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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리 Feb 09. 2022

[프롤로그] 산 타는 엄마아빠, 그 피가 어디 가겠어?

내가 산을 타는 이유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나무 평상과 그곳에 누워 아버지와 떠들던 기억입니다. 저는 쉴 새 없이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한참을 듣다 해가 질 거 같으면 일어나셨습니다. 케일 주스, 함박스테이크의 맛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산을 가야만 아버지께서 사주셨던 음식들이었으니까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등산이 취미셨습니다. 산에서 연애를 하고 환갑이 지나서도 전국으로 산을 다니셨어요. 지금도 특정 산을 말하면 들머리가 어디이고, 어느 절을 지나는지 알려주십니다. '명성산'하면 억새를, '삼악산'하면 소양강을 이야기하실 정도로 산의 특징과 풍경을 정확히 집어내시곤 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산에 갈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살게 된 서울은 ‘신세계’였어요. 북적이는 사람들, 드넓은 캠퍼스, 지하철만 타면 갈 수 있는 명소들. 갈 곳도, 할 것도 많았습니다. 도시에 매료된 제게 산은 당연히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케일 주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더는 신박하지 않았습니다.


산이 없어도 제 삶은 충만했습니다. 친구와 맛집·카페 투어를 다니고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 즐거웠어요. 고민이 생기면 친구에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건 (지금도 그렇지만) 제 삶의 튼튼한 안전망이었습니다.


20대의 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중히 여긴 관계들이 뒤틀리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친구를 만나도  감정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설명하더라도 이해할  있을지, 아니 이야기를 하는  맞을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타인 앞에서 솔직한 감정을, 내가 처한 상황을 드러내는  버거웠습니다.


그 무렵 친한 선배가 ‘한라산에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도피처를 찾는 심정으로 선배를 따라갔지요. 걸음이 빠른 선배와 친구를 보내고 홀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어느덧 백록담이었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을 홀로 올랐다는 건 엄청난 뿌듯함을 안겨줬습니다. ‘내 속도로 나의 길을 가면 되는구나’ 어쩌면 이때부터 타인에 있던 인생의 무게추가 ‘나’에게로 옮겨졌던 거 같습니다.


2019년 11월 30일 처음 오른 한라산.


한라산을 시작으로 거의 매주 산을 탔습니다. 그렇게 약 2년이 흘렀습니다. 산은 여전히 제 도피처입니다. 오롯이 제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자 친구, 가족만큼이나 제가 기댈 수 있는 안전망입니다. 좀만 부지런을 떨면 언제든 도피할 곳이 있다는 것, 내가 기댈 안전망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 그건 제게 불행을 막을 순 없지만 불행을 옆에 두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네. 저는 산을 사랑합니다. 출퇴근길에 산을 볼 때마다 얼마나 설레는지 모릅니다.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들을 보면 ‘연차 내고 산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등산을 좋아하게 된 제게 얼마 전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피가 어디 가겠냐” 친구의 말처럼 산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둬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산을 이토록 사랑하게 된 이유를, 제가 산에서 느낀 많은 이야기들을 ‘브런치’라는 공간을 빌려 풀어내려 합니다. 이 글이 어떤 메아리로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글을 읽은 당신을 언젠가 산에서 ‘꼭’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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