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Dec 07. 2023

스마트폰으로 일기 쓰는 초등학생

일기는 학교 숙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 12년 개근상을 받았던 만큼 초등 6년 동안 일기 쓰는 것이 아무리 과제에 불과하지만 건너뛴 적은 없었다. 엄마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저 사실에 기반해서 딸이 쓴 몇십 권의 일기를 보물처럼 내내 보관하셨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직접 고른 것들이 아니었다. 책장 한쪽에 붙박이처럼 자리 잡고 있던 책들은 외숙모가 전집 영업을 하러 집에 왔을 때 부모님이 구입하셨던 것이다. 관심사와 수준에 맞지 않아 펼쳐볼 생각도 하지 않은 덕분에 읽기가 잘 되지 않았으니 능동적인 쓰기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30대가 되어 읽기의 즐거움에 빠진 사람은 청소년소설 분야가 가장 놀라웠다. 독서에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에세이와 자기 계발 분야를 충분히 읽어보니 점점 동화와 소설 그중에서도 청소년소설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Young Adult Novel'이 우리나라에서만 청소년 소설이라는 분야로 불리는데 어른들은 청소년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읽기 꺼려지고, 정작 청소년들은 바쁜 학업으로 읽기 어려운 것 같다. 이제라도 읽어보는 청소년소설은 내 읽기 수준이 이 정도였는지 아니면 요즘 청소년의 수준이 이리도 높은지 의심이 들만큼 재밌다.


읽기의 다음 단계는 능동적은 쓰기다. 뭐가 될지는 몰라도 키보드를 두드리며 쓰고 있는 엄마 옆에 초등학생이 자꾸만 기웃거렸다. 소파에 자빠져서 한참 책을 보다가 엄마에게 놀아달라는 식으로 심심하다며 말을 걸었다. 쓰는 것을 멈추기 싫은 나는 한마디로 상황을 제압했다. "너도 한번 써봐."


사실 쓸 것은 차고 넘쳤다. 방금 읽었던 책을 기록해도 좋고, 일기를 쓸 수도 있었으니 아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물러나 주었다. 다시 지정좌석인 양 소파로 돌아간 아이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서 내심 무언가 쓰는 것을 기대했던 나는 하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몇 분 후 도착한 문자메시지는 아이가 보낸 것이었다. 평소 정해진 스마트폰 시간 이외에는 카메라 촬영을 하거나 사진을 들여다보며 추억소환을 하던 아이가 메모장에 3줄 일기를 써서 문자로 보낸 것이었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처럼 초등 저학년은 똑같이 스마트폰 키패드를 두드리며 문장을 완성했다.


밤늦게 퇴근한 배우자는 아이가 이번엔 문자로 일기까지 보냈다고 투덜댔다. 지난번 근무 중에 심심한 아이로부터 이모티콘 폭탄을 전송받은 이후 이제는 일기로 갈아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 둘에게 단체문자를 전송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로 배우자의 말을 잠재웠다.


"우리에게 문자를 보내줄 때 감사히 잘 받자."


초등학교 입학 당시 2시간이 넘도록 하루 일과를 재잘거리던 아이였는데 점점 그 시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더욱 귀하다. 진심이 담긴 능동적인 글쓰기는 매일이 아니어도 좋고, 매주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다.

작가의 이전글 별일 없는 하루가 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