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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30. 2022

가정보육 중 유일한 취미생활

닥치고 읽기

통계청 [독서인구]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의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7권이다.

만 13세 이상 인구의 1년간의 독서를 말하고 있으며, 학생 및 재수생이 읽는 교과서 및 학습참고서는 독서로 보지 않았다.


육아를 시작하기 전에 나라는 사람 역시 이 통계자료의 평균치에 거의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사실 주말에 자기 계발을 핑계로 자격증 관련 도서를 본 기억이 더 많기에 평균치 독서량에도 못 미칠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평균치를 밑도는 사람이 첫아이를 낳고는 모든 것이 이상했다.

'뽑기가 잘못되어서 내 아이만 이렇게 잠을 안 자고 우는 것인가'

'보통의 가족이 부모 2명+아이 2명 이렇게 4인 가족을 이루고 살던데 다들 어벤저스인 건가'

'육아가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 다들 저출산이 더 심해질까 봐 여태 쉬쉬하며 나는 모르고 살았던 건가'

손위 자매도 없고 친구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결혼하여 오프라인에서는 나의 의문에 근접한 답이 무엇일까 고민을 나눌 이도 없었다.

배우자는 나보다 더 몰랐다.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이유식이 시작되어 앉혀놓고 뭐든 내어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삐뽀삐뽀 119 서적부터 육아와 관련된 도서라면 뭐든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싶어 닥치고 읽었다.

어느 정도 읽고 나니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었다.

육아란 정답이 없고, 각 가정마다 가치관이 다르기에 하나의 길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점은 가능하다면 아이가 36개월까지는 주양육자와 가정보육을 한다면 애착형성이 잘 되어 그 이후에 성장하는 데에도 크게 잘못될 리 없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달랐다.

모든 책을 읽고 신봉할 순 없지만, 내 아이에게 적용해봄직한 것들은 참고해서 받아들였다.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시간에는 경험이 없다고 계속 외면할 수 없기에 아이가 주도하면 따라가는 식이었다.

그리고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은 무릎에 아이를 앉혀놓고 계속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뿐이었다.


가정보육을 하다 보니 나만의 시간은 가끔 아파서 병원에 가거나 장보는 일이 전부이다.

퇴근이 없으니 아이를 재우고 외출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풀 겸 치맥 혹은 영화를 보는 것도 어려웠다.

퇴근하고 온 배우자는 아이를 재우면서 같이 곯아떨어지는 나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내 책이 아닌 타인의 책을 몇십 권 읽어주다 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옆에 두고 물처럼 마시며 읽어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잘 수 있게 된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을 지나오고 나니 세명의 아이를 육아하게 되었다.

세명의 미취학 아이들이 있으면 이런 식이다.

3호를 수유하며 1호의 책을 읽어주고, 2호의 배변 신호가 오면 다 같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씻을 수 있을 때 씻고, 집안 청소는 누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아주 가끔 치웠다.

이 시기를 그냥 뭔가를 읽어대며 버텨왔다.




살려고 읽었다.

그때그때 기분 따라 끌리는 책은 물론이고, 아이들 그림책, 잡지, 온라인 글, e-book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몸의 생존을 위해서 뭐라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의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끔 남들처럼 10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세명의 아이가 수시로 호출하는 '엄마'소리에 멈추고 대응하기엔 이유 없이 화가 났고,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해보기도 했다.

화를 내지 않고 그나마 일관된 모습의 양육자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10분 동안 책을 보다가 아이들이 10번을 불러서 책을 다시 뒤집어 놓게 되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하루에 한 페이지 읽는 날도 있고, 한 권을 읽는 날도 있다.

그렇게 5년 넘게 읽다 보니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새벽에 감성 충만하게 마음을 끼적인 쓰레기 글을 포함해, 읽기에만 그치고 싶지 않아 읽고 쓰는 독서를 하고 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브런치.

소중한 공간에 소중한 시간을 담아낼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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