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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궁금했던 독일 이민 이야기

[이민자 인터뷰③] 독일 에센 김성길, 정보경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이민자를 찾는다는 글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자 몇 군데서 이메일이 왔다. 그중 김성길, 정보경씨의 이민 스토리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많은 이민자들이 타지에 정착하면서 외롭고 힘든 나날을 겪겠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이 부부의 우여곡절은 우리를 계획에 없던 에센(Essen)으로 향하게 했다. 그 이야기를 글로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이들의 힘겨웠던 이민 스토리 일부를 소개한다.


김성길(30세), 정보경(27세)

- 가족 : 부부, 푸들 한 마리

- 거주지 : 독일 에센

- 독일 거주 1년 9개월 차

*모든 내용은 2016년 9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김성길 Timeline

2005년 1차 대학 입학(호텔경영학과)

2007년 대학 자퇴

2008년 1월 군 입대

2010년 2차 대학 입학(체육학과)

2012년 3차 대학 입학(치기공과)

2014년 1월 결혼

2014년 12월 21일 독일 출국

2015년 9월 치기공소 취업


공부보다 노는 게 좋았던 성길씨가 대학을 세 번이나 가게 된 건 그의 아내 보경씨 덕분(?)이다. 2006년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보경씨와의 연애는 순탄치 않았다. 연애 초기엔 장모님 반대가 심해 숨어 만나기 일쑤였고, 군 면제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다녀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장모님 말씀에 덜컥 강원도로 자원입대를 했다. 첫 번째 대학은 본인이 다니기 싫어 자퇴를 했지만, 군 제대 후 두 번째 대학은 보경씨의 의지에 따라 입학하게 됐다. 둘이 함께 치기공(3년)을 전공하고 이민을 가자는 얘기에 다시 학교를 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적은 치기공과를 지원할 수 없었고, 졸업자는 재입학이 쉽다는 걸 노려 일단 체육학과(2년)로 들어갔다. 그 결과 그는 총 세 번의 대학 입학을 하게 됐다.

9월 9일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에센에 방문했다.

정보경 Timeline

2007년 1차 대학 입학, 1학기 마치고 자퇴(치기공과)

2010년 2차 대학 입학(치기공과)

2013년 졸업 후 약 1년 간 치기공센터 근무

2014년 1월 결혼

2014년 12월 21일 독일 출국

2016년 5월 치과 취업(치위생사)


미국에 사는 두 고모 덕분에 어릴 때 이민을 갈 뻔했던 보경씨는 해외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런 동경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확신으로 변했다. 2006년 대학에 수시 합격한 후 성길씨와 교제를 시작한 보경씨는 그때부터 그와의 인생 설계를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2009년 독일 이민을 위해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듬해 다시 치기공학과를 들어갔다. 시험 기간이면 본인은 알 필요도 없는 체육학과 수업 내용을 정리하며 성길씨의 공부를 돕고, 한 편으로는 독일에서 살 집을 구하는 데 전념했다. 성길씨의 학업이 모두 끝날 무렵인 2014년 말 보경씨도 독일 에센에 거처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 독일 이민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경 : 고모를 통해 치기공사 분야가 해외에서 취업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오빠가 전역할 때쯤 제가 “기공 기술을 배워서 같이 외국 나가서 살자”고 했어요. 그냥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없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독일에는 마이스터(장인)* 제도가 있고, 기공술이 발달해있어요. 아주 유명한 기공사도 독일 사람이고, 기공 기계의 80%가 다 독일산이에요.


*마이스터(Meister)

독일의 마이스터는 해당 분야 경력과 더불어 엄격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마이스터가 되면 석사 또는 박사 정도의 실력으로 인정받으며,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직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 치기공이나 제빵, 자동차 정비 등 특정 직업군은 마이스터만 영업허가를 받을 수 있다.


- 보경씨가 처음 독일로 가자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성길 : 저는 보경이 얘기에 토를 안 달아요. 저희 어머니도 포기할 정도로 많이 놀았던 제가 보경이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거든요. 대학을 다시 갔고, 보경이가 도와줘서 공부를 하다 보니 과 수석을 하고 매년 장학금도 받았어요. ‘내가 외국 가서 살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둘이 같이 가는 거니까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일에는 여름과 겨울에 2주씩 두 번 사전 탐방을 왔고요.


- 여러 도시 중에 에센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보경 : 한국에서 독일 집을 구하는데 1년이 걸렸는데, 그게 에센이었어요. 독일에선 집을 구하려면 재정 보증으로 보통 3개월 치 월급 명세서를 요구해요. 한국에 있던 저희에게 독일의 월급 명세서가 있을 리 없으니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죠. 그래서 독일 부동산 사이트 대신 ‘베를린 리포트(독일의 한국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밤낮으로 집을 찾다가 겨우 세입자를 구한다는 글을 발견한 거예요.


김성길씨가 쨈과 동네 산책을 하고 있다. ©정보경

이민자의 첫 번째 관문 - 관공서와 언어

무사히 에센에 집을 구하고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취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취업을 하기엔 독일어 실력이 턱 없이 부족했다. 한국에서 독일인에게 과외도 받았지만 정작 실 생활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독일 정착을 위한 관공서 업무를 보면서 제일 많이 들은 얘기는 “독일어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였다. 생활에서 동양인이라는 차별은 없었지만, 독일어를 못해서 발생한 언어 차별은 정말 힘들었다.


둘은 바로 어학원을 등록했고, 성길씨는 이 와중에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취업이 될 때까지 마냥 돈만 쓸 수는 없었다. 짬짬이 한국인 이사, 식당 일을 하면서 집 주변의 치기공소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는 외국인이었고 독일어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보경씨가 우연히 신문에서 치기공사를 구하는 광고를 발견했다. 성길씨에게 알리기도 전에 남편의 이력서를 제출했다. 곧 면접을 보자는 회신이 왔다. 하늘이 돕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성길씨는 독일에 도착한 지 9개월 만에 정말 어렵게 (실습)취업을 했다.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끝나기 3개월 전이었다.


- 취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구직 활동은 어떻게 했나요?

성길 : 지도에서 집 근처 10km 기공소를 찾아보니 60곳이더라고요. 15곳은 이메일로 지원하고 45곳은 제가 직접 찾아갔어요. 제 소개가 담긴 이력서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있는) A4 23장짜리 포트폴리오를 들고 갔죠. 60곳 중에 2곳에서만 ‘안 된다’는 답장을 받았어요. 나머지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요. 일단 외국인이라 꺼렸고, 두 번째는 한국 학위는 인정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언어의 문제였어요. 단 한 곳도 안 되니까 그때는 너무 충격이 컸어요. 내가 독일에서 일할 수 있을까 좌절했죠.


- 지금 회사는 어떻게 들어간 거예요?

성길 : 이제 막 독립해서 기공소를 차린 두 명의 마이스터 사장이 첫 직원을 뽑은 게 저였어요. 처음엔 사장의 말을 90% 못 알아들었어요. 제가 사장이라면 안 뽑았을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왜 나를 뽑았냐고 물어봤어요. “독일 직원은 자존심과 고집이 세서 사장과 직원이 자주 싸우는데 너는 그게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사장에게 ‘Fuck You’를 날리는 경우도 있어요.(웃음) 두 사장이 15년 동안 같이 일했는데 “성길이 같은 직원은 본 적이 없다”고 해요.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지각, 결석, 조퇴한 적이 없어요.


보경 : 오빠가 3일 정도 가채용 근무(Probearbeiten·시급 8.5유로)를 한 후, 일하러 나오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수습으로 3개월(일 4시간 근무·월 400유로) 일하는 거라 정규 계약도 아니었는데도요. 그런데 며칠 후 한 사장이 오빠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든 거예요. 어학원 다니는 동안 손이 굳고, 환경도 낯설어서 그랬던 건데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못한다”라고 성질을 냈데요. 근데 (오빠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린 거예요.


성길 : 어떻게 구한 직장인데 일을 못한다고 하니까 눈물이 났어요. 처음부터 모두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제가 울자 당황한 그 사장이 괜찮다며 뒤에서 안아주더라고요. 저는 “원래 이렇지 않다. 어학원 다니는 1년 동안 손이 굳어서 그런 거다. 조금만 지켜봐 달라”고 했어요. 저는 조금 꼼꼼하게 일하는 편이고 그 사장은 빠른 일 처리를 원했던 건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이민자의 두 번째 관문 - 취업과 노동체류허가

실업 문제가 한국에서만 심각한 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유럽 국가는 외국인 취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많은 독일 유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유도 결국 이 장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에 난민이 늘어나면서 체류허가를 받기는 더 어려워졌다.(노동청이 노동허가를 하면 외국인청이 이 기간에 맞춰 체류허가를 발급한다. 흔히 ‘취업비자’라고 불린다)


독일의 관공서는 담당 공무원의 판단이 중요한데, 성길씨의 담당자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습 근무를 마친 성길씨가 정규 근로계약을 하고 노동허가(Arbeitserlaubnis)를 신청했지만, 노동청은 이를 거부했다. 독일에서 (기공사)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독일에도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왜 외국인을 채용하느냐는 입장이었다. 한국 대학의 학위와 국가시험에 합격해 받은 자격증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계속 노동허가가 나지 않자, 성길씨의 사장이 팔을 걷고 나섰다.


사장은 꾸준히 왜 성길씨를 채용해야 하는지 사유서를 제출하고, 베를린의 노동청에 전화해 노동허가를 요구했다. 그 과정만 3개월이 걸렸다. 사장이 노동청에 “성길씨에게 노동허가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 회사가 문 닫을 때까지 독일인 채용은 없을 것”이라고 압박하자, 결국 노동청은 독일인 실업자 1명을 추가로 채용하면 노동허가를 주겠다는 타협안을 제안했다. 두 사장은 이를 받아들였고, 기공소는 성길씨와 독일인 직원 1명을 채용해 현재 모두 4명(사장 포함)이 함께 일하고 있다.


길고 긴 노동청과의 싸움을 끝내고 체류허가 예약 이메일을 받은 날 빵집에서 남편과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보경)
(독일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1000여 명 중에 약 1, 2명 정도만 노동허가를 받는 데 성공해요. 13명이 신청했는데 그 날 저를 빼고 모두 떨어졌어요.
저는 정말로 운이 좋은 거예요(성길)

옆에서 이 과정을 지켜본 보경씨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한국 학위와 기공사 면허증을 포기하고, ‘아우스빌둥(Ausbildung)’ 과정을 거치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미 배운 치기공사 대신 치위생사를 하기로 했다. 요즘 보경씨는 집 근처 치과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두 번 꼴로 직업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다. 교재비를 포함한 모든 학비는 치과 원장이 제공하며, 당연히 급여도 받는다.


*아우스빌둥(Ausbildung)
만 17세 이상부터 지원할 수 있는 독일의 직업훈련 과정. 산업체에 아우스빌둥으로 취업하면 주 3~4일 산업체에서 일하고, 주 1~2일 직업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외국인이 아우스빌둥 과정에 등록하면 ‘아우스빌둥 체류허가
’를 받을 수 있다. 독일에서 치기공, 치위생사 등의 직업군은 대학이 아닌 아우스빌둥을 통해 양성되며 약 3년의 과정을 끝내면 대부분 취업에 성공한다.

독일에선 전등도 없이 전선만 나와 있는 빈 집으로 이사를 한다. 벽 페인트 칠부터 싱크대 조립까지 두 사람이 손수 꾸몄다. ©정보경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의 연속

한국에서 보경씨는 1년 정도 사회생활을 했다.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에 근무하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상사의 결혼기념일이나 배우자의 생일 선물 등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 보경씨의 사비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업무 시간에 상사의 집에 따라가 장례식용 원피스의 지퍼를 내려 준 적도 있었다. 이런 생활을 하다 독일에 와 보니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정보경

저희 치과는 환자 치료가 퇴근시간 이후까지 이어지면 초과 근로를 5분 단위로 계산해요.
초반에 환자 치료가 오후 5시 반에 끝나서 퇴근 시간(6시)까지 휴게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원장에게 ‘왜 퇴근을 안 하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치위생사도 의자에 앉아서 일해요. 한국에서는 당연히 서서 해야 하거든요.
이삿날은 법정 휴일이에요. 우연찮게 원장에게 이사한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쉬라”고 해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고마운 게 아니라 당연히 원래 그런 거야.”라더라고요. 그날 안 쉬면 정부가 ‘이사해야 하는데 왜 일을 시켰냐. 그러면 이 사람은 언제 이사를 하냐.’고 제재한다는 거예요.
치과 직원 10명의 휴가 계획이 내년 말까지 모두 잡혀 있어요. 2, 3주를 몰아서 사용해도 괜찮고, 눈치 볼 필요도 없어요.


김성길

오전 8시에 출근해서 보통 오후 4, 5시에 퇴근해요. 주 5일 근무에 1년 동안 휴가는 23~30일 정도 되고요.  
한국에선 치과 주문을 받으면 기공소가 약 3일 안에 만들어서 보내야 해요. 그러니까 매일 새벽까지 일하는 거예요. 독일에선 최소 2주의 제작 기간을 줘요. 일이 없는 날은 퇴근 시간보다 일찍 집에 가도 되고요.
수습 시절 휴가 중에 축구를 하다가 손가락 뼈가 부러진 적이 있어요. 회사에 설명했더니 사장은 “당연히 쉬어야 한다며 수술 잘 받고 한 달 뒤에 보자”고 웃으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당연히 급여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월급이 전액이 입금됐어요. 그리고 수술비가 약 5,000유로 정도 나왔는데 모두 다 보험이 돼서 환자 본인부담금은 겨우 30유로만 냈어요. 만약 한국이었다면 사직서를 내거나, 수술 직후 재활 기간 없이 바로 출근했어야 할 거예요. 병가를 냈어도 당연히 무급 휴가였겠죠.
보경씨의 회사 동료 ©정보경 / 성길씨의 회사 동료(왼쪽부터 성길씨, 사장 1, 사장 2, 직원) ©김성길

성길씨는 3년짜리 노동체류허가를 받았다. 한 번만 더 갱신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성길씨의 사장은 “어디 가서 싸울 일이 생기면 ‘나 독일에 세금 내는 사람이야’라고 먼저 얘기하라”라고 한다. 그만큼 이들은 이제 정착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취업 전 성길씨는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한인 식당에서 일하고 오전 7시에 어학원에 가는 일상을 계속했다. 주급을 받은 날이면 봉투가 담긴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 새벽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아우스빌둥에 지원하던 보경씨 역시 인터넷으로 지원했던 곳에서는 단 한 곳도 답을 받지 못했고, 직접 찾아가 이력서를 낸 곳에서만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몇 번의 눈물바다가 있었다. 노동체류허가가 끝난 3년 후의 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다음 이야기엔 우여곡절이 아닌, 평온하고 잔잔한 멜로드라마가 펼쳐지길 바라 본다.


- 독일 이민을 추천하나요?

보경 : 이쪽 전공으로 온다면 아니요. 독일은 한국의 학위,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으니 인정해주는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는 게 낫죠. 무엇보다 힘든 게 언어예요. 와서 무조건 1년에서 1년 반은 독일어만 공부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한국에서 2년 공부한 건 소용없어요. 또 한국에서는 전공 내용을 모두 영어로 배우는데 이걸 다시 독일어로 바꿔서 공부해야 하거든요. 


성길 : 독일에 오기 위해 5년을 준비했는데 미흡했어요. 5년 전이라면 대학 대신, 독일 와서 1년 정도 독일어 공부하고 아우스빌둥을 시작했을 거예요. 한국에서 쓴 학비, 생활비 따지면 차라리 그게 낫죠.


- 독일로 이민 가고 싶은 사람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보경 : 영어로 취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오는 분들이 있는데, 독일 회사에 취업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요. 독일어 공부는 한국보다 여기에 와서 하는 걸 더 추천하고요.


성길 : 독일로 오려면 무조건 언어를 해야 해요. 여기 와서 근 2년 동안 만난 한국사람 일곱 팀 중에 한 팀 빼고 모두 돌아갔어요. 취업은 안 되고, 돈은 떨어지고, 언어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거예요. 정말 쉽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정착한다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맨 오른쪽은 보경씨의 설득으로 독일에서 공부 중인 보경씨의 동생이다. 한국에서 같이 온 강아지 쨈도 함께 살고 있다.
붉은 화살표가 있는 곳이 에센이다. 구글맵스 캡처

[독일]

- 기본정보

o 수도 : 베를린 (340만 명)

o 인구 : 8,085만 명(독일인 88.9%, 외국인 11.1%)

o 면적 : 357,112㎢(한반도의 1.6배)

o 인종 : 게르만족

o 종교 : 개신교(30.8%), 천주교(31.5%), 이슬람교(4%)

o 언어 : 독일어

o 화폐 : 유로

o 교민 수 : 39,047명

출처 : 외교부 


- 워킹홀리데이 정보

o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 신청 가능

o 관련 사이트 :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 이민 정보

o 영주권 신청 : 5년 이상 체류허가를 얻어 세금과 국민연금 납부 시 신청 가능

o 노동허가, 체류허가 : 코트라(KOTRA)

o 관련 사이트 : BAMF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난, 이민자 11팀의 정착 이야기가 담긴 저희 책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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