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새는 평생 뾰족하고 큰 가시나무를 찾아 다니다가 결국 그 가시에 박혀 죽는다고 한다. 그 순간 생의 단 한 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단다. 아빠 가시고기는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건다고 한다. 산란 후 도망간 어미를 대신해 밤낮으로 외부공격으로부터 새끼들을 지킨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잔 채 뜬 눈으로 새끼들 옆에만 있다가 결국 숨이 끊어지면 새끼들은 아빠 가시고기의 살을 뜯어 먹으며 성장한다고 한다. 외롭고 혐오스러운 가시가 누군가에게는 단 하나의 생(生)을 거는 눈물겨운 일이다.
나에게도 가시가 있다. 26년전 나는 해서는 안될 큰 실수를 저질렀다. 간호대학을 갓 졸업하고 병원에 입사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다. 선배 간호사들과 저녁 회식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TV 드라마가 중단되더니 뉴스 속보가 나왔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먼지 기둥을 일으키며 20여초만에 완전히 붕괴된 백화점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선생님들과 나는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나운서는 떨리는 음성으로 천 여명의 사람들이 건물 내에 있다고 말하면서 울먹였다. 그 때였다. 모두 병원으로 돌아오라는 삐삐 호출을 받았다. 백화점 근처 큰 병원들은 이미 병실이 부족해 우리 병원으로도 환자들이 이송되어 온다는 것이다.
실려온 환자들은 출혈이 심했다. 나는 두렵고 무서웠다. 신규간호사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렵고 복잡한 주치의 처방도 많았다. 제때 교대할 수도 없이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다. 그러다 결국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수액에 섞어야 할 주사약을 직접 혈관으로 주입한 것이다. 혈관으로 약이 들어가면 바로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아주 치명적인 주사였다.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천만다행으로 수선생님이 바로 목격하셔서 혈관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수액을 잠가주셨다. 그 이후로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밤 근무를 겨우 마치고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다. 환자분이 잘못되셨으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생명이 위험지면 어떡하지. 설마 내가 사람을 죽인 간호사가 된다며...’ 두렵고 무서워 숨을 가눌 수 없었다. 내 손이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그 환자분에게 찾아갔는데 병실에 계시지 않았다. 사고 당시부터 위독했었지만, 더 안 좋아지셔서 본원 중환자실로 가셨다고 했다. 그날 이후 밤바다 주사를 놓던 그 손이 자꾸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그 일은 심장 한가운데 길고 두꺼운 가시가 되었다. 평소처럼 동기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아침에 세수하고 화장을 하다가도 느닷없이 그 가시가 뾰족하게 올라와 가슴을 찔렀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어떤 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잊어버리고 살고 싶었다. 이 몹쓸 가시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뽑아내려고 몸부림칠수록 가시는 더 깊숙하게 박혀버렸다. 그렇게 오랜 동안 내 안에 박혀있으면서 내 삶이 되어갔다.
두 번 다시 작은 실수가 내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단련했다. 공부하고 연습하고 계속해서 반복했다. 내 앞만 보지 않고 시선을 넓게 돌아보며 주변을 살폈다. 거짓없이 당당해 지려고 했다. 일 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다짐했다. 고마운 사람, 미안한 일은 먼저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은 지키며,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것은 배우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시(詩) 한 편씩 매일 읽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심장이 뭉글뭉글해져서 깊게 박힌 가시도 뽑힐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말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다고. 빈틈이 있어야 사람다운 거라고. 꼼꼼한 것도 너무 지나치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고 충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그게 아니라고, 다시는 소중한 생명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사는 동안 우리 모두는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할 손님이고, 이번 삶에서 나는 그 소임에 책임을 다할 뿐이라고.
가시를 달고 있으면서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아프고 혐오스럽게 보이는 가시가 그들의 삶을 더 단단하게 지켜준 힘이 된 사람들이다. 마치 가시나무새와 아빠 가시고기처럼. 내 심장에 박힌 가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가끔 불쑥불쑥 아프게 나를 찌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가시를 뽑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거기에 모두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도 뽑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가 있는가. 어쩌면 그 가시가 흔들리는 그대를 더 강하고 더 깊게 붙잡아 주는 버팀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