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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호사

투자와 여행을 한 번에 담을 수 있을까

by 마운트레이크

3년 전 지방에 분양받은 경주시 아파트의 잔금을 어찌어찌 마쳤다. 투자 목적이 우선이었지만 퇴사 후 '천년고도의 도시' 경주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연고가 전혀 없는 지방이라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당시 KTX 경주역에 내리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황량하고 드넓은 역세권개발 현장은 나를 설레게 했다. 여기저기 솟아 오른 공사장의 타워 크레인들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미래를 소환하는 듯했다.


오랜 역사 속 고대 문화의 도시 그리고 대비되는 쿼드러플 역세권의 신도시 개발 계획. 복합적이고 묘한 매력이었다.


'이건 내가 참 좋아하는 장르다. 스토리가 보인다.'


결국 이 스토리에 작은 지분이라도 참여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당시 미분양아파트를 선착순으로 분양받았다. 이때의 과감한 선택과 결정은 두고두고 아내와 함께 되씹어 보게 되는 추억이자 애증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면서 내 인생 서사의 확고한 한 단면이 되고 있다.


21년 말 DSR 규제 시행 전에 입주 공고가 떴던 '줍줍' 현장이었다. 그래서 첫 분양 계약자는 지금의 규제와 상관없이 잔금대출을 잘 받았고 다행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침체 시기에 입주장 매물까지 쏟아지며 마이너스 P가 나오고 있다. 안타깝다. 시국이 불안정한 시기에 지방 아파트라 그렇지..


3년 전 3억대에 분양받은 전용 84 제곱의 반짝반짝 빛나는 신축 아파트다. 대한민국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다. 그러면서 속으로 외쳐본다.


'앞으로 이 가격에, 이런 아파트가, 여기에, 절대 나올 수 없을 거야.'


이 지역의 신축 입주는 봄이 지나면 당분간 끊긴다. 그래서 나도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다. 가을 이후 다시 매도나 전월세를 놓을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경주에 자주 내려와 지내려 한다. 팔자에 없던 지방의 세컨드 하우스인 셈이다. 사실 치열한 고민의 결과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아내가 말한다.


"아슬아슬한 호사를 누리는 느낌이야."




지방 아파트 시장은 서울 강남 아파트 시장과 완전히 다른 세계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강남 3구의 아파트 30만 채를 다 합쳐도 겨우 전국 아파트의 1.5% 미만이다. 그럼에도 일반 세상의 관심은 온통 그곳에만 쏠려 있다. 하지만 내가 실존하고 참여하는 실제 게임은 여기서다.


전국 분위기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새로 투자한 지역의 아파트 시장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수익을 내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 기회의 틈은 내가 설정한 수익창출 로직에 반영되어 있다. 이 지역에 맞춰 세운 가설들이 과연 얼마나 들어맞을까? 그 로직은 지방 KTX 쿼드러플 역세권과 이 지역 최초의 신도시 개발에서 나오는 가치 상승분이다. 과연 기대한 대로 작동할지는 기다려야 한다.


'부의 거울'을 쓴 김영익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투자하면 일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사들인 셈이다."


그런가? 매일 그런 하루하루를 사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호사를 누리는 프로젝트를 나는 왜 자꾸 하게 될까?


호기심 없이는 어렵다. 분양받고 3년간 수시로 경주에 내려가 여러 곳을 누볐다. 누가 경주 이야기를 하면 그냥 반갑고 다시 보게 된다. 태어난 고향도 아닌데.


이 지역에 대한 각종 호재나 개발 계획들뿐만 아니라 작은 유적의 역사와 헤리티지 그리고 최신 맛집과 뷰 카페 탐방까지.. 마치 여기가 세계 최고인 듯 일시적인 최면을 걸고 다닌 셈이다.


나는 항상 아내와 함께 경주에 내려간다. 혼자 신나서 그날도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전생에 여기와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글쎄, 당신이 애써 만든 스토리 아니겠어?"


합리화라도 좋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3년간 많은 추억과 함께 여러 고민의 자국들도 남겼다. 투자와 여행을 버무리려 한 시간들은 그때마다 느슨한 충만함 속에 팽팽한 긴장감을 심어주었다.


윈스턴 처칠은 운명의 사슬은 한 번에 한 고리씩만 다룰 수 있다고 했다. 너무 멀리만 볼 거 없다는 거다.


'다음 고리는 무엇인가?'


온갖 리서치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느라 이 겨울도 잊은 채 2월이 지나간다. 어느덧 새로운 봄이 또 오고 있다.


봄이 오는 천년고도 경주의 풍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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