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이 제철이다. 연한 새순으로 솟아오른 뒤 열흘이면 키 큰 대나무로 자라기 때문에 유월까지 수확을 마쳐야 한다. 시중에서는 잘 볼 수 없고 비싸지만, 고창 시댁 뒤란에는 지천이다. 죽순을 캐서 밑동을 치고, 길게 반으로 자르면 속살이 하얗게 드러난다. 껍질을 전부 벗기고 한 시간 정도 푹 삶아야 한다. 밥에 넣고, 나물도 하고, 탕으로 끓이는데, 나는 들깨 죽순나물을 가장 좋아한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과 들깨의 고소한 풍미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한 번 먹을 만큼씩 담아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명절이나 제사 때 상에 올리거나 귀한 손님 오시는 날 대접한다.
대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릇푸릇하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누렇게 변할 때가 있다. 겨울 지나 봄이 되면 모든 풀과 나무들이 연두와 초록으로 새 옷을 갈아입는데 대나무는 반대로 누렇게 시들어간다. 막 돋아난 죽순에게 중요한 영양분을 주느라 영양실조를 겪는 것이다. 어미 대나무가 어린 죽순을 위해 매년 봄마다 치르는 의무이고 사명이다. 겉으로는 강하고 엄한 척하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세상에 무릎을 꿇는 우리네 부모 같다.
대나무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키가 정해져 있다. 죽순을 세로로 자르면 마디가 많이 보이는데 이 마디 수는 다 자란 대나무의 마디 수와 같다. 그러니 대나무가 자랄 분량이 이미 이 싹 안에 다 정해져 있는 거다. 클 만큼 크고 나서는 더 자라지 않는다. 굵어지지도 않는다. 오로지 단단해지기만 한다. 나이테도 없다. 인고의 세월을 자랑하지 않는다. 인생은 긴 여행이라고 한다. 누구나 초행길이다 보니 이것저것 모두 챙기며 길을 나선다. 살면서 한 번도 들춰보지도 않을 것들도 많다. 고행(苦行)이 따로 없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동화책 한 권 없는 집에서 학교 숙제로 독후감이나 썼던 내가 그 꿈을 갖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국어 선생님이 꼭 읽어보라고 책을 소개해 주셨는데, 바로 정채봉 님의 <초승달과 밤배>였다. 읽다가 갑자기 목울대가 떨렸다. ‘난나’라는 주인공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 계속 동화를 찾아서 읽었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월경이 죽기보다 싫을 만큼 무섭고 아팠던 내 중학교 시절에 동화는 아랫배를 쓸어주던 어린 시절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살면서 그 시절의 내가 너무나 그리워 늘 한쪽 가슴이 뻐근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한 우물을 파지 못했다. 뭔가 끝까지 해보려고 악을 쓰지 못했다. 어릴 때 엄마 월급의 반을 피아노 레슨비로 과감히 투자하실 때, 3년 치다가 어려워서 관뒀다.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 화실을 등록했지만 스케치만 6개월 하니까 싫증이 나서 끝냈다. 멋진 사진 한 장에 감동받고 홍대 입시학원에서 사진을 배웠지만 그도 어려워서 2달 만에 포기했다. 되돌아보니 정말 뭐 한 가지 끝까지 해본 게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낡은 사진첩 보듯 간직하며 살아왔다.
원하던 국문학과에 전, 후기 대학 모두 떨어져 결국 간호전문대에 입학했다. 작가로 살면 굶는다며 돈 잘 버는 간호사가 되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소원이었다. 병원 실습 첫날부터 피와 죽음, 상처들을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어 휴학도 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겨우 졸업을 하고 병원 내과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지만, 엄격한 선배들과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 3교대와 밤 근무에 지쳐서 1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 후 회사 보건관리자, 양호교사, 병원 서비스 코디네이터, VIP 전담간호사 등 여러 번 직장을 옮겨 다녔지만 하는 일마다 나와 맞지 않았다. 버티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나는 낙오자로 낙인 되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힐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글을 썼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묵은 감정들을 털어내면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토록 밉기만 했던 나 자신이 안쓰러워졌다.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기도 했다. 반백 년 동안 헛물만 켜고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니 죽순을 캐다 말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짊어진 허영과 굴욕의 보따리를 들킨 것 같았다. 이젠 나에게 필요 없는 짐을 내려놓고 싶다. 상처 난 내 마음에 맷집을 키우고 싶다. 죽순처럼 하얗고 순수한 마음으로 곧고 단단한 글을 쓰고 싶다.
내 인생의 비법과 묘수가 죽순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