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초진에서 아이에게 처방해 주신 3가지 검사 중 2가지를 완료했다. 대기가 많아 예약한 날짜까지 아직 한참 남은 1가지 검사를 제외하고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진료실로 향했다. 크나큰 장대비를 또 맞을 수는 없었기에 미리 일기예보를 살피는 마음으로 전날까지 각종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았다.
이번에도 적중 실패다. 그래도 생각해 간 최악의 경우는 간신히 면했지만 그것도 지금 당장만 모면한 것인지 몇 달 뒤에 다시 펼쳐질 일인지 알 수는 없어 보였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보였던 아이의 검사결과 2년 이상 언어가 지연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예상했던 수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게다가 발음의 정확도는 또래와 비교해 백분위를 매기면 최하위권이었다. 다행히 소근육과 신변처리 등 사회성 분야는 거의 지연이 없는 것으로 나와서 예후가 좋을 수도 있다는 힌트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4개월 뒤에 잡힌 지능검사 전까지 지금처럼 언어치료를 꾸준히 지속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진료실을 나오기 전, 교수님께 진료확인서를 요청드리자 2초 정도 생각하시고는 원인미상의 발달지연으로 진단명이 나갈 것이라며 알려주셨다. 전체 검사를 완료한 것이 아니기에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인지 혹여 다른 복합적인 어려움이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섣불리 진단을 내릴 수 없음을 덧붙여 설명해 주셨다.
그 과정에서 R코드와 F코드 같은 질병코드, 바우처 등 낯선 용어들이 교수님의 말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외국어를 아무렇지 않게 알아듣는 사람처럼 어느새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어미는 모든 것을 이해했고, 아이의 치료에 꽤나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주신 교수님께 감사할 지경이었다.
9월에 있을 인지평가까지 할 일은 정해졌다. 어휘력, 조음, 한글학습, 놀이활동, 전문가와 언어치료 등. 한 손에는 검사 결과지를 들고,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으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숙제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해 그저 뒤엉킨 상태로 집까지 돌아왔다.
주 2회 언어치료 전문가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집에서 아이와 짧게 복습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만 5세 아이는 해가 바뀌면 학교에 취학할 나이인 데다 최초의 인지평가 후 입학 전 한번 더 치료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검도 있을 테니 거의 모든 면에서 박차를 가할 일만 남았다.
매번 초등학생인 첫째와 둘째 아이의 단행본을 구입하던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각종 놀이활동북을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했고, 속속히 택배상자들이 차례대로 도착했다. 오리기, 만들기, 문해력 놀이활동북, 하루 한 장 학습지, 한글 스티거북 등 아이가 심심해할 때마다 꺼내어 하루에 한 장 혹은 한 권씩 해치우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주말에 아이의 컨디션과 타이밍을 엿보고 들이대면 백발백중 얼씨구나 좋다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금까지 언니와 오빠에게 책 읽어주는 엄마만 보아오다가 자신에게 맞춤형 활동을 제시해 주니 얼마나 반가울 일인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짐작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일주일에 5일이나 차지하는 평일이 되면 난감해진다. 기관에서 단체생활 경험도 필요한 어린이는 마음대로 결석할 수도 없고, 주 2회는 오후에 언어치료도 받으러 다니며 터울이 적은 언니와 오빠의 일정도 따라다니느라 집에 돌아오면 금세 해가지고 하루를 정리하느라 아이를 붙잡고 씨름할 틈조차 생기지 않는다.
지금처럼 똑같은 루틴으로 아이와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세 아이들과 다니며 들고 다니는 커다란 에코백에 항상 가위와 풀, 볼펜, 가벼운 워크북을 담아서 막내와 단둘이 30분만 시간이 생겨도 근처 카페를 찾아 대화를 나누며 아이에게 필요한 자극을 주고자 마음먹었다. 자투리 시간들이 몹시 귀해지고야 말았다.
그날도 초등학생인 두 아이가 운동을 가고, 근처 푸드코트에서 빈 테이블을 발견하고 아이와 자리 잡았다. 순조롭게 잘해나가는 듯싶다가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느낌이었다. 문제는 두 개의 유리병이 있고, 각각 3개와 5개의 구슬이 들어있는데 같아지려면 적은 구슬이 든 유리병에 몇 개의 구슬이 더 필요한가였다.
이 정도 난이도의 유아 워크북은 아이 셋을 키워본 엄마가 얼마나 수도 없이 해보았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며 몇 번을 반복하는데도 아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각각의 유리병에 있는 구슬들을 일대일 대응으로 선을 이어 남은 구슬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 주며 거의 답을 떠 먹여주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성질머리 급한 어미의 목소리를 디지털로 측정할 수 있었다면 아마 볼륨이 1 혹은 2 정도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표 학습을 집이 아닌 외부에서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선행을 시키고 있는 극성스러운 엄마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년에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와 일분일초가 급하다며 어쩌면 수능을 앞두고 있는 어미처럼 구는 자신이 꽤나 우습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했던 기준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아이에게 침착한 태도로 하나를 알려주기 위해 무한 반복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집이 아닌 외부였기에 아이에게 내 목소리가 약간 커지는 정도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아이와 단둘이 있던 집이었다면 어쩌면 나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만큼 무섭고 감정만 가득 담아 아이를 다그쳤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달아나게 만드는 엄마보다는 극성스러워 보이는 엄마가 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