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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dsbyme Jan 29. 2023

천천히 뛰면 보이는 것들

빨리 달려야 멀리 갈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천천히 달리며 얻은 것들

"참 차분하신것 같아요" 


재작년부터 이직을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면접을 보며 들었던 소리다. 낮은 목소리와 조급하지 않은 말투, 내가 생각해도 나의 첫인상은 "차분함"에 가깝다. 거기다 의외로(?) 무대 체질인지라, 면접에서 당황스러운 질문이 나와도 오히려 예상했다는듯 받아치는 연기력도 있는 편이다. 물론, 차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심장은 요동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첫인상과 달리, 나는 많이 급한 편이다. 매일 아침 영양제부터 시작해서, 만보 채우기, 운동, 블로그 등 해야할 루틴들을 완성하지 못하면 괜히 마음이 다급해진다. 업무적으로도, 내가 계획한 일정이 틀어지거나 변수가 생기면 밤에 잠을 못이루기도 한다.


러닝, 급한 사람에겐 과분한 취미


성격이 이렇다보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취미가 필요했다. 문득, 군 시절 2마일 러닝을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이 정리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더 고민할 것 없이, 운동화 끈을 고쳐매고 집 밖으로 나서서 뛰기 시작했다.


의욕이 넘치는 급한 성격답게, 초반부터 다다다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5분도 안되서 턱 끝까지 차오른 숨에 나는 무너졌다. 괜히 분하고 억울했다. 준비운동을 안하고 했다, 코스에 오르막길이 많았다- 등 수많은 가설을 세우며 내 가쁜 숨의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이튿날 평지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시작한 러닝에서도 나는 5분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자만했고, 오만했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꾸준히 달려온것도 아닌데, 전속력으로 몇 키로를 달릴 수 있을것이라 판단했다. 페이스 조절은 사치라고 생각했고, 내 강한 의지와 정신력이 이 모든걸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달리면, 더 멀리갈 수 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 폐활량은 의지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조금 속도를 늦추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모든걸 내려놓고, 답답할정도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금새 가빠왔던 내 호흡은 속도를 늦추자 눈에 띄게 평화로워졌다. 그리고 어느순간, 나는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호흡하기 시작했다.


속도만 조금 늦췄을 뿐인데, 나는 30분을 넘게 쉬지않고 달렸다.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들은 마치 새롭게 달성한 성과의 보상처럼 느껴졌다. 빠삭하게 꿰고 있다고 생각했던 골목 골목이, 천천히 달리며 바라보니 새롭게 보였다. 있는지도 몰랐던 식당이 눈에 들어오고, 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의류수거함까지 보였다. 단지 속도를 조금 늦췄을 뿐인데, 나는 주변의 모든걸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 있었다.


이 날 이후, 나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마음이 조급하고 머리가 복잡할때면, 미련스럽게 보일만큼 여유롭게 조깅을 했다. 계절에 따라 다른 온도의 바람을 느끼며, 그리고 익숙한듯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며 나는 내 상념들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한바탕 쏟아낸 땀을 따뜻한 물에 씻겨내며, 깊은 고민들도 날려보낼 수 있었다.


달려도 도태될 수 있는 현대사회, 조금은 속도를 늦추자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정말 바쁘게 달려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떨어지는 집값과 주식, 얼어붙는 고용시장... 매일 쏟아지는 기사들이 우리들에게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 와중에 20대에 몇 십억을 벌었다는 젊은 사업가나 투자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시리 도태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나름의 속도로 바쁘게 달려나가고 있다. 때론 현실이란 가쁜 호흡이 버거울 정도로, 그리고 미래의 무게가 두 다리를 무겁게 짓누를 정도로 아둥바둥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가 욕심보다 천천히 달리며 나름의(?) 교훈을 얻었듯, 우리는 일상에서 조금은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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