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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Mar 20. 2021

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기적인가?

뤼트허르 브레흐만 作 - <휴먼카인드>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더 나를 변화시켜주는 책이 있다.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만큼 가치관을 흔들어 놓는 책들.


농업혁명은 사기였다고 외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그랬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는, 오늘 소개할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를 추천했다.



내가 좋아하는 지식인들의 추천서가 많은 책인 데다가, 내가 믿고 있는 가치관인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이 책의 큰 주제는 내 손가락을 구매 버튼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가 40년 넘게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순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거장들의 책과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다양한 연구결과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자료와 통계를 제시한다.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극적인 책들을 읽으며 찝찝했던 내게 통쾌한 한 방을 선사했다.



이스터 섬의 식인종 이야기,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 나오는 인간의 야만성, 키티 제노비스 살인사건의 방관자들 등 여러 예시들에 반박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를 해명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다양한 챕터들 중 제2차 세계대전의 악을 설명하는 것에 대한 출발점인, 8장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수많은 실험들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예일대학 연구소에서 행해진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이다.


인간 기억에 대한 연구에 참여해달라는 공고로 시작한 이 실험은, 사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실험이었다. 참여자들은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한 사람은 '교사', 다른 사람은 '학습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교사들은 충격 기계라 불리어지는 큰 기계 앞에 서 있고, 학습자는 옆방 의자에 묶여 기억력 검사를 수행한다. 학습자가 오답을 택할 때마다 교사는 스위치를 눌러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 학습자는 밀그램 팀의 일원이며, 전기 충격 기계는 가짜였다. 학습자는 비명을 지르는 연기를 하는 것이었으며, 연구 대상은 오직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들뿐이다.


전기 충격은 약한 15 볼트로 시작했지만, 학습자가 오답을 이야기할 때마다 실험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교사에게 전압을 높이라 지시한다. 15 볼트, 30 볼트, 45 볼트로 전압은 계속 높아진다. 옆방의 학습자가 비명을 질러도 지시는 계속된다.



실험 결과, 연구 참가자의 65퍼센트가 450 볼트에 이를 때까지 계속 충격을 가했다. 이들은 평범한 아빠이자 친구, 남편이었지만 그들 중 3분의 2는 무작위로 만난 낯선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것이다.


그저 누군가가 그들에게 지시했다는 이유로.


밀그램은 이 실험으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여러 언론 매체들은 그의 실험을 다루었다. '어떤 사람이 수백만 명을 가스실로 보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 실험이 주고 있었다. 정답은 우리 모두라고.


모든 것은 권위에 달려 있고, 인간은 맹목적으로 명령을 따르는 생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던 기억이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실험일 것이다. 그 정도로 유명한 실험에, 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의 작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연구에 반박하기 위해 자료들을 찾아 나선다.



결론은 이 실험은 연극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밀그램은 오직 자신의 명성과 찬사를 위해 실험을 조작하였으며, 자신을 돕고자 지원한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준 인물일 뿐이었다. 밀그램은 위대한 연구원이 아닌, 인간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감독적 재능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1. 권위에 대해 노예적으로 복종했다기보다 괴롭힘과 강요를 당한 것에 훨씬 더 가깝다. 밀그램은 자신의 대본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강한 압력을 가해 굴복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실험자 중 한 명은 한 여성에게 주먹질까지 했다.


2. 피험자들 중 자신이 실제 충격을 가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일대학과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과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누군가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학습자에게 실제로 고통을 주고 있다고 믿은 피험자는 56퍼센트에 불과했다. 충격이 진짜라고 믿은 사람들은 실험을 그만두었다.


3. 연구에 자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연구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험자들은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 남자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여섯 살짜리 딸을 위해 버티었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치료법을 찾기를 희망하며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겠다는 심정이었다.


4. 실험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위압적으로 나올수록 피험자들의 불복종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인간은 권위자의 명령을 생각 없이 따르지 않으며, 우두머리 행세를 노골적으로 혐오한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실험 결과를 이렇게 판단했다.



충분히 강하게 압박하고 찌르고 재촉하고 미끼를 던지고 조작하면 우리 중 많은 사람에게 실제로 악을 행하게 할 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악은 표면을 들추기만 하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악을 끌어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 것처럼 악을 위장해야 한다는 점이다.(243p)


밀그램의 자원봉사자들이 멈춰서 생각하지 않고는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던 것처럼 홀로코스트는 갑자기 로봇으로 변한 인간의 작업이 아니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옳은 편에 서 있다고 믿었다. 아우슈비츠는 전압이 단계적으로 올라가고, 악이 더 설득력 있게 선으로 통용되는 길고 복잡한 역사적 과정의 정점이었다. 나치의 선전 공장은 여러 해 동안 작가, 시인, 철학자, 정치인 등을 동원해 독일 국민의 마음을 둔화시키고 중독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속임수, 사상 주입, 세뇌, 조종을 당하는 희생자가 되었다. 그런 뒤에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246p)



이렇게 권위 있는 대학에서 행해지는 실험의 결과조차 거짓이라니 충격적이었다.


작가가 제시한 또 다른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연구원들은 자신의 명성을 위해 실험 결과를 대중이 좋아할 만한 결과들로 꾸며낸다. 인간은 선하다는 건 재미가 없다. 인간은 악하다는 게 증명되어야 연구가 흥행하게 된다.


자극적인 연구 결과만이 모든 심리학 책에 필수로 등장하는 실험이 되고, 연구원을 미국 심리학협회 회장까지 역임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안전하며 건강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언론은 악한 면만 강조한다.  


한 때 코로나로 사재기를 한다는 글들이 쏟아졌지만, 극히 일부였을 뿐 현실은 달랐다. 서로 돕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바꾸며 협력했다. 911 테러나 타이타닉호의 침몰 때에도 질서 있게 대피하고 서로 배려했다. 위기의 순간, 우리는 선한 본성에 압도당한다. 다만 악의로 가득 찬 소셜 미디어와 가짜 뉴스로 인해 인류는 서로를 이기적이고 악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일 뿐이다.



미디어와 엘리트들은 우리가 서로를 나쁘게 보는 것을 원한다. 그들을 통치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배 권력과 언론이 인간의 선한 면을 감춰야 했던 이유들을, 작가는 하나씩 밝혀 나가며 독자를 일깨워 준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선과 악으로 나누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존재이며, 여러 면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선하다. 우리가 인간에게 선한 면을 기대한다면, 그에 맞춰 선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고,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자신의 부패함을 그토록 믿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편리함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한다. 이상하게도 우리 자신의 죄 많은 본성을 믿는 것은 위로가 된다. 그것은 일종의 사면을 제공한다. 만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쁘다면 참여와 저항은 노력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 많은 본성에 대한 믿음은 또한 악의 존재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증오나 이기심에 직면했을 때 당신은 "아, 그건 그냥 인간의 본성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믿는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는 참여와 저항에 가치가 있음을 의미하며, 행동할 의무를 우리에게 부과한다. (249p)



휴먼카인드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나와 밀접하게 교류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추천하고 싶다. 인간이 선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것, 평화와 용서를 믿는 것은 감성적이고 순진한 것이 아니라 용감하고 현실적인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또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도, 언론 매체에서 나오는 이기심을 추구하는 인간이 아닌,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며, 언제든 선의를 베풀어 줄 사람이다.



  현실적이 되어라. 용기를 내라. 스스로의 본성에 충실하고 타인에게 당신의 신뢰를 보여주어라. 대낮에 선을 행하고 자신의 관대함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처음에는 속기 쉽고 순진하다고 묵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내일의 상식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이제 새로운 현실주의를 위한 시간이 왔다. 인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이다.(5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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