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언어치료를 진행한 지 2년째. 그간 아이는 말이 많이 늘었고, 학령기 어린이답게 읽기와 쓰기에도 제법 적응해 어느 정도 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이러한 긍정회로를 돌리는 건 아니었다. 막내와 한 살 터울인 둘째 아이의 귀에는 거슬리는 표현이 수두룩한 모양이다.
'왜 웃겨'가 아니고 '왜 웃어'
'입겨줘'가 아니고 '입혀줘'
막내의 말을 들으면 우리 모두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만 서로의 피드백은 다르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제대로 된 표현을 다시 들려주며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막내와 영혼의 단짝인 오빠는 조사나 문장 표현의 오류가 나타났을 때 종종 거침없이 지적한다.
처음에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정상발달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오류표현을 들었을 때 어린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어수업을 받고 아직 배우는 중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양해를 수없이 구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한 명에게는 틀려도 괜찮다며 타인의 말을 신경 쓰지 말라는 응원의 말을 건네고, 한 명에게는 사실 네 말이 다 맞으니 언제까지일지 모를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을 조용히 건넸다. 둘의 날카로운 눈빛 사이에 걸쳐져 있는 어미는 점점 너덜너덜해졌다.
초등 1학년 막내에게도 2학기가 되니 받아쓰기가 시작되었다. 첫째와 둘째 아이가 했던 연습처럼 막내와 받아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급수표를 보고 따라 쓰기, 틀린 글자 고쳐쓰기, 불러주면 받아쓰기. 이렇게 3단계로 진행한 연습이 실전에서는 막내에게 별로 효과가 없었다.
한두 번 짧은 시간 연습해도 거의 매번 받아쓰기를 다 맞아오는 둘째 아이와 달리 막내가 오빠와 비슷한 결과를 내려면 최소 열 번 이상의 연습을 해야 했다. 정상발달과 경계선 지능의 아이를 나란히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마치 출발점 자체가 다른 아이들 같았다.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막내에게는 반복만이 살길이었다. 희망적인 것은 반복하다 보면 결국 해내고, 습득한다는 점이었다. 한두 번이면 끝낼 받아쓰기 연습을 총 열 번으로 나누어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 다른 방식으로 반복했다.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지 물어도 곧잘 대답해 주고, 수수께끼 같은 받침 질문이 이어져도 O와 X로 힌트를 주며 지속했다. 받아쓰기지만 너무 어려워 결국 오픈북스타일로 보고 쓰더라도 크게 게이치 않았다. 어차피 여러 번 더 지속할 연습이고, 아이가 달아나지 않게 배움을 지속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나 이 모든 과정을 매의 눈으로 알게 모르게 지켜본 초등 2학년 어린이가 있었다. 그렇게 물어보면 안 되고, 보고 쓰면 안 되고, 마침표가 있는지도 알려주면 안 된다는 식의 잔소리가 책상을 온통 뒤덮었다. 자신이 연습한 과정과 다르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불러주지 않는다며 본인의 기준을 잣대로 쏟아낸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기에 입술을 앙 다물었다. 하지만 막내는 본인을 향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지적들을 듣더니 어느 날은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이렇게 해도 된다며 오빠에게 큰소리를 떵떵 치기도 했다. 몇 달이 지속되자 목소리를 높여온 둘과 달리 어미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말았다.
저 사람은 저렇구나, 나랑 다르구나
둘째 아이를 불러서 앞으로 만날 수없이 나와 다른 타인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도 결국 타인이니 동생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타인을 위함이 아니라 둘째 아이인 자신을 위한 것임을 덧붙였다.
우리 모두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각자가 내 방식만이 맞다고 생각하는 순간 타인은 틀리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길게 보면 타인보다 나 자신이다. 자신이 할 일들을 스스로 잘해주는 둘째 아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이 아이 나름대로 앞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거의 눈물로 호소하다시피 아이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제대로 먹혔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로 동생을 향한 잔소리는 사그라들었다. 그 시간 동안 보고도 모른 척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오빠의 바쁜 시간을 틈타 막내의 숙제를 끝내버리기도 한다. 서로 다른 이 둘의 영혼의 단짝 모먼트를 오래도록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