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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Aug 28. 2021

세상 모든 경애와 상수가 행복하기를

김금희 作 - <경애의 마음>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은 코로나가 지금처럼 심해지기 전, 독서 모임을 하며 읽었던 책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을 기회가 전혀 없었을 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나 미래, 또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인물의 삶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지금 여기,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누군가의 일상이 담겨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책은 현실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보내주는 매개체였으며,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재미'였다.


매일매일 현실을 살고 있는 데다가, 주변인들에게 듣는 이야기들을 나의 여가시간을 투자해서까지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읽는 내내 꽤 힘들었다. 평소였더라면 아무리 '의미'가 있는 책이라 하더라도 '재미'가 없다며 덮어버렸겠지만, 이런 독서 편식을 줄이기 위해 독서 모임을 신청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다독이며 차근차근 끝까지 읽어 나갔다.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이 힘들었던 점은, 기억 저 편에 묻어 두었던 힘든 기억들을 반추하게 하는 책이라는 점이었다.



주인공은 같은 회사에 있는 경애와 상수다. 상수는 낙하산이라고 회사에 소문이 나 있어 자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팀원이 없는 팀장 대리로 있다. 그리고 경애는 노조에서 시위를 하다가 성희롱을 당했는데, 동료들은 시위 중에 그걸 말하면 우리의 이미지가 좋지 않아 질 거라며 모두 그녀를 달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이 당한 일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시위는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그리고 경애는 상수의 하나뿐인 팀원 자리까지 오게 된다.


둘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1999년 실제로 일어났던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사건은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당구장과 호프집에 있던 10대 중고교생들과 20대 초반 청소년 등 손님 56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진 사건이다. 살아남은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도망칠 수 있었지만 사장이 술값을 받으려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은 도망쳤다고 한다. 무허가 영업, 공무원 매수 등 온갖 부패와 불법들이 모여 벌어진 사건이었으나, 고등학생들이 왜 호프집에서 술을 먹느냐는 등 불똥은 이상한 곳으로 튄다.



경애는 잠깐 공중전화를 사용하러 나갔을 때 이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곳에서 사랑하는 E를 잃었다. 그리고 그 E는 상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평생을 안고 가게 될 상처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문득문득 차오르는 기억일 것이다. 둘은 모두 E를 담담하게 기억해 내는 듯했지만, 침잠해있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마다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 기억을 억지로 몰아내야 했을 것이다. 매 순간 그 기억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은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일 테니까.


둘의 성격은 다른 듯 닮아 보였다. 둘 모두 부당함을 넘어가지 못하고 맞서 싸워야 하는 성격이다. 그들이 살아온 세월들이 둘을 그렇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소설의 주인공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성격이지만, 현실 세계를 옮겨놓은 책 속의 세계에서 그들의 그런 성격은 주변인들을 피로하게 하며,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은 경애와 상수를 못마땅하게 보며, 힘이 없는 동료들은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고도 묵과함으로써 결론적으로는 기득권에 동의를 표하는 꼴이 된다.


둘은 퇴근 후에도 만난다. 바로 페이스북을 통해서이다. 상수는 남자이지만 언니를 가장한 채로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한다. 그리고 경애는 언니에게 매일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문학동네 카드리뷰
문학동네 카드리뷰2


여자인 척을 하며 여자들의 고민들을 들어주는 행동은 상수의 입장에서 읽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행동이었다. 극단적으로는 혐오까지 갈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상수의 입장에서 읽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고 오히려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현대인들의 대다수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으로 쓰인 기사의 헤드라인만 보고, 육하원칙으로 간추려진 짧은 기사 내용만 보고 쉽게 분노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나도 가끔씩 그런 마음이 들지만, 이렇게 또 책을 통해 좋은 것을 배운다. 모든 사건들은 여러 사람들의 입장에서 정확한 상황을 확인한 후에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모든 사건에는 인과관계가 있음을.



결국 둘은 E로 인해 생긴 마음의 공허를, 서로에게 위안을 받으며 채워나갈 것이다. 경애와 상수처럼, 경애와 같은 사건을 겪고 경애의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면 정말 나아질까? 그들은 정말 서로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을까?


읽는 내내 피로하긴 했지만 독서 모임을 통해 평소였으면 읽지 않았었을 책을 읽어 보게 된 좋은 기회였고, 오히려 일상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 많은 부분들에 공감이 되고 그로 인해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담담하게 쓰인 잔잔한 문장들이 쉴 새 없이 마음을 치고 지나갔다. 현실 세계에 있는 경애와 상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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