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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Oct 01. 2020

어제는 읽고, 오늘은 쓰다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며

 Love the life you live

 Live the life you love


 지금의 삶을 사랑할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 것


 -밥 말리Bob Marley




 어느 날 나는 불현듯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 욕구는 난데없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글이라는 문자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질수록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오랜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즘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인상 깊은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부모님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서 기록으로 남겨두는 자식들은 몇이나 있을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전 처음 보호자 신분으로 구급차에 올랐다. 응급실과 집중치료실 보호자 대기실에서의 생활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과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된 것은 마음에 다가오는 정도가 다르다. 소중한 이가 하루아침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에 관한 공부를 위해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부천 문화재단 시민미디어 센터에서 진행되었던 ‘2018, 1인 미디어 창작 크리에이터 in 부천 1기’ 교육을 수료하고, 시를 좋아하고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시를 소개하는 ‘시골녀(詩 골라주는 여자) 앨리스’라는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을 통해 힘든 시기마다 손을 잡아준 책 속의 문장이 있어 따뜻했던 날의 온기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글쓰기는 바로 이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 글 ·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 그림, 『잃어버린 영혼』, 이지원 옮김, 사계절출판사, 2018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의 첫 그림책은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사람이었지요. 영혼은 어딘가 멀리 두고 온 지 오래였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바쁜 삶을 살아가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었던 남자는 현명한 의사에게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림책에는 영혼과 육신의 어긋난 속도를 맞추기 위해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는 남자가 도시 변두리의 작은 집에서 영혼을 기다리며 보낸 순간을 부드러운 흑연 질감이 살아있는 그림에 담아냈다. 그림책을 넘기면 종이 질감과 그림의 빈티지한 느낌이 투박하지만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이 책은 빛바랜 추억 속의 한 장면 같은 그림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어느 오후, 그의 앞에 잃어버린 영혼이 나타나기 전까지 남자는 흑백의 세상 속에서 살아왔다. 지치고, 더럽고, 할퀴어져 있는 영혼이 문을 두드리고, 남자가 안고 있는 화분에도 봄기운이 찾아온다. 덩굴 잎이 원래의 색을 찾기 시작한다. 영혼과 마주 보며 앉은 남자의 집은 초록의 식물로 생기가 넘친다.


 그동안 다른 사람을 돌보는 법과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는 관심을 기울여도 내 영혼은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의 흐름에 무뎌지고, 다른 일들에 밀려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은 다음 차례로 밀려났다. 나에게도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 줄 알지만,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른다.

 학문하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 있다.

 (학문지도무타구기방심이이의 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矣)


 -《맹자孟子》고자장구告子章句 상 11장



 표지판도 신호등도 없는 삶의 갈림길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책을 만났다. 책 속에는 내 마음을 위한 표지판이 구석구석 세워져 있었다. 표지판을 읽는 법을, 표지판을 따라 길을 찾아가는 법을 알아갈 시간이 절실했다. 그때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하나 발견했다. 나에게로 향하는 책쓰기 수업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람마다 느낌이나 생각이 다르므로 같은 책을 읽어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다를 수 있다. 느낌과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더 나은 질문만 있을 뿐. 바쁘게 살 때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이 느리게 걸으면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처럼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완벽한 책쓰기를 알려주는 안내서가 아니다. 그런 내용을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쳤다면 아쉽지만, 여기에는 완벽함보다는 서툰 걸음에 가까운 나의 여정이 담겨 있다. 이제 막 글쓰기에 첫걸음마를 시작한 사람이 성공적인 책쓰기와 아름다운 문장에 관한 내용을 쓸 수는 없기에.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며 나에게 다가간 순간들의 기록이자 내 안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관찰일지에 가까운 글이란 걸 미리 밝혀둔다.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일상의 소소한 기록들이다.


 제1부 ‘당신, 나 그리고 책’에서는 표지판을 따라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사람과 책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나를 새로 발견하는 전환점을 지날 때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일시 정지의 순간을 지나 제2부 ‘내 안의 보물찾기’에서는 책쓰기 수업에서 만난 기본 글쓰기 방법을 다뤘다. 일단 뭐든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글쓰기 습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제3부 ‘미타쿠예 오야신’은 나만의 고유한 경험을 잇는 다양한 활용법에 관한 내용이다. 뭔가 표현하고 싶고, 털어내고 싶고,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을 텅 빈 괄호처럼 비워내는 글쓰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1부와 2부에서 그물의 굵은 씨줄과 날줄을 만들었다면 3부에서는 이것을 엮어 나만의 방식으로 그물을 짜는 방법을 다뤘다.


 이 책을 통해 서툰 걸음이라도 직접 경험한 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이 있어도 화가마다 주로 쓰는 색이 다르듯이 작가도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을 재료로 삼아 자신만의 언어로 글을 쓴다. 나만의 언어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으면 좋겠다.

 글쓰기, 나아가서 책쓰기에 관심 있는,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한 이들이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느긋한 마음으로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울 수 있길. 나다운 느낌의 책이라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책 읽는 즐거움에 책 쓰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읽고 쓰고 산책하며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나는 어제는 읽고, 오늘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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