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운 Jan 01. 2024

20대 끝, 30대 시작

부박하지만 그래도 해보는 2024년 새해 다짐

작년 4월, 처음으로 졸업생 자격으로 과 동문회를 나갔다. 과 교지편집부 동문회인데, 졸업생과 재학생이 섞여 자리하는 일종의 홈커밍데이같은 행사였다. 멋쩍게 자리에 앉으며 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옆자리에 앉은 더벅머리 재학생이 수줍게 23학번 새내기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기억을 더듬어 10년 전 나를 떠올려봤다. 자신의 새내기 시절 캠퍼스의 풍경을 들려주던 03학번 선배가 있었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게 이야기했지만 내게는 도무지 와닿지 않는, 까마득한 풍경이었다.


개중에는 23학번 새내기만 있지는 않았다. 졸업할 때가 된 20학번, 21학번들도 있었다. 로스쿨 지망생이라는 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물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6~7년 전의 나를 떠올려봤다. 졸업반이었지만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시기, 각자 사회로 진출해 있는 선배들을 선망하며 이것저것 귀를 쫑긋 기울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졸업한 지금 엄정하게 따져보면 그렇게 도움이 된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사실 그게 당연했다. 선배들이 다녔던 학교와 재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는 억만광년만큼의 거리감이 있다. 세상이 빨리 변하니 셈과 판단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각자 처한 위치와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잠깐의 술자리에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조금은 난감하기도 했다.


아마 내가 대학교 시절 얘기하면 23학번 새내기는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럴듯한 성공담이 없다면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좌충우돌 실패담도 괜찮지 않을까. 긴장을 풀기 위해 술을 한 잔씩 들이켜면서, ‘나처럼 살지 마시오’에 가까운 실패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술자리는 높으신 분들을 모시는 긴장감 가득한 자리가 아니라, 경각심을 조금은 풀어도 좋은 편안한 술자리다. 한 잔 두 잔 술을 하다보니 어느새 긴장이 꽤 풀리고 입이 자유자재로 놀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취기가 훅 오른 채 귀가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부스스하게 눈을 떠 휴대폰 알림을 확인해보니 후배들 문자가 와 있다. ‘선배님! 어제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 내가 후배들 앞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적당한 답장을 하고, 대학교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후다닥 양복을 차려입다가 문득 거울을 쳐다봤다. 세상에. 이 아저씨 뭐야.





어제까지도 만 29세라고 우겼지만 이제 4월이면 빼도박도 못하는 30대다. 조금은 치기 어려도 좋고, 다양하게 부딪히고 좌절해보아도 아무래도 괜찮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대단한 젊음의 특권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늘 장밋빛도 아니었다. 20대는 늘 찬란하고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들 하지만 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스무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 나는 100번 물어봐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미디어에서는 30대도 아직 한창일 나이다, 여전히 청춘이다, 마치 피터팬처럼 반짝반짝 빛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솔직히 공감은 안 된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러고 싶지 않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여전히 어린 아이일 수 없다. 우리는 늘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분명 30년 전에는 서른이란 이런 느낌이었는데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적기를 놓치면 영영 할 수 없다.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 어영부영 결단을 미루면 아까운 시간만 흐를 뿐이다. 30대가 되자마자, 적기가 꽉 차 내 결단을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다가올 30대에는, 조금씩 떠나가는 젊음에 기대려 하지 말고, 대신 세상을 보는 눈과 지혜를 키우며, 나를 더욱 믿고 과감히 결단하고 주장하는 내가 되기를. 그렇게 살다보면 ‘나처럼 살지 마시오’같은 못난 조언보다는, ‘나처럼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매년 첫 날마다 새해 복을 빌며 새해 목표를 세우지만, 사실 다른 날 결심했어도 되었을, 어제와 오늘의 단 하루 차이일 뿐이다. 늘 새로운 미래는 단절에서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부박한 우리는 과거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그 모든 부박함조차도 잘 알기에, 365일 중 첫 날 하루만이라도, 과거와 단절한 새로운 미래를 갈망해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부박할 수 밖에 없는 나도 한 번 빌어보는, 거창하면서도 작은 나의 새해 소망. 30대에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매거진의 이전글 휴전선 1.2km DMZ 금강산전망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