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in UK - 옥스포드
천년 전에 지어진 이 건물에서 왜 굳이?
런던에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옥스퍼드 Oxford.
영국의 엘리트주의와 지성을 대변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대학이라는 수식어가 끌려서는 아니었다. 그저 왠지 영국적인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11시에 도착했지만, 유럽에서 가장 장오래된 보들리 도서관(Bodleian Library)투어 프로그램이 마지막 타임인 3시 반에만 가능해, 그 사이 시간 동안 38개의 단과 대학이 모여있다는 옥스퍼드를 천천히 둘러보게 됐다.
유럽 여행 15일째가 되니,
화려하고 위엄있는 궁궐에는 더이상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옥스퍼드에 와서는 입이 자꾸만 벌어졌는데
실제 학생들이 이 오래된 건물에서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닌가.
거리 곧곧에서 보수 공사를 하는 걸 보면서,
관광 목적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며 훼손되는 걸 생각하면 유지 보수 비용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이 춥고, 불편한 건물에 전세계 수재들이 어마어마한 학비를 내가면서 대체 왜?
효율과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
어찌되었던 3시 반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옥스포드를 거닐었다. Market에서 직접 구운 빵과 라떼도 마시고, 1200년대부터 에일 맥주를 만들었다는 좁디 좁은 펍에서 함께 간 호스텔 친구와 맥주도마시면서, 실용주의자인 나도 옥스퍼드에 대한 호감이 점점 올라가긴 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투어 프로그램에서 그 오래되고, 불편하고, 추운 도서관의 역사를 들으면서, 나는 뉘우쳤다.
1200년대에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도서관이, 이후 종교 개혁과 세계 대전 등 여러 고난을 거치면서 많은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폐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누군가의 유산으로, 누군가의 사재와 노력으로 도서관은 계속 부활했고, 확장돼 왔다. 그래서 지금도 새로 출판되는 출판물들을 계속 소장해 나가면서, 1400만권의 책과 아이템을 가진 영국 최대 도서관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실용주의 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식에 대한 자신들의 자부심, 긍지, 사회적 책임과 기여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는 민족이기에, 지금도 이 불편한 전통을 유지하며 전세계에서 지성인들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인용된 것처럼,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생각은
나는 왜 이 불편한 여행을 하고 있을까?란 질문으로 이어졌다.
익숙한 서울이었다면, 혹은 베트남이나 태국같은 휴양지였다면, 6-8명씩 호스텔에 머물면서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이 여행보다 훨씬 더 편안했을 텐데, 왜 굳이?
그리고, 15일 여행의 14일째가 되어 보니, 나에게 진짜 중요한 걸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믿고 마실 수 있는 식수.
추위와 피곤에 지친 몸을 달래줄 따뜻한 물 샤워
깨끗한 침구와 수건
지도와 나침반, 펜
주위 사람들의 친절
나에게 맞는 음식을 아는 것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체력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의 밸런스
혼자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외로울 때 떠올릴 수 있는 언제나 내편인 사람의 존재
뜻이 맞는 친구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언어 능력과 개방성, 호기심
컴포트 존을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
현재의 관점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리프레임 스킬
오랜 시간 몰입할 수 있는 주제
아침을 시작하고, 저녁을 마무리하는 리추얼
나를 넘어서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존재라는 기여감
나의 개인적 가치와 연결된 일과 사회적 정체성
여행의 목적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취향을 아는 것.
그래서 소망한다.
돌아간다면, 위의 항목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내 삶의 여정에서,
불편하다고 피하지 않기를.
남의 답에 휘둘리지 말고, 내 답에 집중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결국, 나다움에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하기를.
호사스러운 이번 여행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오늘의 모닝 리추얼,을 여기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