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Mar 11. 2024

당신이 쉬지 못한다면

초등학생 한 명, 유치원 졸업생 한 명, 가정보육 중인 유아 한 명 총 세명의 어린이와 빈틈없이 하루를 보냈던 겨울이었다. 겨울방학이 두 달이라는 것은 그리 특별한 충격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꼬맹이들과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돌아서면 찾아오는 식사시간, 온종일 지저분한 집안, 혹한기 체험을 하는듯한 바깥놀이 같은 것들은 그저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 버티면 따뜻한 날들이 찾아왔던 다년간의 숱한 경험이 있기에 그저 현재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배우자의 강도 높은 근무시간도 새롭거나 원망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에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마음깊이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른 오전에 출근해서 자정 혹은 익일에 퇴근하는 그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매일을 아이들과 즐겁게 살아가고자 마음먹었다.




마음가짐과는 달리 몸은 반항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지러웠으나 식욕까지 감퇴해서 정신력으로 일상을 버텨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체온을 확인해 보는데 체온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외출계획이 있어 아이들과 나간 김에 병원에 들르니 코로나라고 했다.


체온이 높고 몸살기운이 있어 독감이 의심된다고 검사하였으나 의외의 코로나라서 당황스러웠지만 빠르게 받아들이고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해 바로 집으로 향했다. 설 연휴 이틀전날 확진되어 연휴 동안은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약기운에 조금 살만하면 식사준비를 반복했다.


밤에는 냉동실에 들어와 있는 것 마냥 덜덜 떨리는 오한에 그동안 내 몸을 돌보지 못한 것을 자동으로 반성하게 만들었다. 약 일주일간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책 한쪽도 읽을 수 없었다. 정신이 들 때면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히 나만 항체가 없었던 건지 긴 나날동안 가족 중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사했다.


전염력이 강한 5일이 지나니 갑작스러운 복통이 찾아왔다. 흔히 맹장이라고 불리는 충수염 경험이 없던 나는 덜컥 아픈 위치가 예사롭지 않아 겁부터 났다. 몇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자 그대로 집에서 버티기보다 차라리 응급실행을 택했다.


가까운 응급실에서 초진을 보고 소변검사, 엑스레이, 피검사 등을 진행하자 의심했던 맹장이 아닌 대상포진이라는 의외의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공격을 채 회복하기도 전에 또 다른 병이 생겨버렸다. 몸이 자꾸만 말하는 것 같았다. '넌 좀 쉬어야 해!'


2월 둘째 주에 코로나, 셋째 주에 대상포진, 넷째 주엔 고관절 건염, 마지막주에는 사랑니의 극심한 통증으로 발치까지 진행했다. 이비인후과, 응급실, 정형외과, 마취통증학과, 치과 등 눈뜨면 병원 가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구강 내 정확히 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지 알 수 없어 동네 치과를 가보았으나 입도 잘 벌어지지 않고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진단을 내려버려 처방약만 먹었던 것이 통증을 더 키우기도 했다. 결국 사랑니 전문으로 검색해서 찾아간 치과에서 신뢰 가득한 해결방법을 말씀해 주셔서 지금은 마무리단계에 있다.



몸이 파업한 결과는 어르신들처럼 약봉투만 점점 쌓여갔다. 처방약을 복용하고 추가로 약국에서 구입한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극심할 때는 마치 벌을 받는 것만 같았다. 10대에는 아파도 학교에 가라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고, 20대에는 부모님 걱정시킬까 봐 아프면 참다가 새벽에 혼자 병원에 택시를 불러 갔었다.


그리고 30대에는 출산과 육아로 또 내 몸은 뒷전으로 하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어떻게 해왔는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스쳐가고 눈물만 났다. 하필이면 이런 의료대란 속에 응급실에서 4시간 대기를 하고도 진료를 못 보고 다른 병원에 갈 줄은 더욱 상상도 못 했었다.


지나온 30년 덕분에 앞으로의 30년 그리고 그 이후까지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던 2월이었다. 가족과의 관계, 건강,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건강을 제일 우선시해야 함을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무늬만 어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