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아오는 햇살의 기운을 느끼며 나는 산행을 재촉했다. 사진 많이 남기고 싶었는데, 빠져나가는 체력은 사진은커녕 앞으로 전진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눈으로라도 최대한 많이 담아가야지 싶었다.
이쯤 되니까 내가 왜 이 산에 왔는지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삶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으로, 정리하는 기분으로 산에 올랐는데 한 발 한 발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정상을 그리고 삶을 갈구하고 있었다.
드디어 눈앞에 진달래밭 대피소가 보였다.
많은 인파들로 대피소는 북적였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 포장지를 뜯어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그때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분이 종이컵을 내밀었다. 부부가 함께 산에 오르신 듯했는데, 두 분이 날 지켜보다 컵누들 우동 국물을 담아서 건네주셨다. 김밥이 너무 차가워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국물을 마셨는데, 그 뒤로 나의 등산에는 컵누들 우동맛이 늘 함께 했다.
국물이 따뜻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했다. 얼어붙었던 내 손도 몸도 녹았고 마음도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마 그분들의 눈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눈 덮인 설산을 찾은 초보로 보였을 테지. 이만저만 걱정되는 게 아니셨을 거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따뜻한 온정을 내밀어 주셨던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전한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가 살아있어요.
잠시 진달래 대피소에서 처음으로 설산의 한라산을 구경했다.
아름다웠다. 피어있는 얼음꽃들이, 곱게 내린 서리가, 그리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사진 몇 장을 더 찍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한라산의 바람은 거칠고 날카로웠다. 왼쪽 뺨이 얼얼할 정도로 찬 공기가 사정없이 온몸을 할퀴어댔다.
해발 1900미터를 지나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내가 꼭 정상을 밟고 말리라.
성판악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한 지 꼭 4시간 만에 나는 정상에 올랐다. 잔뜩 낀 구름 탓에 백록담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들었던 생각은.
'꼭 다시 와서 백록담을 볼 거야.'
나는 이곳에서 삶을 다짐했다. 정상에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너무 춥고 바람도 너무 세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가방에 넣어 둔 라면 생각이 너무 났다. 얼른 대피소로 돌아 내려왔다. 그런데! 세상에, 보온병에 물이 다 식었더라. 참나, 미지근한 물로 컵라면을 말아먹었다. 보온병 살 거야 라는 생각도 이때 한 거 같다.
컵라면을 먹고 정비 후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대피소로 오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라산은 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줄지어 사람들이 백록담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찍 출발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오를 때와는 달리 하산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별로 힘들지도 않고, 오히려 기운이 나는 기분이었다. 등산을 시작한 지 7시간 40분. 나는 목표로 했던 10시간보다 적은 시간으로 한라산 등반을 마쳤다.
뿌듯했다. 온전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니.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다른 산들을 가보고 싶어 졌다. 무언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또 다른 목표가 생겨났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과 천 원짜리 한 장이 있으면 한라산 등반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하여 탐방지원센터에서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한라산의 이름에서 한은 은하수를 뜻하며, 라는 맞당길나 혹은 잡을 나로서, 산이 높으므로 산정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이라 한다. 예로부터 한라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남쪽 하늘에 있는 노인성을 볼 수 있었으며, 이 별을 본 사람은 장수하였다는 전설도 있다고. 나는 별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신령스러운 한라산이 나의 삶을 붙잡아 준 것은 아닐까.
이렇게 나는 등산을 시작했다. 물론 등산을 좀 더 자주, 많이 다닌 시기는 1년 남짓 지난 후였지만.
아직도 나는 한라산에서 만났던 그 온기를 잊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나 역시 그런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산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