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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Mar 12. 2024

오랜만에 명치가 아려왔다.

육아 10년 차에 길고 긴 가정보육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미래를 알았다면 시작도 못했을 길임은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마더링을 믿고 앞으로 더 많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 동안에는 서로의 건강한 독립을 위해 정서적 케어에 기울여야겠다는 마음이다.


아침에 제일 먼저 현관문을 여는 배우자를 시작으로 초등 3학년 아이는 0교시를 하는 것처럼 8시 10분이면 집을 나선다. 첫째 아이가 나가고 나서야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둘째 아이가 기상해서 얼굴 표정에 짜증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준비한다. 더불어 생애 첫 기관생활을 하게 된 만 5세 막내는 유치원에 간다.


어린이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양육했는데 바람처럼 아이들은 성향이 정말 다르다. 첫째 아이는 까다로운 기질이지만 사회성이 잘 발달되어 미취학 시절 기관생활 없이도 학교에 잘 적응했다.


둘째 아이는 비교적 순한 기질이어서 누이의 영향을 받아 무엇이든 잘 흡수하여 배워낸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다. 셋째 아이는 느린 기질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다양한 경험이 부족하여 취학 전 마지막 1년은 객관적으로 발달상 기관경험이 필요하다고 여겨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3월 첫째 날,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서 1시간가량 진행된 입학식을 참석하고 유치원 가방과 포장된 선물을 받아 든 아이는 마냥 기쁜 마음으로 무사히 단체사진까지 찍고 돌아왔다. 진짜 유치원 생활이 시작되는 둘째 날 아이는 어리둥절하며 등원했고, 얼굴에 눈물자국 범벅인 채 하원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평소 많이 해보지 않았던 소근육이 필요한 활동을 진행했는데 낯선 것에 탐색시간이 필요하고 쉽게 응하지 않은 아이 성격상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이는 화가 많이 난 채로 쿵쿵거리며 유치원 문을 나섰는데 그저 웃는 모습으로 고생했다고 안아주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하원 인사를 하며 내일 또 오겠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머릿속에서는 동시에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강렬하게 스쳐갔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듯이 들어갈 때는 어려워도 나올 때 기분이 좋으면 안심이 되고 희망이 보이는데 엉엉 울면서 나오는 아이를 보니 주양육자로서 앞날이 예견되었던 것 같다.


셋째 날 아이는 예상대로 유치원 건물 앞에서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40분을 울었고, 선생님을 만나고 싶지 않다며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짐과 동시에 지금 시기는 추후 학교에 갈 아이에게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짧은 시간이라도 꼭 기관을 경험시키려 아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었다.


유치원 건물 앞에서 교실 문 앞까지 30분이 걸렸고, 결국 선생님에게 들쳐 업혀 아이는 들어갔다. 다행히 전날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서류를 확인하여 파악하시고 최대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좋아하는 놀이 등으로 배려해 주신 덕분에 하원 시에는 울지 않고 반가운 얼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새롭게 적응하는 아이들의 아침은 여전히 나를 긴장되게 만들었다. 이제 막 초등맘인데 마치 고등맘처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1시면 하교하는 아이 덕분에 오후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3월 첫 주는 그야말로 짜증 액받이가 된 기분이었다.


저녁 9시면 집안 전체를 소등하여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게 만드는데 어느 날은 두 딸들이 잠들고 아들이 잠이 안 온다며 말똥말똥 깨어있었다. 낮에 막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눈물이 나는 중에 아들이 물어와서 엄마가 동생에게 가위질이나 여러 활동을 잘 못해준 것 같아서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날 저녁이라도 가위로 색종이를 오렸어야 했는데 저녁을 먹고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며 가져온 10권을 모두 보고 나니 막내는 이미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들은 한마디로 나를 위로했다. 못해준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을 때 아이는 내가 해낸 것에 대해 언급해 주었다.


엄마는 나랑 누나랑 동생을 낳아줬잖아.


오랜만에 명치가 찌릿하도록 아려왔다. 어리게만 보았던 아이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를 받고 나니 졸졸졸 흐르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콸콸콸 나와버렸다. 많이 아픈 2월이 지나고 나니 더 아픈 3월을 마주했다. 어서 마음까지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며 동시에 한 번뿐일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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