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다른 층에 사는 이웃 주민을 오랜만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첫째 아이와 나이도 성별도 같은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반가운 마음이었다. 평소 그 친구를 떠올리며 달라진 외모며 성숙한 태도에 점점 예뻐진다는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는데 어머니의 생각은 다른듯했다.
“어휴, 사춘기가 와서…”
여자 아이들은 빠르면 4학년에도 온다는 그 무서운 사춘기가 저곳에도 벌써 출몰한 모양이었다. 사춘기의 ‘ㅅ’ 자만 들어도, 엄마들 눈빛만 보아도 이제는 대충 상황이 짐작된다. 이어서 우리 집 사정은 괜찮은지 물으셨다. 바로 옆 햇병아리 초등학생인 막내 손을 잡고 있었던 터라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안 괜찮아요…”
아파트 같은 라인에 첫째와 학년이 같은 아이들은 모두 다섯 명이다. 이 아이들과 아직까지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어본 적이 없을 만큼 집집마다 아이들이 수두룩한 편이다. 첫째 아이가 만 5세에 이사를 왔으니 예비초등생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지켜본 지도 어느새 5년 차.
꼬꼬마 어린이부터 소년, 소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매해 가까이서 직관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누구인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빠르게 진입한 청소년이 될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에게서도 다른 점이 확연히 보였다.
초등 저학년까지 엄마 손을 잡고 집과 어딘가를 오가던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엄마와 동행하지 않는다. 만약 엄마와 어딘가를 함께 간다면 아파서 병원을 가거나 아마도 학원을 등록하러 가는 길임이 틀림없다. 외동자녀의 엄마들은 혼자 다니는 일에 점점 익숙해진다.
예방접종이나 주요 과목에 해당하는 학원들도 본인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억지로 임하지 않는다. 학교에 다녀와서 할 일부터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이어도 취침 전까지는 해야 할 일을 완료하기에 존중해 주는 편이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서 외투를 벗어 현관 앞에 내팽개쳐 두어도 크게 게이치 않는다.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해 두자는 말을 11년째 해도 안되면 이건 안 되는 건가 보다 하고 결론 내렸다. 이렇듯 어느 부분은 믿고 기다려 주는 듯하고, 어느 부분은 포기한 듯한 그 아슬한 경계를 오가며 사춘기에 진입한듯한 학생과의 동거가 진행된다.
애써 머릿속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정리하고, 육아서와 부모교육에 관련된 도서를 한 트럭 읽어봤자 나에게도 안 되는 날은 있다. 늦은 밤 침대에 드러누운 어미 위에 첫째 아이가 내 배를 베개처럼 쓰며 한참 수다를 이어갔다.
그 모습을 본 막내는 언니의 배를 베개처럼 쓰며 똑같이 누웠고, 정신없이 말을 계속 이어가던 아이에게 나는 비켜달라는 말을 했지만 아이가 듣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막내의 머리를 손으로 휙 치워버렸고 그것을 목격한 어미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먼저 비켜달라는 말을 했음에도 듣지 못하고 계속 누워서 기다렸는데 동생 머리를 그런 식으로 쳐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말을 한참 동안 이어갔다. 아이가 눈물을 흘려 내 말이 멈출 때까지. 내가 모르는 오해가 있었다 해도 머리를 손으로 밀쳐버리는 행동에 관한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는 정당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불편한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한참 늦게 잠이 들고 어미는 잠을 이루지 못하여 아이의 일기를 살펴보았다. 자물쇠로 잠긴 일기는 열쇠가 두 개 있는데 이전에 아이가 나에게 하나를 나눠 주었다. 한마디로 합법적으로 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나 아이는 그날에 관한 일기를 써 놓았다. 억울했던 감정, 오해가 있었던 상황, 자신이 마주한 상황들이 본인도 억울한 듯 답답한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로 인해 스스로 정당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 짚어보고 내가 틀릴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마음이 밤새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이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는 식탁에 앉아서 아침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 메뉴로는 아이가 호불호 없이 무조건 좋아할 만한 메뉴를 내놓았다. 그리고 마주 앉아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엄마가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모르던 오해가 있었나 보다고 말을 꺼냈다. 잘 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식으로 말해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을 아침이라 아이도 얼떨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었다.
어린 시절 물건이 공중을 날아가서 사람을 맞추던 다음날도, 엄마가 아빠를 구시렁대며 욕하던 다음날도, 아빠가 고래고래 전화로 누군가와 싸우던 다음날도 늘 같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아마도 직장이나 학교 같은 사회라면 무언가 한마디라도 하고 지나갔을법한데 가장 친밀한 가족이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가볍게 생략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시끌벅적한 날의 다음날은 더 조용했고 이상하게도 그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보니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빨리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편하니까 예전의 부모처럼 그러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의 편한 선택이 잔잔하게 아이를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할 수 있음을 잘 알기에 굳이 불편한 상황을 수면 위로 띄웠다.
시작은 조그마한 오해와 갈등이었겠지만 묻어두고 서로를 향한 지적과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만 남았을 때 더 이상 관계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모들이 불편한 상황을 꺼내어 오해를 부수고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 해내는 꿈같은 독립의 순간을 오랜 이웃주민들과 함께 웃으며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