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인터뷰⑦] 멕시코 몬테레이 공경규, 김지미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유럽 여행을 마무리할 즈음 ‘멕시코에서 빙수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발견했다. 멕시코에서 빙수 가게라니, 그 사연이 재미있을 것 같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고 미국을 지나 중남미로 향하는 길에 이들이 있는 멕시코 몬테레이(Monterrey)를 찾았다. 미국 국경(텍사스)에서 약 230km 떨어진 몬테레이는 LG전자와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는 산업도시다.
- 가족 : 부부
- 거주지 : 멕시코 몬테레이
- 이민 9개월 차(2016년 12월 인터뷰 기준)
- 쇼핑몰에서 빙수 가게 운영(1년 취업비자)
*모든 내용은 2016년 12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 1999년 대학 입학
- 2009년 음향·영상회사 취업
- 2013년 7월 결혼
- 2016년 5월 멕시코로 출국
- 2016년 9월 빙수 가게 오픈
경규씨의 청춘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지나갔다. 대학을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군대를 갔다. 그러다 병장이 되자 그 시기의 남자들이 하는 고민 앞에 놓이게 됐다. ‘제대하고 뭘 하지? 내 꿈은 뭐지?’ 계속되던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제대 후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경규씨는 4개월 동안 남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영어 공부를 하지도 않고 그냥 머물러만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그 어느 곳에서도 삶은 똑같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음도 잠시, 취직 후 그의 한국생활은 생계를 위해 하루를 사는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어느덧 34살이 된 그는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떠나기로 결심했다.
- 1991년 과테말라로 부모님과 이민(당시 7세)
- 2002년 한국에서 대학 입학
- 2006년 대학 졸업
- 2006년 CF 미술 관련 취업
- 2013년 7월 결혼, 퇴사
- 2016년 5월 멕시코로 출국
초등학교 시절 과테말라에 살던 이모의 사업이 커지자 지미씨의 부모님은 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과테말라로 이민을 갔다.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자 부모님은 미국으로 갈지, 한국으로 갈지를 물었고 지미씨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대학에서나 회사에서나 한국생활에 잘 적응해 갔던 그였지만 뭔지 모를 불편함은 가지고 있었다. 20대를 한국에서 보내면서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멕시코로 떠났다.
-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경규 : 저는 음향·영상회사에서 음향 설치를 하는 기술부 직원이었어요. 신축 건설현장 일이 많아 거의 지방 출장을 많이 다녔고요. 프로젝트 시작하면 3~4개월씩 하니까 결혼하고도 주말부부로 살았죠. 그때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지방 출장을 가서 남자들끼리 모여 살게 되면 술 마시는 자리가 많은데 저는 술을 안 마셔요. 못 마시는 건 아니고 좋아하지 않고 종교적인 것도 있어요.
그래서 늘 혼자 방에만 있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대리가 다섯 명이나 있었어요. 그들과 경쟁해 1년 후엔 과장 승진도 해야 하는데 어울리지 못하니 제 자신도 힘들어지는 거죠. 가장으로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매일 이사님과 술 마시고 해야 하는데 ‘나는 그 정도로 할 수 있는가’ 고민했죠.
3년 정도 됐을 때 계속 이렇게 살면 아내는 주말 밖에 못 보고, 풍족하게 살지도 못하고, 어느새 마흔이 올 것 같고, 그러면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정하게 됐어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을 하기로 한 거죠.
지미 : 대학 졸업 후에는 디자인 관련 일을 하다가 결혼하고는 그만뒀어요. 제가 어린 나이가 아니라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어요. “너는 왜 아이가 안 생겨?”, “누구 아이 가졌다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며 친구 산후조리원, 돌잔치 찾아 다니는 게 일상이었어요.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6개월에 한번 정도 만날 수 있고, 만나도 다들 유모차 대동하고 육아 얘기만 하니까 공감대가 없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주부로서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하는 생각을 계속 갖게 된 거죠.
- 이민은 어떻게 결정하신 거예요?
경규 : 저희는 7년 연애하고 결혼한 지 4년이 됐어요. 11년이면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요. 저도 한국에서 스스로 우뚝 서지 못하고 있는데, 아내도 아이 문제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주말부부로 지내는 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건가‘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는 아직 아이가 없으니까, 마흔 전인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무식해서 용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도 못했고, 잘 하는 것도 없고, 어차피 잘 하는 게 없으니까 인생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저지른 거죠.
지미 : 실패를 하더라도 젊었을 때 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안정적이면 그런 생각 못하잖아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보면 똑같아요. 결혼하고 애 낳고,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하고, 둘째 생기고, 남편이 번 돈으로 전세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요. 우리에게 아이가 없다는 게 남들과 다르지 않을까, 똑같은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아내의 스페인어 능력, 몬테레이에 일하고 있는 지미씨 동생, 통장의 4천만 원 그리고 남편의 충만한 의욕. 이것들이 두 사람이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가진 전부였다. 언어와 초기 거주지가 해결 되는 것만으로도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돈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기간은 무비자로 거주할 수 있는 6개월뿐이었다. 직장인으로 살던 사람들이 한국도 아닌 멕시코에서 자영업자가 되기에는 짧은 기간인 듯 했지만 그들은 빠르게 추진했고, 4개월 만에 사업자를 등록하고 취업비자를 얻었다.
- 왜 과테말라나 스페인이 아닌 멕시코였나요?
지미 : 저희가 20대가 아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되는 곳이어야 했어요. 제가 스페인어를 하니까 중남미 국가로 가보자고 했죠. 과테말라는 작으니까 그보다는 좀 큰 곳으로요. 칠레나 브라질도 알아봤는데 마침 제 동생이 몬테레이 한국기업에 현지취업해 있기도 하고, 어릴 때 살았던 과테말라와 이질감도 없으니까 선택하게 됐어요.
스페인은 신혼여행으로 갔는데 할 게 없더라고요. 저희가 교회를 다녀서 여행 중에 한인교회를 가봤는데 참석한 3~4 가정이 다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이었어요. 새로운 아이템으로 작게 시작하는 분이 없더라고요. 제도적으로도 유럽은 밑바닥부터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고요.
경규 : 저희가 지금 1년짜리 취업비자로 머물고 있어요. 저희가 만든 회사에 대표, 직원으로 취업해 있는 거죠. 선진국은 자본금이 2억 원 이상이 아니면 어려운데, 멕시코는 그런 조건이나 절차가 수월해서 선택한 거예요.
- 멕시코 치안에 대한 걱정은 없으셨나요?
지미 : 치안이 좋지는 않아요. 게다가 저희는 외국인이라 눈에 띄거든요. 이렇게 안전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가게가 입점에 있는 주상복합 건물에 거주 중)이 아니면 위험에 노출돼요. 월세가 싼 곳에 갈 수도 있지만 목숨을 내놓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경규 : 지금도 아내가 차 타고 밖에 나가면 걱정이 되기는 해요. 그래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알아서 조심해야죠. 현지 사람들이 저희가 가면 안 되는 위험한 곳을 알려 주더라고요. 마약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무서워하는데 그렇게 악한 나라는 아니에요. 저는 길에서 차가 멈췄는데 지나가던 멕시코 사람이 한 시간 동안 도와주기도 했어요.
지미 : 저는 어려서부터 (과테말라에서) 대중교통 타고 다녀서 그런지 무섭지는 않아요. 한국에선 멕시코를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예요.
- 여러 구상이 있었을 텐데 왜 빙수 가게를 선택하신 거예요?
경규 : 가장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을 생각해 봤어요. 이 나라는 권리금이 없어서 보증금 대신 월세 2개월 치를 내면 시작할 수 있어요. 멕시코는 여름 나라라고 생각해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카페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4개월 동안 시장조사를 해보니 멕시코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파는 10페소(약 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더라고요. 한국 같은 커피문화가 아니었어요. 스타벅스를 이길 자신도 없었고요. 그래서 색다른 아이템이 뭘까 생각하다가 빙수 가게로 결정했어요.
저희가 한국에서 4천만 원 들고 왔어요. 1천만 원으로 한국에서 (눈꽃빙수)기계 들여오고, 1천만 원으로 가게 계약하고, 1천만 원으로 중고차 사고, 나머지로 집 계약했어요. 사람들이 ‘돈 없으면 이 나라든 저 나라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는데 저희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말이죠.
- 외국인이 직접 가게를 차리는 게 가능한가요?
지미 : 외국인이 멕시코에서 사업하려면 현지 영주권자나 멕시코인이 보증을 서야 해요. 일을 준비하던 중에 남편의 스페인어 선생님(대학생)을 구하게 됐어요. 그렇게 만났는데 처음 만나자마자 ‘우리가 이런 상황인데 도와달라’고 하소연했죠. 멕시코 대리인이 필요한데 ‘친구 같은 사람이 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대뜸 자기가 해주겠다고 한 거예요.
경규 : 저희가 (사업등록) 대행업체를 쓰면 100만 원 정도가 또 필요해요. 그게 다 돈인데 호의로 보증인이 되어 준거죠. 덕분에 지금은 좋은 친구가 됐고요.
지미 : 몬테레이에 있는 쇼핑몰은 거의 다 찾아 다닌 것 같아요. 쇼핑몰에 입점하는 게 안전하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면 단가를 확 낮춰야 해서요. 근데 입점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제품 프레젠테이션도 해야 하고, 계약서도 꼼꼼하게 써야 하고, 계속 기다려야 해요. 입점비가 있다는 얘기가 계약 중간에 나오기도 하고요.
경규 : 멕시코는 기다림의 나라에요. 만나면 ‘알았다. 이메일 보내겠다’고 하고 계속 연락이 없어요. 보낸다고 하고 안 보낸 곳이 정말 많아요. 그냥 호응이었다는 걸 나중에 안 거죠. 지금 입점한 이곳도 처음엔 안 된다고 했어요. 빙수가 아이스크림인데 이 쇼핑몰엔 아이스크림 가게가 4개나 있거든요. 그래서 머리를 썼어요. ‘우리는 스무디킹 같은 과일로 만든 스무디를 팔겠다’ 이걸로 들어왔어요. 다른 곳은 입점비도 있고, 상대도 안 해주는데 그나마 여기는 한 달 반 후에 만나기라도 해 준 거예요.
- 처음 만난 사람과 사업을 같이 하게 되는 건데요. 의심이나 걱정은 안 하셨나요?
경규 : 사람들이 ‘어떻게 와서 3개월 만에 가게를 차렸냐’고 하는데, 저희는 놀러 온 게 아니라 살려고 온 거니까요. 남들은 여행도 다니고, 시장조사도 많이 하는데 저희는 그럴 수 없었어요. 이 돈을 다 까먹으면서 돌아다니면 저 스스로 지칠 것 같았어요. 한국에서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여기 왔으니까 (기회를) 그냥 붙잡았어요. 그게 사기를 당하는 것일지라도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거죠.
지미 :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이민 온 지 20~30년 넘은 분들 보면 지금이 가장 고비라고 해요. 6개월 못 버티고 돌아가는 사람도 되게 많지만 일단 살려고 하면 ‘어쨌든 3년은 버텨야 된다’고요. 지금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하는 순간이죠. 외국이지만 생각하지 못한 현지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운이 좋았던 거죠.
- 쇼핑몰 영업시간이 밤 10시까지던데요. 가게도 그때까지 하나요?
경규 :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요. 평일에는 저 혼자 있고, 주말엔 둘이 있어요. 평일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종일 가게에 있고 식사 시간에는 아내와 교대해요.
지미 : 여기 사람들이 점심을 오후 2시, 저녁을 밤 9시에 먹어요. 그래서 밤 9시 반, 10시까지 문을 열어야 해요. 현지인 사람 말로는 추운 건 별로 상관 안 하는데 비가 오면 밖에 절대 안 나온대요. 지난달에 열흘 비가 와서 ‘폭망’했어요.
- 가게를 연지 4개월 정도 지났는데, 어떤가요?
지미 : 생소한 아이템이라 소문나려면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아요. 근데 이미 차가운 것을 파는 곳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어서 조금 걱정이에요. 여기 사람들은 날씨는 23도인데, 12월이라 겨울이라고 어그부츠를 신고 목도리를 해요. 애들이 빙수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들이 ‘겨울이라 추워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여름엔 나쁘지 않았어요. 의외로 (눈꽃빙수의) 새로운 식감, 맛을 좋게 봐주고 찾아 주고 단골도 생겼어요. 이런 걸 봤을 때 희망이 있는 것 같아요.
경규 : 여기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 망고, 오레오를 좋아해서 여름에는 꽤 팔렸어요. 한 달 여름이었는데 ‘적은 자본으로 이 정도로 수익나고 월세, 가게 임대료 내면 괜찮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겨울이 온 순간 무너진 거죠. 지금은 힘들기도 하고, 아내와 여러 방향으로 회의를 하고 있어요. ‘호빵을 들고 와야 하나’ 그런 고민도 하고요.
‘멕시코 이민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좋지 않았다. 사실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반응이 이 부부에겐 자극이 됐다.
- 이민 간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경규 : 사람들이 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어요. ‘직장이나 부모님 같은 안전한 울타리가 있는데 왜 나가냐’고 그랬죠. 1년만 있으면 과장 승진도 될 건데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안 되는 곳으로 가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나이 서른 넘어서 저 같은 사람 처음 본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 더 실패자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형이랑 누나도 많이 걱정했고요.
지미 : 근데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다 사실이에요. 현실적으로만 보면 떠나면 안 돼요. 그만큼 힘든 걸 감당해야죠.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힘든 상황을 견뎌내신 걸 봤잖아요. 편하게 살려면 직장, 가족, 집, 편의시설 다 있고 말 통하는 곳에서 사는 게 맞아요. 저희는 ‘그걸 하지 않겠다’고 하고 왔기 때문에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경규 : 저희 부모님은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한두 달 정도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가겠어?’ 생각하셨죠. 그러다 항공권 산 후에는 걱정은 되는데 말리지는 못하셨죠. 가기 일주일 전부터는 최대한 떨어져 있었어요. 부모님이 염려하는 부분을 다 아는데, 그런 걱정까지 안고 오기에는 저희도 힘드니까요. 지금도 많이 걱정하고 계셔서 장사가 잘 안되면 연락 드리기 힘들어요.
지미 : 저희 아버님은 젊은 시절에 이런 생각을 갖고 이민을 갔었던 거라, 제가 완전 생소한 나라가 아니라 멕시코에 간다고 하니까 이해는 하시더라고요. 어쨌든 간다고 결정했으니 용기를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근데 자식 둘이 다 나가니까 아쉬워하셨죠.
- 이민 후에 심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경규 : 제대 후 호주를 갔던 건 꿈이 없어서였어요. ‘내가 왜 살아야 할까,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까’ 고민하면서 정말 ‘올인’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했죠. 근데 못 찾았어요. 회사 다닐 때는 ‘내가 사장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지금은 불평불만 없어요. 저는 목표 없이 사는 것보다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남이 주는 월급에 하루하루 버티는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게 더 잘 맞더라고요.
지미 : 저는 어릴 때 외국에 살면서 현지 TV도 잘 안 보고, 한국 방송도 잘 안 보니까 소식을 잘 모르잖아요. ‘한국 경제가 어떻다’ 이런 소식을 모르니까 편하더라고요. 근데 한국에 사니까 뉴스, 이슈, 트렌드까지 다 알게 되고, 그런 것까지 고민하게 되니까 스트레스 받더라고요. 차라리 모르면 스트레스는 안 받잖아요. 그냥 안 들리고, 모르는 곳에 가서 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 멕시코에서 생활은 어떤가요?
지미 : 멕시코가 한국처럼 근무 시간이 길어요.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요. 보통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이 뛰어나다’고만 생각했어요. 근데 멕시코에 오니 ‘세계는 다 같이 성장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인터넷이나 다른 생활 수준도 상당히 높고요.
과테말라로 이민 갔을 때는 저희가 갑이고 현지인이 을이었는데, 이젠 우리가 을이에요. 저희는 대기업 주재원도 아니고, 돈도 없고. 여기 사람들이 저희한테 관심도 없어요. 근데 많은 분들이 멕시코 오면 ‘사람들 부려가면서 누리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재원이나 출장으로 오는 분들은 그럴 수 있지만 저희 같은 사람은 현지인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면 안 돼요. 가끔 손님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요. 너네 외국인인데 어떻게 여기서 장사를 하냐고 “많이 힘들지?” 그래요. 한국사람이 후진국 간다고 하면 미국사람처럼 대접받고 그럴 것 같지만 이 안에서는 그냥 외국인이에요.
경규 : 인도사람이 이태원 가서 카레 장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자영업자는 어디든 똑같아요. 월세 걱정하고.
-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경규 : 저는 없어요.
지미 : 인종차별이라고 하긴 어려운데 남편은 언어가 안 되니까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들리잖아요. 대놓고 ‘너 스페인어 한 마디도 못하는데 무슨 장사를 하니' 이렇게 얘기하기도 해요. 그러면 알아들은 저만 속상해요.
경규 : 오히려 한국 분들한테 더 서운할 때가 있어요. 한번은 처음 오신 분이 아이가 팥빙수 먹고 싶다고 하니까 “팥빙수 맛없어" 이러시는 거예요. 팥빙수를 안 좋아하더라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속이 상하죠. 차라리 스페인어는 못 알아들으니까 더 편해요.
- 한국에서의 삶과 어떤 부분 달라졌나요?
경규 : 가장 큰 변화는 서로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됐어요. 한국에서 그냥 하루 하루 살았던 것과 다르게, 인생을 계획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죠. 한국에서는 먹고 살 걱정은 안 하는데, 지금은 편하게 누워서 잠 잘 수 있고 한 끼라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지민 : 한국은 주변에 가족, 친구가 있어서 조금 힘들더라도 기대고 도움 받을 수가 있는데 여기는 저희 둘 뿐이잖아요. 그래서 서로를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집중하게 돼요. 가끔 싸울 때도 있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게 다른 것 같아요. 한국에선 월급 받아오면 생활비 받아서 평범하게 살지만 지금은 조금 더 역동적으로 사는 것 같아요.
멕시코에 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부부는 아직 정착했다고 보기 어려운 불안정한 상태다. 한류가 크게 영향이 없는 멕시코에서 한국의 빙수라고 더 주목 받는 것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비수기인 겨울을 버티면서 자리 잡기 위해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다.
- 앞으로 현지 채용으로 취직을 한다거나 한인 대상으로 사업할 생각도 있으세요?
지미 : 일단은 멕시코에서 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다 열어두고 있어요. 처음엔 한국 사람 절대 상대 안 하고 현지인에 묻혀서 살려고 했는데, 오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 것 같아요.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요. 저는 가게 행정 일도 하고 한국 분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전공을 살려서 디자인 컨설팅 관련해서도 일을 준비 중이고요.
경규 :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멕스카페)에 가면 구인 공고가 많아요. 그런데 잘 보면 스펙이 ‘스페인어 상’ 이상이라 저 같은 사람은 못해요. 한국 기업 대상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저희가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 혹시 자녀 계획이 있으신가요?
지미 : 주위 친구들이 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여기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국립학교를 보내기엔 위험에 더 노출돼서 국제학교밖에 못 보내요. 저도 어릴 때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영어와 스페인어로 수업을 하니까 언어를 얻는 게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그런 걸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좋고요.
경규 : 여기도 돈 있는 사람들은 아이를 캐나다, 미국 학교를 보내요. 이민 이유 중에 이 부분도 컸어요. 저는 한국어밖에 못하지만 우리 아이는 다른 언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 생활에 필요한 정보는 어디서 구하세요?
경규 : 인터넷에서 직접 검색하기도 하고요. 저희가 300명 정도 있는 한인 교회를 다니는데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어요. 여유 있는 분들도 계시고요. 정착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 영주권 취득 이후나 노후 계획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경규 : 부모님이 나이 드시면 한국에 가서 부모님과 같이 보낼 생각이에요. 자본이 있으면 나중엔 유럽이나 스페인처럼 선진국에 가고 싶기도 하고요.
지미 : 저희가 여기서 잘 자리 잡고 성공하면 노후는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요.
- 멕시코 이민을 추천하시나요?
경규 : 이민은 돈 버릴 생각으로 와야 하는 것 같아요. 한방 크게 벌 생각이면 오지 말아야 해요. 퇴근 후 문화생활을 하는 외국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근데 주재원이 아닌 이상 멕시코에서는 그런 여유를 누리기 힘들어요. 회사 다니는 사람들 월급 150만 원, 200만 원 받으면서 밤 10시에 퇴근해요. 물가도 음식만 쌀뿐이지, 안전한 곳의 월세를 따지면 외국인이 살기에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멕시코는 35개 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 1위다. 한국은 코스타리카에 이어 3위다.(2015년 기준)
지미 : ‘돈을 벌겠다’보다 최소한의 것으로 삶에 만족하면서 살 거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한번 경험으로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민보다는 젊은 분들이 취업 경력 쌓기에는 괜찮아요. 한국회사 중에 집을 제공해 주는 곳도 있고, 돈 쓸 곳이 없으니까 월급 모아서 목돈 만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죠.
- 이민자들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미 : 이민자가 나라를 버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90년대 과테말라에 살아서 알지만 IMF 때도 교민들이 모두 뭉쳤어요. “우리가 한국에 달러를 보내자.” 모든 거래를 달러로 해서 한국에 보냈어요.
한국이 싫어서 나간 사람도 있겠죠. 근데 그런 마음으로 사는 이민자는 거의 없어요. 내 부모와 가족이 사는 곳인데 어떻게 생각 안 하고 살겠어요. 오히려 더 걱정하고, 애국심도 더 생기죠.
경규 : 어느 나라에 가든 한국 사람이에요. 멕시코에 살지만 한국 기사를 누구보다 더 보고, 촛불 들고 못 나가도 저희도 똑같은 한국인이에요. 배신자는 아니지만 불효자는 맞아요. 부모를 떠나서 사는 거니까요. 이런 부분 말고는 이민자들을 정말 측은하게 봐줘야 해요. 칠레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만 봐도 정말 창피해요. 너무 부끄러운데 그런 부끄러움은 밖에 있는 저희 몫이잖아요.
지미 : 한국의 안 좋은 점에 대한 창피함은 우리가 다 안고 사는 거예요. 물론 좋은 면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요.
-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경규 : 저희가 해외에 이민 간다고 했을 때 ‘가서 뭘 먹고 살거니, 한국에 다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니, 이민이 아무나 하는 거니, 나이 다 먹고 무슨 고생이니’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저희는 해냈고, 먼 타지 멕시코에서 서로 더 사랑하며 잘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이민에 대한) 다양한 성공사례는 많지만 실패 사례는 안 나오잖아요. 실패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목숨 걸고 하는 거예요. 특히 타지에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한국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요. 하지만 도전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은 두려움으로 사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가기 위해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모한 도전을 각오한다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o 국명 : 멕시코 합중국(United Mexican States)
o 수도 : 멕시코시티(약 2,000만 명)
o 인구 : 1억 2,174만 명(2015년 7월)
o 면적 : 196만㎢(한반도의 9배)
o 인종 : 메스티소 60%, 인디언 30%, 백인 9%
o 종교 : 가톨릭(90%), 기독교(5%), 기타(2.2%)
o 영주권 신청 : 임시 거주자(FM2)로 5년간 거주 후, 영주 사증인 FM1를 받으며 영주권자로 기록이 된다.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난, 이민자 11팀의 정착 이야기가 담긴 저희 책이 나왔습니다.
브런치에는 없고 책에만 실린 인터뷰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