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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Jan 07. 2023

어린이의 콩깍지

초등 1학년인 첫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날이었다.

육아를 하기 전만 해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책을 읽어주는 일은 그만두어도 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내가 그렇게 자라왔고, 어릴 적 새것 같은 전집이 집에 꽂혀있어도 혼자선 꺼내볼 엄두가 안 났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린이는 대부분 심심하면 스스로 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한다.

물론 가정 내 정해진 영상 시청 시간을 모두 사용하고, 다른 해야 할 일을 다 하고서도 심심하면 그제야 책에 눈길이 가는 보통 어린이다.


이런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1. 잠자기 전에 책을 같이 보고 싶어 할 때

2. 관심밖의 분야 혹은 글밥이 많은 책으로 읽기 업그레이드할 때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이 두 번째에 해당되었다.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고, 반에서도 몇 명의 아이들이 보고 있다며 제목은 익히 알고 있던 책이었다.

이 책을 한번 쑥 살펴보고 재미없을 것 같다며 아이 손에서 멀어진 이유는 딱 하나였다.

평소 보던 책과는 달리 글밥이 많고, 그림은 줄어들었다.

줄어든 글씨크기와 좁아진 줄간격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때다 싶어 한번 넌지시 물었다.

"엄마가 읽어줄까?"

"응!"

아이는 떡밥을 물었고, 150페이지 내외인 1권을 모두 읽어주었다.

이미 재미를 알아버린 2권은 서로 번갈아가며 읽었고, 3권에 들어서는 나를 찾지 않았다.


책을 읽어주는 과정에서 간혹 나오는 전천당의 주인을 보고, 아이가 나와 그림을 번갈아보며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순간 연기자 뺨치는 읽기 능력 덕분인가 싶었지만, 수년째 적응되었을 텐데 뭣하러 또 새삼스럽게 놀라나 싶어 따로 묻지 않았다.

다음페이지로 넘기려는 찰나 아이는 입을 열었다.


엄마는 늙지 않았는데 머리에 흰머리가 보이네?


그림 속 전천당의 주인인 '베니코'는 옛날 동전 무늬가 들어간 자주색 기모노를 입었고, 굵게 말아 올린 머리카락은 새하얗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아니고,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 빨간 립스틱을 발라서 화려한 느낌이지만 젊은 느낌도 아니다.


30대 엄마는 아이 반에서 엄마들 중 나이가 제일 어린 편에 속해있어 객관적으로 보면 늙지 않았다.

그렇지만 세 번의 출산으로 점점 흰머리는 늘어갔고, 뿌리염색을 하지 않은 채 전천당의 주인처럼 머리를 묶는다면 누가 봐도 흰머리가 가득하다.

주관적으로 보면 8년의 기간 동안 어쩌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눈에 비친 나는 늙지 않았고, 아름답다.

세수하지 않은 꼬질꼬질한 모습에도 예쁘다는 말을 몇 년째 계속해주니 실제로 그런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간혹 있다.


아이게게 두꺼운 책을 한 권 읽어주고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은 밤이 되어도 자꾸만 그 말이 떠올랐다.

잠든 아이의 얼굴과 세 번의 출산으로 올록볼록해진 배를 번갈아 보았다.

한 번도 내 몸이 날씬하다거나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다이어트는 커녕 출산 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를 탓하며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여전히 울퉁불퉁하며 튼살 가득한 내 배를 쓰다듬으며 고생했다고 스스로 말해주는데 눈물이 주르륵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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