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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운 Mar 26. 2022

아이유와 20대의 작별

나만의 아이유 베스트 10선

나의 10대는 김광석이었고 나의 20대는 아이유였다. 10대 때도 버즈를 듣고 SG워너비를 듣고 YB를 들었다. 20대 때도 볼빨간사춘기를 듣고 잔나비를 듣고 퀸을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내 10대의 종착지는 김광석이었고 20대의 종착지는 아이유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피가 끓었던 10대의 나,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해 방황하는 20대의 내가, 나의 김광석과 아이유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겨 있다.


아이유 <조각집> 스페셜 앨범이 2022. 3. 23. 발매되었다. 발매를 맞아 아이유의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음악 10선을 뽑았다. 가볍게 쓰려 했는데 쓰다보니 무척이나 길어졌다. 할 말이 무척이나 많았던 모양이다. 스물아홉의 봄에 아이유의 음악을 들으며 나의 20대를 돌아본다. 20대와 작별하고 30대를 시작하는, 모든 90년대생들을 위하여.


[TEASER] IU 다큐멘터리 '조각집 : 스물아홉 살의 겨울'




1. 좋은 날

솔직히 말해 봅시다. 이거 말이 필요한가요. 이 노래 없었다면 아이유도 없었다. <좋은 날>이 발매된 2010년의 아이유는 압도적이었다. 최신 가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던 쑥맥 고등학생에게도 아이유의 인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좋아하는 오빠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날이라며 애써 스스로 위안하는 슬픈 마음을, 가늘고 여린 여고생은 3단 고음으로 폭발하듯 뿜어냈다. 그 폭발에 뭇 고등학생들은 저마다 자기 방에 아이유의 포스터를 붙여두며 아이유의 신전을 만들어 그에 화답했다.


아이유의 신전을 만들던 숫기 어린 고등학생들도 아직까지 그 방에 아이유의 포스터가 여전히 붙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수염이 제법 거무튀튀한 아저씨들이 되었다. 이제는 아티스트로 변모한 아이유에게도 가늘고 여린 여고생이 노래하는 <좋은 날>과 같은 음악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영원한 것은 없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에 걸맞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아쉬울 수도 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을 그 자리에 두고 올 수 있어야 새롭게 반짝거리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두고 온, 나의 반짝이는 지난 추억을 예쁘게 담아낸 사진첩 같은 음악.



2. Modern Times 앨범

사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하나씩 따로 떼어 비교해 본다면, 아이유의 음원 중 최고로 꼽힐만한 곡은 없다. 그러나 모두 모아 앨범 전체의 완성도로 비교해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앨범 수록곡 중에선 꼭 청취자의 마음에 들지 않아 모난 구석이 있어 비교적 덜 사랑받는 곡이 있기 마련인데, <Modern Times> 앨범은 수록곡 전체가 모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아이유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고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Modern Times>다.


그곳에 사는 모두가 아름답게 사랑을 노래하는 판타지 월드일것만 같은 <Havana>, 우울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밤에 라면을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질 거라고 위로하는 <우울시계>, 낮잠을 자는 나를 소곤소곤 어루만져 주는 한낮의 따사로움이 마치 사랑일 것만 같은 <한낮의 꿈>. 대단히 특출나 그 곡 자체로 압도적인 곡은 없어도 모나지도 않은 곡들이 한데 모여 거를 타선이 없다.


<Modern Times> 다음 앨범은 아이유의 첫 자작곡 앨범인 <CHAT-SHIRE>다. <Modern Times>까지는 기획사가 기획해 그 기획에 맞춰 연기하는 아이돌에 훨씬 가까웠다면, <CHAT-SHIRE> 부터는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총괄 기획하는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강해졌다. 청취자에게 프로듀서의 아이유도 무척 멋지지만, 복잡하게 고민한 기획을 잠시 내려두고 그저 다른 이가 치밀하게 설계해준 세계관에서 실컷 뛰노는 <Modern Times>의 아이유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이 또한 두고와야 할 과거일까. 그렇지만 30대가 되어도 뛰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3. 금요일에 만나요

운이 없었는지 나는 대학생 때는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예쁘고 혈기넘치는 시절에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남기지 못한 데 대한 후회가 있었다.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사랑도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임을,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깨닫지 못했던 나의 지난날조차도, 그 지난날을 거치며 깨달을 수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이제는 안다. 후회해본들 지나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고, 얻지 못한 것을 극복하려 노력해야 미래가 바뀐다.


사랑에 에너지를 쓸 줄조차 모르던 목석같던 20대 초반의 나조차에게도,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의 몽글몽글한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 이 노래가, 참 대단한 감성을 품었다. 보고 싶은 마음을 시계바늘에 담아, 한 칸씩 그대에게 더 가까이.



4. 밤편지

이별을 주된 소재로 삼는 김소월의 문학세계는 중학교 국어 시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작품세계에서의 이별은 이별의 순간에 있지 않다. 이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은 오히려 연인이 서로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순간이다. 서로가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하기에 행여나 손에 놓칠까 두렵다. 서로의 마음이 조금씩 멀어지고, 서로에게 입힌 상처가 조금씩 누적될 때, 이별의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연인들은 망설임 없이 이별의 버튼을 누른다. 그래서 이별은 순간이 아닌 과정이다.


수십년 가까이 따로 살던 연인이 며칠만에 만나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 사랑이다. 비이성적이고 무모하다. 그래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언제 쓸려나갈지 모를 듯 위태롭다. 하지만 위태로운 그 모래 위 글씨를, 무모하지만 함께 지켜내야 하는 것이 사랑이기에, 사랑은 아름답다.


아이유의 작사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밤편지>를 꼽는.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이 가져야 할 모든 태도가 이 노래 안에 담겨 있다. 행여나 나의 마음이 너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 여기 내 마음 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 역시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어야지.



5.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의 노래는 김광석이 불러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힘이 있다. 김광석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다시부르기>는 역설적이게도 리메이크 앨범이다. 모든 수록곡이 커버곡이지만, 김광석의 노래는 원곡 가수를 떠올릴 수 없이 김광석의 노래로 기억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수많은 가수가 김광석의 노래를 재해석해 불렀지만 김광석의 원곡을 뛰어넘는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최소한 아이유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리메이크하기 전까지는.


곡을 듣다가 잠시나마 원곡 가수가 김광석이었음을 잊어버린 커버곡은 이 곡이 유일하다. 왜인지 아직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유도 김광석처럼, 아이유가 불러야만 비로소 노래가 완성되는 힘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유의 노래도 수많은 가수들이 커버했지만, 아이유의 감성을 뛰어넘는 재해석은, 최소한 나는 아직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양희은이 유스케에서 부른 <밤편지> 정도?


김광석은 서른셋에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다.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도 들을 수가 없다. 사심을 듬뿍 담아, 아이유가 오래오래,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무럭무럭 많이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6. 물셋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 음악 중 <스물셋>을 가장 좋아한다. 가장 도발적이고, 가장 솔직한 음악이라 애착이 가지만, 아이유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첫 음악이란 점이 무척 애착이 간다.


<스물셋>의 <CHAT-SHIRE> 앨범은 처음으로 아이유의 자작곡으로만 채운 앨범이라 주목받았다. <너의 의미>로 메가히트를 치고, 무한도전 자유로가요제에서 박명수와 <레옹>을 또다시 성공시킨 최고의 톱스타 아이돌이 앨범의 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채웠다니. 이보다 주목받을 수는 없었다.


아이유는 그 때까지 국민 여동생이었다. 대중들이 기대하는 모습도 딱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기대 속에 포장지를 막 뜯어낸 아이유의 첫 자작곡 앨범은, 곱고 예쁘게 포장된 이야기가 아닌 무척이나 날 서있는 자신의 도발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당시에는 무수한 설화가 쏟아졌지만 이제 <스물셋>은 무수한 설화를 이겨내고 이제 매년 초 스물세살이 된 청년들을 위로하며 차트를 역주행하는 숨은 명곡이 되었다.


남의 이야기는 나에 닿지 않은 이야기기에 하기는 쉽지만, 나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에 공허할 수밖에 없다. 내어놓기 부끄럽고 자신없을지언정 나의 마음을 정면돌파해 내어놓을 수 있어야, 이야기도 튼튼해지고 내어놓은 나도 단단해진다. 이미 스물셋에 이를 깨닫고 정면돌파해,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끝내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인정받아낸 그의 용기가, 아직 그런 용기를 가지지 못한 스물아홉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7. 에필로그

<라일락> 앨범의 주제는 이별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0대와의 이별이다. 이별을 담은 앨범의 마지막 곡이다. 그래서 제목도 <에필로그>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에서 서른을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로 정의했다. 삶의 매 순간은 이별이었다. 고향 서울을 벗어나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던 내가, 고향과 이별해 홀로 광주에서 공부하면서, 나의 유년을 함께했던 아버지와 이별하고 사랑하는 연인과도 이별했다. 나는 나의 세상이 무너진 폐허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몰랐다. 아직도 새벽 2시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고 들어간 자취방의 한 켠에는, 혼자 술을 부어라 마시고 차갑고 어두운 자취방의 의자를 걷어차며 아파하던 한 청년이 서 있다.


나를 알게 되어서 기뻤는지, 나를 사랑해서 좋았었는지, 짧지 않은 나와의 기억들이 조금은 당신을 웃게 하는지, 삶의 어느 지점에 우리가 함께였음이 여전히 자랑이 되는지. 멋쩍은 이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끄덕이게 되는 나의 삶이란 충분히 의미 있지요. 이 밤에 아무 미련이 없어 난 깊은 잠에 듭니다. 어떤 꿈을 꿨는지 들려줄 날 오겠지요. 들어줄거지요?


모든 이별은 나의 세상을 무너트리지만 그 자리에 새로 무언가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에필로그>의 멋쩍은 그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되고 나서야, 난 무너진 나의 세상에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세워올릴 수 있었다. 그 질문들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그 때의 나는 덜 아플 수 있었을까.



8. 이름에게 / 9. Celebrity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을 연기하는 이지은은, 그의 연기에 찍혀있던 물음표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드라마 초반 핏기 하나없이 동태눈처럼 흐리멍덩하던 이지안의 눈빛이 조금씩 또렷해지고, 초반의 이지안이 맞았나 싶게 서서히 이지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 변화를 약 20여시간의 긴 시간에 걸쳐,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표현해낸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모든 배우들을 통틀어 비교해보아도, 이지은의 연기는 무척이나 경이로웠다.


사실 최고의 톱스타인 아이유만 놓고 본다면 <프로듀사>의 신디가 더 어울린다. 그러나 정반대에 서 있는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을 훨씬 잘 연기해낸 건, 어쩌면 신디보다 이지안이 진짜 이지은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리라. <조각집> 앨범의 <정거장>에서 그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은과 지안의 사이 '정거장'이 있다. 정거장 하나만큼의 거리가 둘을 이었다.'


어김없이 내 앞에 선 그 아이는

고개 숙여도 기어이 울지 않아

안쓰러워 손을 뻗으면 달아나

텅 빈 허공을 나 혼자 껴안아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영원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



<이름에게>는 세월호 참사 추모곡이라는 오해를 무척이나 많이 받았다. 아이유는 구태여 '세월호 추모곡이 아니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족을 덧붙였다. 아이유는 <이름에게>를 혼자서 작사할 수 있었지만, 본인에게 의미가 큰 곡이라 오로지 가창에만 힘을 싣고 싶다며 김이나에게 공동 작사를 의뢰한다. 그리고는 <이름에게>가 실린 <Palette>앨범을 내고 나서야 자기혐오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름에게>의 '아이'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보다는, 모든 이들 마음 속 어딘에 남아있을 '이지안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나에게는 억압된 유년기의 무언가가 남아있다. 어른스러워 보이려 애쓰지만 사실은 아이처럼 굴고 싶다. 울고 싶어도 우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늘 솔직하지 못하다. 솔직하고 싶었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고, 솔직한 마음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했다. 솔직하고 싶은 자아와 그렇지 못한 억압 사이에서 부딪힌 나머지 갈 곳 잃은 자아가 괴롭다. 내 자기혐오의 시작은 그 억압에 닿아 있다.


자기혐오의 늪을 직시한 후로 <이름에게>의 가사를 무척이나 여러번 곱씹게 된다. 울고 싶고 아이처럼 굴고 싶었지만 기어이 울지 않고 도망치고 있는 유년기의 나에게, 이제 어른이 된 내가 괜찮다고 손을 내밀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인 현재의 나도 치유를 받는다. 그렇게 치유는 상호간의 역동이다. 박동훈이 웅크린 이지안에게 손을 내밀고서야, 치유받은 이지안이 다시 박동훈을 치유했던 것처럼.



상처받은 유년기의 자신과 화해한 아이유도 다시 또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해 따뜻하게 손을 내민다. 잊지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 여전히 아이유에게도 더 치유받아야 할 흉터들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울고 싶어도 울 줄 모르던 나는 이제 <Celebrity>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모두 그렇게, 함께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손을 맞잡고 걸어가자.



10. 겨울잠

"내 세상에 큰 상실이 찾아왔음에도 바깥엔 지체 없이 꽃도 피고, 별도 뜨고, 시도 태어난다.

그 반복되는 계절들 사이에 ‘겨울잠’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란 걸 그들은 알아주겠지."

- <조각집> 겨울잠 소개글 중에서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이제는 정말 무너지지 않는다. 거짓이 아님을 알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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