 고구마 덩어리 같은 수류탄을 매달고 지내는 생활. 그것이 그 당시의 내겐 뭐랄까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답니다. 도서관의 책장을 드나들며 관념의 늪을 헤매던 몸과 맘에 변화된 일상의 ‘치열함’이 신선하고 건강한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만일 어느 후방 교육사단에서 뻑뻑한 내무생활을 하며 줄창 훈련이나 받고 있었다면 아마 군생활에 적응을 못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제대를 한 일 년쯤 남기고 늘그막에 고생하는 노병(?)이 안쓰러웠는지 대대장으로부터 연대본부 상황실(이라고해도 GOP 내부이지만)로 파견을 명 받았어요.

무전기와 통합전화기 같은 통신장비들이 어지럽게 놓인 사이로 다 떨어진 FM 라디오가 한 대 있더군요. 적정을 예의주시하며 상황근무 중이었는데.. 아, 어디선가 희미하게 캐논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운이 좋았던지 춘천 쪽에서 날아오는 FM전파가 감지되었던 모양이에요. 천상의 소리였어요! 난 재빨리 라디오를 부둥켜안고 코딱지만 한 상황실의 책상 밑으로 쭈그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눈을 감았습니다. 캐논이 다 흘러갔을 때쯤 제 가슴도 눈동자도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전 생애(?)를 통해 음악소리에 가장 순수하게 감응한 한 순간이었지요."



아침에 일어나 장 프랑스와 파야르가 지휘하는 캐논을 들으며 문득 이십 년 전 온라인 게시판에서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새천년의 개막을 앞둔 1999년 마지막 날 동호회 회원들은 소위 밀레니엄 버그로 인해 인터넷 세상에 재앙적 혼돈이 닥칠지 모르고 자칫하면 우리가 쌓아 올린 가상의 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며 제법 비장한 마음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내렸다.


새로운 천 년은 싱거울 만큼 아무 일 없이 밝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치 새 밀레니엄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십 수년간 몸 담았던 음반사를 떠나 민간오케스트라의 매니저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 공사립 몇몇 오케스트라를 전전하다 이제 마침내 호시절을 맞아 세상사람들이 꿈꾸는 슬로우 라이프(?)를 이루게 되었다.


예술의 향수란 어차피 한가한 사람들의 몫이니 이제부터 천천히 지난 수첩 뒤져가며 한가로운 얘기들을 해볼까 한다.




에라토(Erato) 레이블로 나온 파야르의 연주는 내가 생각하는 캐논의 결정반이다. 유연하고 서정적인 연주. 어쩌면 지나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완만한 기분을 현의 피치카토가 중심을 잡아주며 편안한 이완감을 준다. 아침보다 저녁에 들으면 더욱 좋을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