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에 사는 린아 Jun 08. 2022

북한산, 이게 뭐야

2021. 4. 10. 본격적인 혼등의 시작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1주일에 한 번은 등산을 하겠어!! 그리고 그 생각이 곧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가만히 쉬고 있던 나는 내일 등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첫 혼등의 시작은 북한산으로 시작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가까울 거 같아서? 혹은 사람들이 좋다고들 하니까? 그리고 서울에 있는 국립공원이니까 편하겠거니. 서울 산 중에 제일 좋다는 북한산이니까 좋겠지 뭐 그런 생각.


내가 고른 코스는 도선사 코스였다. 북한산 등산코스로도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코스였기 때문이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본 대로 나는 북한산 우이 역에 내려서 도선사까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선사까지 택시 안 타면 30분 넘게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오전 9시 53분. 도선사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봄 날씨가 참 좋았던 날이었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숨 막히는 돌길, 백운대까지 최단코스라 그런지 꾸준히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생각보다 힘든 코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가파른 길도 아닌데, 당시의 나는 체력적으로 많이 많이 부족했던 상태라 정말 힘들다는 생각만 계속했던 거 같다.

1시간여를 걷자 인수암이 나왔다. 이제 다 왔겠지, 처음으로 생각한 것 같다. (아직 멀었는데)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뒤 론 사진 찍을 기운도 없이 헉헉대며 백운대 생각만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나오고, 숨이 차고. 적당히 쉬어가며 앞을 보며 길을 따라 오르기만 했다. 혼자 하는 등산은 이런 게 참 좋더라.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내 두발에 의지하며 걷고 또 걸을 수 있어서.

다시 1시간 정도를 오르자 백운대에 길게 늘어선 정상 인증사진 줄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 나는 사람들을 따라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섰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등산 인구가 많았던가, 새삼 놀라워지는 날이었다. 백운대까지 오른 길을 생각해보니 내 기억엔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북한산을 왜 좋다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던 날이었다. 20여분을 기다려 나는 백운대에서 첫 혼등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정상에서 보이는 탁 트인 북한산의 뷰는 '아 오늘 참 잘 왔다.' 싶은 마음이 들긴 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사람들이 여길 왜 좋다고 하는지 뭐 때문에 북한산이 최고라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길 왜...

사실 북한산에 오기 전 태백산과 비슬산을 다녀왔던 터라 나는 지방산들이 훨씬 좋은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힘들기만 하고 좋은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주변에 왕왕하고 다녔다.

사람들이 다 사진을 찍길래 따라 찍은 북한산 오리바위.

이 때는 이게 오리바위인 줄도 몰랐었다.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면 되니까, 원래 등산 초보일 때는 하산이 더 편하더라. 아직 관절이 쌩쌩할 때라 그런지. 도선사를 지나 도로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벚꽃이 아직 피어있었다. 힘든 산행을 지나 내려오면서 만난 산의 고운 풍경들이 오히려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으면서 첫 북한산 산행을 마무리했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북한산을 찾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북한산은 재미없고 힘든 산이었다. 주변의 산우들은 북한산을 가면, 우리나라 산을 다 탈 수 있다고들 말했다. 아 정말?이라고 반문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북한산은 다신 안가.


이후 내가 북한산 횡 종주를 하면서 깨달았다. 산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그 산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비록 지지부진하고 힘든 산행코스라 할지라도 그 산이 품은 또 다른 모습은 그것과는 정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을.


사람 또한 그렇지 않을까, 내가 보고 있는 단편적인 부분이 꼭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아니지 않았을까.

가끔 산행을 하고 나면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곤 한다. 이런 것들도 내가 산을 찾게 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



작가의 이전글 2020년, 자살을 결심하고 한라산에 오르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