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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Apr 12. 2024

학부모 전화상담을 신청했는데... 방문을 하라는 교사

올해도 어김없이 1학기 학부모 상담주간이 돌아왔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상담을 차례대로 마치니 막내의 유치원에서도 상담신청서를 보내주셨고, 상담내용을 작성해서 전화상담으로 체크 후 제출했다. 최종 확정된 날짜와 시간을 안내받고 상담을 약 일주일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유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급식시간에 거의 먹지 않았던 아이는 선생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완고하게 낯선 음식들을 먹지 않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과 아침식사 여부 등을 물으시며 곧 다가올 상담을 비대면이 아닌 대면으로 가능하신지 물으셨다. 결국 시간조정을 통해서 유치원에 방문하기로 약속한 후 통화는 종료되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기에 대면상담이 많은지 에둘러 여쭤본 질문에서는 선생님도 그저 뵙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통화공백은 수화기 너머의 어색한 웃음소리만으로 채워졌다. 지금까지 학부모 상담을 설렘과 긴장으로 채운 과거와는 달리 그 순간부터 설렘은 온통 사라지고 왠지 모를 긴장만이 나를 감쌌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 언젠간 하게 될 줄 알았던 첫 학부모 대면 상담은 어쩐지 불려 간 느낌이 들었다. 이럴 거면 상담신청서에 선택지는 왜 있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평소 1학기 상담 때에는 아이에 대해 잘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저것 드릴 말씀을 사전에 준비하기도 했던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몸만 갔다.




상담장소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고 앉자마자 선생님은 자녀교육 서적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책의 저자는 이미 관심작가였기에 이미 읽어본 도서였지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잘 받았다. 그 이후는 마치 예상했던 사람처럼 아이에 대해 관찰한 선생님의 많은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한 달 동안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들이 담겨있는 스케치북을 가져와 보여주시는데 단번에 어떤 것들을 그렸는지 알아차린 나와 달리 선생님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정교하지 않은 스케치와 컬러링에 대해 말씀하셨다. 상담을 위해 아이에게 던진 여러 질문들에서는 아이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후에도 식습관, 소근육 발달, 낯설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활동을 할 때 바로 시도해보지 않는 자세들에 대해 언급하셨고 끝내 선생님은 아이가 발달지연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해 보고 혹시 부족한 것들에 대해서 채워주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꺼내셨다. 이 말씀이 전화상으로는 꺼내기 어려우셨나 보다.


기관생활이 없던 아이는 엄마로서 단체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지시사항에 잘 따르는지에 관해서 궁금했는데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지켜본 선생님께 아이의 한국어 언어 능력에 대해서 왜 느려 보이는지 주양육자로서 나름 추측해서 설명드렸다.


무언가 변명처럼 말씀드릴 때마다 교사의 답변은 부메랑 같았다. 자신은 유치원 교사일 뿐 전문가가 아니니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검사여부를 시행할지 말지도 어머니의 선택이라는 말까지 꼭 덧붙이셨다. 그리고 기관생활이 꼭 필요하니 하원 후 오후 시간을 활용해 보라고 팁까지 알려주셨다.


마치 내가 지적받는 것만 같아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다행히 흐르지는 않게 잘 참아냈다. 아이의 부족한 면만 한 바가지 들은 느낌이지만 잘하고 있는 점도 언급해 주시긴 했다. 30분 상담 중에 3초 정도 아이가 미로 찾기를 잘한다고 하셨다.


가정에서는 아이의 그림실력에 매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기관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외투걸기와 양치 등 기본 생활습관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또래 아이들만 대하던 선생님께서는 비교군에 비해 뒤쳐진듯한 아이가 걱정스러우셨을 것이다.


상담을 다녀온 날은 계속 눈물이 나는 것을 참기 어려울 만큼 많이 울었다. 느린 기질의 아이인 것을 알면서도 현실이 버거워 대비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울고, 아이의 내면에 있는 똘똘한 면은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에게 무언가 주입시키고 학습시키려 하는 한국사회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영화 툴리의 현실판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면서 구몬 같은 학습지를 하는지, 그림을 좋아하니 미술학원을 다니는지 여부를 물어보셨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꼭 다 배우고 와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만 같아 추천하시는 것인지 여쭈어보니 권유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요즘 아이들이 많이 하고 있어서 물으셨다고만 했다. 그저 현실을 말씀하셨다. 기관에서는 다 배우고 나서 마련된 시간에 군말 없이 잘 해내야만 이상한 아이가 아닌 것이었다.


초등 1학년에서는 자음과 모음을 배우지만 입학 전에 한글을 어느 정도 배우고 들어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유치원에서도 발달 수준에 맞는 것을 경험하고 배우려 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다수의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입장은 급식지도부터 현실은 어렵다고 하셨다.


다양한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 셋 키워본 입장에서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세끼 끼니와 간식을 챙기고 막내는 첫째와 둘째를 따라다니기에도 바쁜 것이 현실이었다. 아이가 하원하면 초등 저학년인 첫째와 둘째 아이를 챙기느라 하루가 바삐 돌아가지만 모든 경험은 가정 특히 엄마의 몫이라는 게 느껴졌다.


답답하기도 하고 내심 억울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라는 책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은 이 책을 읽어보셨는지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나에게 어떤 가치와 태도로 육아를 했는지 궁금해하는 이는 없었다.


엄마는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순 없으니 울면서 다시 일어난다. 선생님 말씀대로 취학 전 아이의 정확한 발달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 예약을 해두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아이를 믿고 같이 용기를 내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아야 한다. 삶이 나에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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