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

[오십, 연약함의 힘]

by 연우의 뜰


나의시댁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용두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개천표용’을 만나서 결혼했다. 한 번도 서울을떠나 본 적 없는 나는 처음 시부모님께 인사 드리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단 한 장으로 황소바람에 맞서방 온기를 지키던 창호지 문. 눅눅하고 퀴퀴한 살림살이와 이불들.비릿한 젓갈 냄새에 나도 모르게코를 막았던 밥상. 나는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의 여느 며느리처럼 명절이나 제사가 다가오면 두통, 설사, 변비에 시달렸다. 한번은 구제역으로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 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께는 못 내려가서 안타깝다고 말씀 드렸지만 속마음은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처음본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담뱃잎이었다. 잎이 얼마나 큰지 이불처럼 내 몸을 덮고도 남았다. 시부모님은 담배농사를 지어서 벌은 돈으로 사 남매를 키우셨다. 농부들이 가장 꺼리는 일이 담배재배라고 한다. 따가운 봄볕에담배를 심고 한여름 제일 뜨거운 뙤약볕에서 담뱃잎을 하나 하나 따서 건조장에서 말려야 하는데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는 전량 수매가 되어 수입이 확실하니 자식들 등록금 마련하고 시집장가 보내려면 이만한 일도 없어서다. 땀에 흠뻑 젖어축 늘어진 옷에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가 굽은 채 종종걸음으로 오시는 어머님 모습을 본 후로는 나의 명절증후군은 말끔히 사라졌다. 감히 누가 저렇게고단한 어머니 앞에서 꾀를 부릴 수 있을까.


시어머니는농사의 달인이다. 일 년 열두 달 중 겨울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들에 나가신다.대파작업, 양파작업, 수박순치기, 복분자와 불루베리수확까지. 일당도 10만원이 넘는다고 늘 자랑하신다."블루베리는 까맣게잘 익은 놈으로 따야 달달하제. 열매를 살살잡고 똑 소리나게 따야제""흔들어 따면 매실이성낸다. 얌전하게 모시듯 따야제" 손이 야무지신 어머님은 열매마다 따는 법이 따로 있다고했다.


나를설레게 하는 것도 있었다. 마을 가장 안쪽 오르막길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마당이 아늑하고 탐스러웠다. 산모퉁이를 돌면서봄이 찾아오면 매화 산수유 진달래 벚꽃들이 순서대로 살랑살랑 댔다. 무더위 속에서도 석 달 열흘 내내 피는 배롱나무꽃은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연락 없이 내려간 날엔 활짝 핀 접시꽃들이 미어캣처럼 허리를 곧게 펴고 마중 나와 있었다. 홀로 남은 날, 대청마루에 가만히앉아 있으면 뒤란 병풍처럼 펼쳐진 푸른 대밭에서 서늘하고 청아한 바람이 불어왔다.오디와 버찌가 검붉게 익어가고보리수와 석류가 탱글 탱글 영글었다. 여름이 물러간 자리에는 나무마다 감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찬 공기가 몰려오면가지마다 서리꽃이 피었다. 그런 날은 더 맑고 따뜻했다.


나는맏며느리다. 하지만 손주를 안겨드리지 못했다. 나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마당의 꽃을 바라보고 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책도 읽어주고 싶었다. 이 평범한 일이 나에겐 얼마나 간절했는지. 이젠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 되었지만. 10년 전 폐암으로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죄송한 마음에 영정 앞에서 한없이 울었다. 홀로 남겨진어머님이 안쓰러워 더 자주 내려갔다. 유난히 뜨겁던 어느 여름,휴가를 고창에서 어머님과 함께보내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어머님의 전화였다. "현경아,나중에 알게 되면 니 섭섭할까봐전화했다. 둘째가 임신했다지 않냐. 3개월 되었는디 처음엔 기쁘다만 니가 어찌나 짠하든지. 얼굴 보니 더말이 안나오드라. 나는 현경이 니가 1번이다.내 말이 참말이다잉”



고창 어머님.jpg [10년전 강아지를 처음 맞이하던 날, 시어머님의 모습입니다.]


닭발 같은 손을흔들며 배웅하시던 어머님 모습이 순간 애틋하고 처연하게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 안아드리고 싶었다. 백 년도 채 못되는 삶에서 한 사람의 보물1호로 살고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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