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t and Keep going!

마흔여덟, 나 홀로 유럽 여행 (마지막)

1.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어느새 8일이 지났다.


돌아오자마자, 잡혀 있던 강의 일정을 소화하고, 몇 개 모임에 참석했으며, 시댁에 가서 김장하고 오니 어느새 8일이란 시간이 지나 버렸다. '내가 주도하지 않는 스케줄에 따라 사는 것'이 여행과 일상의 차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면서 말이다.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한 나의 '마흔여덟, 나 홀로 유럽 여행기'가 종종 떠올랐지만, 여드레 날인 오늘에서야 브런치를 열었다.


기억이 조금 바랬지만, 바랜 대로 나의 마지막 날의 기억을 담아 둔다.


2. '길치'이지만 길은 잘 찾아요.


15박 17일 여행의 마지막 날.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처럼, 유럽 여행의 마지막 이자 런던의 마지막 날도,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 최대한 많이 걷고 싶었다.


최대한 넓은 영역 표시를 하고 포유류의 본능 같은 것일까?


저녁 8시 10분 비행기 시간에 딱 맞춰, 나는 아침 8시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하루를 시작해,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Street Market인 버로우(Borough Market)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Tate Modern Gallery를 들려 20대에 영감을 준 Mark Rothko'의 작품을 본 후, 최근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사랑받는 힙한 거리가 됐다는 쇼디치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며, 공항에 6시 도착하는 빡빡한 일정을 짰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원한 풍경~ "세계 시간의 기준은 우리가 정한다"는 더 그레잇트 브리튼의 가오를 느낄 수 있다.
버러우 마켓의 노천에서 빠에야와 멀드 와인을 마시며,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랬다.

버러우 마켓의 흥을 느껴보셔요!

나의 대담한 마지막 날 여정은 아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길을 무척 많이 잃었다.

2. 그렇지만 모든 일정을 즐겁게 소화했다.


1번과 2번은 자칫 상충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나는 길치고, 길치에게 난생처음 가보는 지구 반대편의 장소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난 평생을 길치로 살아온 덕분에, 잃어버린 길에서 당황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새롭게 현재 위치를 파악하며, 도구(구글맵)를 리셋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법을 익혀왔다. 그것도 사십 팔년 동안이나. 어찌 보면 '길치'이지만, 리셋을 통해 목적지를 찾아내는 '길 찾기'의 달인인 셈이다.


물론 구글 맵이 알려주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온 나를 몇 번씩 발견하면서 나를 자책한 순간도, 이러다 계획했던 곳을 가지 못하겠다고 두려웠던 순간도 많다(내가 생각해도 심각하다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일단 몸을 움직이면, 내 몸에 프로그래밍된 내 패턴은 나를 어찌어찌, 다음 목적지에 데려다 두었다. 그리고 그 성취감 덕분에 또 즐거운 기분으로 다음 목적지에서 새롭게 만나는 풍경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곳의 정취를 (외로움도 함께) 즐겼다.


마지막 날, 마지막 목적지였던 쇼디치 하이스트릿트. 골목 골목 길마다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특히나 길을 많이 잃었다 :)

특히, 히드로 공항에 가는 길은, 열차도 제 시각에 오지 않고, 기껏 탄 열차가 공항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면서,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심각하게 들었지만, 다행히 1시간 20분 전 공항에 도착. 히드로 공항 2 터미널을 뛰어다니며 가까스로 비행기 탑승에 성공해, 나의 순발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행기 탑승 줄에 서서 나는 이렇게 혼잣말로 나를 칭찬했다.


'역시! 난 짱이야'

잊을 수 없는 히드로 공항 터미널 2. 영국 지하철은 구글맵에서 보여주는 시간이 틀릴 경우도 많고, 방향도 매우 다양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3. 나는 이런 때 이렇게 하는구나! - 두렵지만, 두려움을 인정하고 일단 움직인다.


너무 젊지도, 또 너무 나이 들지도 않은

마흔여덟에 혼자 한 여행은

외로웠고,

불편했다.


그 외로움 덕분에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나의 생각과 감정, 원하는 목적지에 오롯이 집중하고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불편함 덕분에 낯선 곳에서 나를 지키고, 또 즐기려

나의 재능과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나를 십오일 동안 바라보며,

'난 이럴 때 이렇게 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나를 망가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구나.'

'내가 나를 무척 사랑하는구나.'를 느끼며,

스스로를 더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돌아보면, 어느 하루도 특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가 나를 그렇게 믿고 바라봐 주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지구 반대편의 대도시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 보다

더 복잡한 현실.이라는 시간과 공간에서,

난 또 계속 길을 잃을 것이다.


내가 찰떡처럼 믿었던 구글맵과 같은 도구들은 계속 에러를 표시하며 나를 당황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십오일처럼,

내가 소망하는 목적지를 마음에 잘 새기고,

내가 나를 잘 바라봐 준다면,

그리고 '자책'이 아닌 ‘긍정적인 마인드로 리셋할 수 있는 용기’를 낸다면,

이십 대 보다 체력은 부족하고, 순발력도 떨어질지라도

나는 내가 망가지도록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렇게 나는 현실이라는 여행에서,

마흔여덟 나 홀로 유럽 여행 전 보다 나를 믿으며,

전 보다 덜 흔들리고, 더 만족하면서 길을 걸어갈 거다.


나의 자화상이 만들어낼 이야기를 나답게 채워가면서,

내가 걸을 수 있는 최대한 멀리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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