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1. 덕유산 육구종주 이야기 1.
육십령 – 할미봉 – 서봉 – 남덕유산 – 월성재 – 삿갓봉 – 무룡산 – 동업령 – 백암봉 – 중봉 - 향적봉 – 백련사 – 구천동
총 거리 33km, 소요시간 13시간(휴식시간 포함)
올해 내 등산의 목표는 제로포인트트레일 제주,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덕유산 육구종주, 강북5산 불수사도북, 지리산 화대종주였다. 원래 크루들과 함께 하기로 했던 태극종주가 갑작스럽게 무산되어버려서, 급으로 육구종주를 신청하고 가게 되었다. 대한민국 3대종주(설악산 대종주, 지리산 화대종주, 덕유산 육구종주) 중 하나로 그나마 가장 쉽다고 말하는 육구종주, 결론부터 말하자면 3대종주라 불리는 종주들은 그 이유가 다 있고, 육구종주는 벌레, 답답함과의 싸움이다.
나의 첫 덕유산은 지난 겨울이었다. 설산과 함께 스노보드를 즐기러 무주리조트에 왔다가, 설천으로 곤돌라 타고 향적봉까지 올라갔다 왔는데 그 때 느낀 덕유산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평안했었다. 소백산맥을 뻗어 나와 지리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이라 덕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덕유산은 백두대간 30km를 달려나가는 명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육구종주를 통해 덕유의 품 속을 거닐었던 나는, 이 산이 가진 야생과 자연이 결코 그리 너그럽지만은 않았다.
나는 항상 등산을 하고 나면 다녀온 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편인데, 을사늑약 이후 덕유산을 배경으로 한 의병활동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이 일제 강점기 시절 경남지역의 민족 해방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덕유산의 울창함과 백두대간을 벽 삼아 활동한 의병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덕유산에서 느껴졌던 강인한 기운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산은 산 자체로도 너무 좋지만 이렇게 가지고 있는 스토리들이 너무 멋진 것들이 많아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금요일 저녁 출발한 버스가 육십령에서 멈췄다. 까맣게 내린 어둠, 설악동보다 더 캄캄한 느낌이었다. 숲길로 들어서자 진득한 산의 향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전날 내린 비와 안개로 약간은 습한 공기. 할미봉까지의 길은 편안하다가 갑자기 치솟는다. 줄을 잡고 암벽을 오르다 보면 나오는 붉은 글씨의 정상석. 갈 길이 머니 서둘러 자리를 뜬다. 서봉을 지나 남덕유까지 오르는 길이 무척 고단하고 힘들다고 대장님이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사실 난 오히려 여기는 덜 힘들었다. 서봉을 오르다 운해와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구름이 좀 많았다. 사실 산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육구종주 하는 내내 계속 닫혀있는 시야 때문에 좀 힘들었다. 설악도 그렇고 엄청 예쁜 산그리메와 뷰들을 내내 보여줘서 힘든게 좀 덜했었는데. 그래도 산능성이에 걸쳐 앉아 붉게 타오르는 햇살과 구름을 보며, 잠시나마 힘듬을 견뎠던거 같다. 그렇게 나는 서봉과 남덕유를 지나 삿갓재 대피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날은 밝았고, 나의 몸은 지쳐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