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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Dec 27. 2023

2023년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카톡 메시지만 24건

여름엔 이렇게 더울 수가 있나 싶어 어서 겨울이 오기를 기대했지만, 막상 겨울이 되니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사람조차 매섭게 느껴지는 12월의 강추위를 맞이했다. 올해도 각종 바이러스로 마스크 착용을 반복하는 동안 꾸준히 나의 건강을 염려하여 알림을 보내준 곳이 있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첫 메시지는 1월 16일에 올해 검진 대상자라는 알림으로 시작했다. 5일 뒤에는 1월과 2월에 검진받으시는 분이 적어 쾌적한 검사가 가능하다며 검진을 재촉했다. 이어서 매달 꾸준히 알림을 보낸 건수만 24건이었고, 아이들 영유아검진 알림까지 포함하면 거의 30건에 다다른다.


나를 위해서 그것도 무료로 건강검진을 해준다는 알림을 여느 텔레마케팅처럼 귀찮다는 듯 외면한 것은 그저 미루고 미루다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2년 전 마지막으로 검진했던 당시 검진 이후 이상소견으로 바이러스 추가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결과가 나오기까지 떨림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혹여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그저 귀찮다는 핑계로 단호박 같은 성격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고, 인간이라면 이 정도까지 미뤄온 이에게 지속적으로 알림을 보내지는 못했겠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는 12월에 3건의 메시지를 더 발송했다.


“2023년도 건강검진 실시 기간이 10일 남았습니다. “


어떤 알림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는데 마지막 12월 22일에 수신한 메시지는 내용이 조금 달랐다. 검진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단 10일 남았다는 문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검진 제외대상에 해당하는 개별종합검진, 입원, 임신, 장기 출국 등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 나는 더 이상 미루는 것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근처 검진기관 중 주말에도 가능한 곳을 선택하니 한 곳이 눈에 띄었다. 출산했던 병원이자 2년 전 검진했던 곳이다. 8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주말 이른 아침 오랜만에 산부인과를 찾아 대기 1번 번호표를 뽑았다. 2023년이 9일 남은 날이었다.


9시에 진료가 시작되기에 8시 45분부터 혈압과 체중을 재고 예진실에 먼저 들어섰다. 간호사는 인적사항과 출산이력을 물으며 검진내용을 확인하자 예상했던 질문이 들어왔다. 2021년도에 자궁경부암검사 이후 추가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했는데 이후 지금까지 왜 한 번도 재검진을 받지 않았냐는 물음이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이처럼 무서워서 못 왔다고 할 수도 없고, 도통 다른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간호사는 이어서 지난번 이력이 있으니 아예 추가 검사를 시행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는데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망설이자 그럼 진료실에서 의사와 상의 후 결정하자는 것으로 마무리해 주셨다.


용기를 내서 병원에 왔으나 대기하는 내내 지난날을 참회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것만 같아 께름칙했다. 곧 이름이 불리어 들어간 진료실에서 마주한 의사는 지난 검사결과를 살펴보더니 추가검사를 했었으나 결과는 정상이었으니 이번에도 기본적인 자궁경부암검사만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진료의자에 앉게 되었다. 앉기만 해도 상체가 젖혀지고, 다리가 벌려지는 전자동 검진대는 여전히 적응하긴 어려웠다. 전문가의 빠른 손놀림으로 2023년 한 해를 끌어온 과제 같은 검진이 드디어 끝이 났다.


육안으로 진찰 시 괜찮다며 걱정 말라던 의사의 한마디에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나오면서 추운 날씨에 주차 안내를 해주시던 분들께 커피를 선물해 드렸다. 어릴 적 건강검진을 미루고 미루던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이해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듯하다. 결국 내년 소망에도 건강이 당당히 1순위로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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