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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리 Mar 10. 2023

ep.15 북한산 아래 삽니다.

2023.02.26 북한산 원효봉

역시 등산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대동문을 지나 문수봉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걷다 보니 정반대인 대서문이었다. 결국 목적지를 원효봉으로 바꿨다. 등산을 시작하고 가장 많이 간 산이 북한산이지만 원효봉은 처음이었다.


북한산 원효봉 가는 길.


흔히들 북한산을 ‘서울에 있는 바위산’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산은 하나로 정의하기 아까운 산이다. 서울의 동과 서를 아우르며 경기까지 뻗은 만큼 능선도, 봉우리도 각양각색이다. 뾰족뾰족한 칼바위, 백운대와 인수봉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숨은벽,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는 진달래, ‘작은 공룡능선’이라 불리는 의상능선 등. 가도 가도 새롭고, 새로워서 좋은 산이 북한산이다.


북한산을 올 때마다 근처에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 늘 꿈으로만 그쳤다가 올해 새 출발을 북한산 밑에서 시작하고 싶어 북한산을 품은 은평으로 이사를 왔다.  


나의 결정은 전혀 계획적이지 않았을뿐더러 부동산 시장에서 통하는 최적의 입지로만 보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입지로 따지면 은평은 이전에 살았던 공덕보다 나빴다. 출퇴근 시간은 2배 늘었고, 하나고등학교가 있어 학군이 좋다고 하나 아이가 없는 내게 중요한 조건이 아니었다. 심지어 방도 좁아졌다. 그렇다 보니 공덕에 살다 구파발로 이사 갔다고 하면 ‘왜 거기까지 가셨어요?’라는 물음이 종종 돌아왔다.


최적의 입지는 믿지 않지만 ‘사람은 보이는 것을 욕망한다’는 말을 믿는다. 어떤 환경에 나를 놓느냐는 내가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 계획한 산행조차 뜻대로 안 되는 내 인생에 정해진 방향성이야 있다 해도 늘 바뀌지만, 나의 취향을 가득 담은 삶을 살고 싶다는 건 감각적으로 안다.


집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시장이 말하는 최적의 입지는 모르겠으나 내 기준에 좋은 집, 내 마음이 편한 집에 살고 싶다. 아마 매일 북한산을 볼 수 있는 이 집이 그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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