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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Jan 07. 2023

품속에서 꺼낸 붕어빵 맛

이야기의 힘이 담긴 편지로 일상 회복을 꿈꾸며

이랑과 이가라시 미키오의 콜라보 에세이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누군가를 떠올리며 살더군요.
     _p.048 두 번째 편지


2019년 10월 11일은 이랑이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만화 『보노보노』의 작가 이라가시 미키오의 작업실에 찾아갔던 뜻깊은 날이다. 20년도 넘게 쓴 오래된 작업실에서의 만남은 편지를 주고받는 콜라보 작업으로 이어졌다. 두 작가는 틈틈이 라인으로 메시지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통역 AI와 함께 각자의 모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통역기의 들쭉날쭉한 컨디션에 따라 오차가 있는 소통 방식도 즐거움을 더했다.






✉️이가라시 상이 보낸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쓰고 싶은 것을 쓰세요.'
      참 좋은 말입니다.
      _p.076 네 번째 편지


'모르는 게 생기면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이랑과 '너무 깊게 생각하다 행복을 놓치는 타입의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그리는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작가가 주고받은 24통의 편지를 묶은 책이다. 1986년생 이랑 작가와 1955년생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가 성별, 나이, 국적을 초월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눈 소통의 시간을 엮었다.


이랑이 쓴 이가라시와 이가라시가 쓴 이랑, 작가 소개 글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음악, 영상, 문학, 만화 등 다양한 분야에 다채로운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 이랑. 이가라시 작가의 기억 속 이랑 작가는 처음 작업실에 온 날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깡충깡충 뛰어 들어오던 밝고 즐거운 사람'이다. 1986년생인 보노보노와 이랑의 좋은 친구인 이가라시 미키오. 이랑 작가가 들려주는 이가라시 작가는 다양한 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유연한 상상력을 가진 멋진 사람이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특유의 귀염둥이 미소를 짓는 사람이기도 하다.






✉️「박하사탕」은 저에게 '인간의 일생이야말로 가장 큰 이야기다'라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_p.119 여섯 번째 편지


내가 보는 세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노래든 글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스포츠의 즐거움과 닮아 있는 것" 같다. 두 작가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스포츠 게임 하듯 주고받은 편지에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일상과 서로 나누고 싶은 삶의 의문, 영화, 책 이야기로 풍성하다. 삶에 대한 두 사람의 고민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창동 선생님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비법'으로 일기를 쓰라고 했다는 내용은 공감이 가네요. 아마 그건 소설을 쓰는 비법이자 만화를 그리는 비법, 나를 알아가는 비법이기도 할 겁니다.
_p.163 여덟 번째 편지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의 엔딩에서 이어진 '그럼에도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본 후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다는 이랑 작가의 에피소드. 「박하사탕」을 보고 '이야기의 힘'을 느낀 뒤로 '더 많은 곳에 가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이랑 작가. 이창동 선생님 수업 중에 들은 이야기를 힌트로 지었다는 두 번째 앨범 제목 『신의 놀이』(소모임 음반, 5016)도 흥미롭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이라가시 상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가라시 상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 일을 영원히 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요.
_p.243 열두 번째 편지


마지막 열두 번째 편지에서 계속 이어질 깊은 마음을 전했다. "유령이 되어서도 이어나가고 싶을 정도로 즐겁게 편지를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라는 이랑 작가의 말에서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두 사람의 우정이 느껴졌다. 내가 보는 세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즐거움과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이랑 작가님이 부른 노래가 궁금해서 '신의 놀이'를 검색해 보았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는 가사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문득 한 사람의 일생을 그려보기로 했다는 이가라시 작가의 새 연재작 소식도 궁금해졌다.





✉️그럼, 이랑 씨. 조만간 또 편지 보내주세요.
     _p.253 열두 번째 편지


두 작가는 편지로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을 나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삶을 함께 이야기한다.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자본, 가치, 신, 죽음, 고양이 등 다양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일생이라는 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디서나 싹을 틔우는 식물 같"은 언어로 돋아난 물음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새로운 열매가 생겨난다.


반가운 이가 보낸 편지를 받은 듯 책에 담긴 온기에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책으로 나온 편지글을 읽으며 서로에게 온 편지를 열어보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우리는 사람의 눈빛과 온기를 쬐며 살아간다. 두 사람이 편지로 서로의 삶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지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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