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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이민 7년,
리스본과 함께한 시간

[이민자 인터뷰⑥] 포르투갈 리스본 안소정, 조규성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한인민박에 대한 얘기를 많이 접했다. 대부분 사업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 중이며, 유명 관광지엔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유럽의 끝자락인 포르투갈에는 한인민박이 딱 하나만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직항 편이 없고 서유럽과 거리가 있는 포르투갈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아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곳에 정착하게 됐을까. 리스본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부부는 손님들이 관광을 나가면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사진=안소정 제공

안소정(41세), 조규성(42세)

- 가족 : 부부, 두 아들

- 거주지 : 포르투갈 리스본

- 거주 7년 차

*모든 내용은 2016년 10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안소정 Timeline

1994년 섬유무역회사 입사

2004년 대학 편입 후 휴학

2009년 5월 결혼

2010년 2월 퇴사

2010년 5월 포르투갈 출국


조규성 Timeline

2000년 대학 졸업

2001년 ~ 2004년 옷가게 운영

2006년 ~ 2009년 헬스 트레이너로 근무

2009년 5월 결혼

2010년 5월 포르투갈 출국

리스본은 18세기에 지은 건축물을 대부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사진=김병철

함께할 시간이 없던 맞벌이 부부

2004년 안소정씨는 이전 회사의 상사가 창업한 회사로 이직했다. 오랜 회사 생활에 조금 지쳐있던 그는 상사와 조율해 오전 근무만 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오후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은 결혼 후에도 이어져 오후엔 집안일을 하거나, 가끔은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남편 조규성씨의 일상은 정 반대였다.


대학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한 조규성씨는 졸업 후 옷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일을 너무 크게 벌려 사업이 어려워지자 가게를 접고 지인의 소개로 헬스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는 주로 야간에 일했고, 덕분에 한적한 그 시간에 헬스장을 찾던 안소정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결혼 후에도 이 패턴이 바뀌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1년 간의 결혼 생활 동안 특별히 힘든 건 없었지만, 낮에 일하는 아내와 밤에 일하는 남편이 가족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적었다.


-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소정 : 결혼 전 마지막 회사에서는 오전만 일하고, 여름에는 한 달 정도 쉬었어요. 그때 영국, 프랑스로 한 달씩 여행을 다녔는데 영국 민박집 사장님이 제 나이 또래였어요. 두 분 사는 게 너무 좋아 보여서 ‘한국에서 아등바등 살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죠.


규성 : 결혼하고 1년을 주말부부처럼 살았어요. 그래서 계속 방법을 고민했죠. 외국에 나가 사는 건 신혼여행 때부터 아내가 은근히 깔아 놓았어요.


- 결혼 전부터 계획하신 건가요?

소정 : 결혼식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때 바르셀로나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어요. ‘여기에 와서 한인민박을 하면 어떻겠냐’고요. 그래서 살짝 바르셀로나에 다녀왔어요. 사람들도 많이 오고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신종플루가 터진 거예요. 결국 못 가게 됐죠. 그때 바르셀로나에 한인민박이 20개쯤 있었는데 이젠 50개로 늘었다고 해요.


규성 : 전 결혼해서 가족이 됐는데 부모님과 한 번도 같이 살지 않고, 바로 해외 나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께 손자라도 안겨드리고 나가자는 입장이었어요. 가족이니까 같이 자고, 먹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소정 : 그래서 그때 (생각을) 접고 결혼하고 1년을 살았는데 불안감이 생기는 거예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과외비 많이 들고, 항상 바쁘게 이렇게 살 거야?’하고 남편한테 물었어요.


규성 : 그렇게 사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는데, 아내가 계속 압박을 주더라고요. 저는 돈이 많지 않더라도 가족이랑 같이 살면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정 : 나가서 살면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했죠.


-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나간다고 언제 말씀드리신 거죠?

규성: 저는 장남이라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가기로 결정했으니까.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부모님이 기대하는 게 차원이 다르잖아요. 부모님이 한 달 내내 우셨어요. 친구들도 다 반대했고요.


소정 : 저희 쪽은 부모님, 친구 모두 다 찬성했어요. 부모님께 떠나기 1~2달 전에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아일랜드 화산(2010년 4월)이 터지면서 유럽의 모든 비행기가 막힌 거예요. “가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다”, “너 망하면 어떻게 하냐” 이런 얘기도 계속 들었어요. 사실 속으론 걱정 많이 했죠.


그때 신랑이 ‘망하면 어때, 살아보고 마흔 전에 돌아오면 되지. 그게 투자지 뭐’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저희 신랑은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서 편했던 거예요.(웃음) 근데 그렇게 말해주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시댁에 저는 죄인이에요. 마지막 나올 때 얼굴도 안 보셨어요. 그다음에 아이 낳고 가니까 지금은 ‘잘 나갔다’고 하시죠.


창문이 열려있는 도미토리 방. 사진=김병철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나라, 포르투갈

바르셀로나 계획이 무산됐지만 소정씨는 해외 이주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주말부부처럼 지냈던 1년의 시간은 그런 그의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그러다 우연히 포르투갈 민박집을 발견했고, 부부는 정보를 접한 지 5개월 만에 사전 답사도 없이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포르투갈로 떠났다. 안소정씨는 34세, 조규성씨는 35세였다.


- 어떻게 포르투갈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소정 : 여러 기준이 있었어요. 아등바등하면 안 되고, 경쟁이 심하면 안 되고, 날씨 나쁘면 안 된다 같은 거요. 스페인 마드리드, 오스트리아 빈 등 여러 곳을 알아봤어요. 일부러 신혼여행도 유럽으로 갔고요. 사실 남편은 민박집에 회의적이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여행 중에 민박집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거기서 하루 자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살짝 보여 준 거예요. 결혼 후에도 제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계속 얘기했더니, 신랑이 ‘그러면 알아보자’고 한 거죠. 어느 나라로 갈지 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인터넷으로 알아봤지만 한계가 있어요.


규성 : 저는 그냥 (가족이) 같이 있으려고 나온 거예요. 좋은 나라는 많잖아요. 저는 신혼여행 말고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아내가 ‘베니스 어때?’ 물어보면 ‘물 많아 안돼. 모기 많아’ 그러고, ‘바르셀로나, 파리는?’ 물으면 ‘사람 많아서 싫고’. 그러면 ‘체코?’ ‘체코 좋아’. 이렇게 여기저기 하다가 아내가 갑자기 포르투갈을 얘기하더라고요.


소정 : 진짜 인연인 거예요. 온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고, 어디 붙어있는지만 알았는데.


규성 : 전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소정 : 저희가 맨날 하는 게 지도 펴놓고 ‘어디로 갈까, 여기가 좋을까’ 이런 거였어요. 그런데 아는 동생이 포르투갈이 너무 좋다고, 날씨도 되게 좋고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검색해보니 민박집이 딱 하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넘기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진짜 그런 글이 나오는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제가 몇 번 읽었던 블로거였어요.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사기는 아니구나’ 생각했죠. 인터넷으로 글 주고받고 바로 옷가지만 챙겨서 넘어왔어요. 그때 임신 중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올까 고민했는데, 뱃속에 넣고 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 대부분 한인민박이 무허가인데, 사업 등록을 하는 건 어렵지 않으셨어요?

소정 : (사업자 등록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죠. 허가받기도 굉장히 까다로워요. 근데 저희는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어요. ‘신고 들어가서 문을 닫았네’, ‘영국에선 한밤중에 경찰이 들어왔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처음부터 사업자 등록을 생각했어요. 저희는 아이도 있는데 불안하게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규성 : 포르투갈 사람들은 한인민박이라는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냈어요. 이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한 거예요. 한국 사람도 없는데 민박을 한다니까요. ‘그래 그럼, 너네가 거짓말하는지 어디 한번 보자' 이런 생각으로 내 준 것 같아요.


- 관공서 업무는 직접 하셨어요?
규성 : 이전 사장님과 한 달 정도 함께 지내면서 조언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들 나가고 비자 연장받을 때는 저희가 언어가 안 되니까 포르투갈 변호사랑 같이 했어요. 리스본에 살면 영어만 해도 살 수 있어요. 그렇지만 관공서 업무는 한계가 있죠.


소정 : 법이 계속 바뀌어서 변호사와 함께 해야 명확해요. 처음 거주증을 발급받으러 이민국에 갔더니 국세청에 가서 세금번호를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국세청 갔더니 다시 이민국 가서 거주증을 받아 와라 하고. 이민국에선 세금번호가 있어야 거주증을 만들 수 있다고 하고. 저희가 사업자 등록을 하니까, 저희 도와주신 분이 기적이라고 했어요.

부부의 민박집은 시내 언덕길에 위치해있다. 사진=김병철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

리스본은 언덕이 많은 도시다.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도착한 여행자들에게 언덕이 그리 반가울 리 없다. 민박집 길 안내 게시물에 ‘캐리어가 무거운 분들은 택시를 타거나 예약을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가 있는 걸 보고 7년 동안 그들이 겪은 일들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 7년 동안 한인민박을 하면서 알게 된 한국 손님만의 특성이 있을까요?
소정 : 한국 손님이 좀 까다롭긴 하죠. 저희 집이 관광지 한가운데 있다 보니 집도 오래되고 낡은 편이에요. 구시가에 엘리베이터 있는 집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예전에 인터넷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집은 인간적으로 민박집 같은 거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 밑에도 집 많은데 왜 이런 언덕에 집을 구했냐”고 따지시는 분도 계셨죠.


규성 : 예전에 어떤 손님이 ‘언제 천사가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기다리고 있으라’라고 써준 글이 있는데 그게 인상에 남아요. 사실 천사 같은 분도 계시고, 안 그런 분도 계신데 그 한 분 때문에 버티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까다로워요. 예를 들어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으면 외국 사람들은 같이 춤추고 박수치고 놀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 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소정 : 그런(천사 같은) 분이 가실 땐 아쉬워요. 불과 며칠 사이에 정이 많이 들어요. 반면에 불평, 불만만 많아서 안 왔으면 좋겠다는 분도 있고요. 식당처럼 밥만 먹고 가는 곳이 아니고 며칠씩 같이 지내는 건데 너무 관계가 불편하면 서로 힘들거든요. 그래서 환불해드리고 다른 곳에 가시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저도 스트레스받기 싫거든요. 예전엔 여행비용 아끼려는 분들이 민박을 찾았지만, 지금은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거나 아침에 한식을 먹기 위해 오시는 분이 많아요.


- 그동안 다른 한인민박이 생기지는 않았나요?
규성 : 세 번 정도 있었어요. 새로 생겨도 다들 못 버텨요. 여긴 성수기, 비수기 격차도 심한 편이에요. 전에 있던 사장님이 저희에게 “먹고살 수는 있지만 돈 벌 생각은 없이 오세요”라고 했어요. 리스본은 워낙 호스텔이 좋기로 유명하거든요. 저희는 한인민박이 하나라 근근이 유지하고 있죠.


소정 : 여기 살고 싶지만 마땅히 할 게 없으니까 문의를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시도한 분들은 많은데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요.


- 이민자들에게 민박업을 추천하시나요?

규성 : 사실 민박은 사람을 지치게 해요. 사람 상대하는 건 다 그렇잖아요. 항상 좋은 얼굴로 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항상 손님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새벽부터 와서 벨을 사정없이 눌러대는 사람도 있고요. 비행기가 연착돼서 새벽 두 시까지 잠을 못 자고 기다리는 경우도 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처음에는 완전히 창살 없는 감옥이었죠. 돈이라도 많으면 직원을 쓸 텐데 저희는 그럴 여유도 없었고요. 바르셀로나 갈 걸, 파리로 갈 걸 이런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이젠 적응이 된 거죠. 요즘은 다들 카카오톡을 쓰니 조금 나아졌죠. 그리고 미리 도착시간 꼭 알려달라고 말씀드려요.


소정 : 아무래도 (민박이) 처음 시작하기에는 어렵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한국 식당이나 민박 빼고는 딱히 할 게 없더라고요. 저희도 민박을 이렇게 길게 할지 몰랐어요. 장기 계획으로 온 게 아닌데 아이가 커가니 계속 있게 된 거죠.


- 민박을 하면 사람들이 떠나기만 하니까 우울증도 온다던데요?

소정 : 처음엔 그래요. 큰 애가 지금 한국 나이로 여덟 살인데요. 애들은 되게 심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저희가 집에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가족 손님들이 종종 오세요. 또래 친구가 와서 같이 놀고 친해졌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면 벌써 가고 없고. 누나들도 재밌게 같이 놀아줘서 잘 따라다니고 그랬는데 또 그다음 날엔 없고.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한동안은 저희 애가 새로운 사람이 와도 시큰둥했어요. 지금은 조금 컸다고 정을 많이 주진 않더라고요. 애들 교육으로는 안 좋은 거 같아요. 민박집은 손님 위주로 돌아가니까 샤워도 아무 때나 못하고, 밥도 손님 다 먹은 후에 먹어야 하고, 사생활이 없어요.


규성 : (아이들도) 갈 사람이라는 걸 아는 거죠. 장기적으로 본다면 거주하는 집과 민박집을 따로 하는 게 좋아요.

포르투갈의 명물 에그타르트. 사진=안선희

포르투갈에서 산다는 것

그들이 리스본에 와서 꿈꿨던 일상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유럽 각지의 테러를 피해 몰려든 관광객들 때문에 조용했던 리스본의 매력은 점점 퇴색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리스본을 떠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의 7년을 또 자연스럽게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 포르투갈이 한국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살면서 ‘그래도 유럽이구나’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규성 : 아주 사소한 것들인데요.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항상 차가 먼저 양보해주죠. 여자, 임산부를 대우해주고요. 줄이 길게 있더라도 임산부를 보면 앞으로 먼저 오라고 해요. 문 열어주는 건 기본이고요. 걷기 어려운 백발 할머니, 할아버지도 임산부한테 자리를 양보해요.


이런 작고 사소한 배려들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인간에 대한 서로 간의 최소한의 예의랄까.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게 몸에 배어있어요. 이런 건 단기간에 가르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보다 집들도 낡았고 아직도 옛날 방식 그대로인데, 여기선 그런 아날로그적인 방식들이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거 같아요.


소정 : 특히 포르투갈 사람들이 다른 유럽 사람들보다 '젠틀'한 것 같아요. 친절하고 인종차별도 덜 하고요. 운전할 때 보면 한국 사람들과 좀 비슷한데요. 그래도 차가 아무리 쌩쌩 달리다가도 사람이 길을 건너면 무조건 서요. 한국 가서 “차 안 보고 다닌다”라고 운전하는 분들한테 얼마나 욕먹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노 키즈존'은 절대 있을 수 없어요. 처음에 식당을 갔는데 돌아다니는 아이가 없고, 모두 얌전히 앉아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 교육들은 확실하게 시키는 거 같아요.


- 가정교육에서 다른 점이 있는 걸까요?

소정 : 일단 아이는 내 집 아이, 남의 집 아이 할 것 없이 다 예뻐해요.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은 배려해주는 게 당연한 분위기고요. 식당이든 슈퍼마켓이든 아이와 함께 다니면 항상 아이에게 먼저 인사해주고 말 걸어 주고 장난도 먼저 걸고요. 또 엄마들도 내 아이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들은 본 적이 없어요. 어디 가서든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하지 못하게, 놀이터에서는 왜 친구를 밀면 안되는지, 줄을 왜 서야 하는지 조곤조곤히 가르치죠. 유럽에서 아이의 존재는 사랑받아야 할 존재 그 자체예요. 그 대신 해도 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들을 확실히 가르치는 것 같아요.


규성 : 노천카페에서 주문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8살, 10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아빠가 화가 났는지 아이들 멱살을 잡고 끌고 가버리더라고요. 안 된다고 생각하면 확 잡아요. 무섭게 혼내더라고요.


- 문화나 생활면에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규성 : 여유가 있죠. 빨리빨리는 없어요. 어디에 가서든 줄 서서 기다리고요. 자랑처럼 한국의 당일배송을 말해줘도 이해를 못해요. 그게 왜 자랑인지, 왜 당일에 배송해야 하는지요.


소정 : 처음에 되게 답답했어요. 너무 느리니까. 보건소에 아침 9시에 갔는데 6시간을 기다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책, 간식을 가져오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전 뭔가 잘못됐는 줄 알았어요. 진료할 때 의사한테 말하니까 ‘의사가 없어서 그렇다.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별로 해주는 것도 없는데 진료만 한 시간을 받았어요. 잡다한 얘기가 대부분인데 너무 잘 해주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한국은 보통 10분 진료잖아요. 여기는 의사가 저를 진료하는 동안은 다음 환자를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처음엔 기다리다 지쳐서 ‘내가 돈 내고 사립병원 가고 말지' 생각했는데 나중엔 익숙해져서 ‘그런가 보다’하게 되더라고요.


한국 분들이 관광하면서 “이러니까 (포르투갈이) 가난하다. 느려 터지고 돈 벌 생각을 안 한다.”라고 하세요. 가게가 한 달도 쉬고 그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젠 ‘저렇게 사는 게 뭐 어때서. 사는 게 별건가’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여름에 한 달씩 문 닫고 휴가를 즐기는 그들의 방식이 부러워요.


규성 : 포르투갈 사람들은 100만 원 벌어서 40만 원 세금 내도 나머지로 즐기면서 살아요. 저금은 잘 하지 않고, 시간만 나면 해변이나 다른 데로 놀러 갈 생각을 해요. 노후 제도가 잘 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돈 벌러 프랑스 같은 나라로 많이 나가고 노인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출산 같이 아주 기본적인 건 무상이에요. 그러니까 서민들도 살 수는 있고요.


소정 : 세입자 정책이 잘 되어 있어서 집주인이 함부로 월세를 올릴 수가 없어요. 경기가 나빠서 자식들이 자립을 못해서 그런지 삼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도 많아요.


민박집 한쪽 벽엔 손님들이 남긴 엽서와 메모가 붙어있다. 사진=김병철

- 주로 어떤 분들이랑 어울리세요? 한국인이나 현지인 친구가 있나요?

규성 : 포르투갈에 한국 사람이 150명 정도밖에 안 돼요. 리스본엔 50명도 안 되고요. 한국 사람은 대부분 주재원이라 어울릴 수가 없어요. 현지인들과는 친해지기가 어렵고요.


소정 : 처음엔 가족과 (한국인) 친구가 있으니까 현지인 친구를 사귈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근데 오래 살다 보니 달라지더라고요. 친해진 한국인 지인들이 일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저희만 남으니 외롭고 헛헛해져요. 그래서 ‘현지인 친구라도 사귀어야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규성 : (부부가) 싸우면 풀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웃음)


- 아이가 둘이라 교육에도 관심이 많을 텐데, 교육환경은 어떤가요?
소정 : 포르투갈이 교육 문제는 조금 심각해요. 주택가는 교육여건이 좀 더 안정적인데 여기(민박집)는 관광지고, 학교가 술집 많은 곳에 있어요. 대부분의 학부모도 일하느라 교육에 신경을 안 쓰고요. 그래서 한국의 과외, 학원비라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첫째 아이를) 사립학교로 보냈어요.


규성 : 사립학교로 보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이를 바보로 만들 수는 없잖아요. 포르투갈 정부가 몇 년 전에 교사의 절반을 줄여서 수업이 ‘펑크’가 나요. 선생님이 안 와서 수업 안 하고 청소부가 파업하면 수업 안 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땐 학생이 분필이나 기자재를 옮겼는데, 여기는 그걸 다 청소부가 하거든요.


저희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절친이 외국인 아이였어요. 포르투갈어를 못하니까 외국인 두 어린이가 자기들끼리의 단어로 말하는 거예요. 지금 보내는 사립학교는 대부분 포르투갈 학생이에요. 다양한 인종이 있어서 차별은 적은 편이에요.


- 이민 오길 잘 했다고 생각이 들 때는 언제예요?
규성 : (가족이) 같이 있을 때요.


소정 : 한국에 갔다 왔을 때 가장 많이 느끼죠. 남편 동생 둘이 은행에 다니는데 항상 새벽에 들어가니까 아이를 볼 시간이 없어요. 시부모님이랑 통화하면 ‘동생 부부가 계속 야근을 한다, 얼굴을 못 봐서 아이가 운다, 아이가 엄마 얼굴 보려고 아침 7시에 일어난다’는 말씀을 하세요. 저희는 돈은 그렇게 벌지 못해도 이렇게 나와 살기 잘했구나 싶죠.


그리고 제가 한국 갈 때마다 미세먼지가 제일 심할 때이긴 하지만, 아파트 바로 앞에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회색 빛의 도시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무슨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 같았어요. 초 미세먼지 때문에 집 밖으로 못 나가고 창문도 열지 못할 때는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희가 많이 놀기도 해요. 맨날 커피 마시러 나가고, 골목 구경 다니고, 박물관 가고, 시간 날 때는 리스본 인근도 많이 가요. 약간 죄책감이 들 때도 있어요.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일을 열심히 해야 할 30대에 베짱이처럼 너무 노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되니까요.


규성 : 저희는 아직 차, 집도 없어요.

한국에서 데려간 개 ‘기쁨이’와 산책을 즐기는 부부. 사진=김병철

-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세요?
소정 :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은데 아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다시 학원에 보내는 건 못할 것 같아요. 치맛바람도 그렇고요. 한국 가면 친구들을 만나잖아요. 한 친구는 아이가 왕따도 당하고 너무 고생해서 울고, 다른 친구는 학교 일에 나서는 스타일이더라고요. 그걸 딱 보니까 한국 학교에 애를 못 보내겠더라고요.


한국 뉴스 보면 답답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도 있어요. 물론 포르투갈도 문제가 아주 많아요. 가정폭력도 많고 마약 문제도 있고. 근데 저희는 포르투갈 사람을 상대로 돈 버는 게 아니고, 남의 얘기니까요. 내 나라에서 그 꼴 보면... 방관자의 입장으로 사는 거예요. ‘내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 포르투갈 사람도 아니고 되게 외로운 이방인이구나’ 생각할 때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속 편하고 어떻게 보면 되게 외로워요.


노후에는 친구들한테 가야 하지 않을까요. 외국에서 가족이나 친구 없이 사는 건 어렵거든요. 다른 나라에 비해 인종 차별이 적지만 우리가 아무리 말 잘해도 이방인이에요.


규성 : 여기 대학 입학률이 20%를 조금 넘는데요. 굳이 모두가 대학을 가려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만 가는 거죠. 하지만 공교육이 그리 잘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아내는 좋은 나라가 있으면 옮기자고 해요. 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저희 아버지도 70대 중반이기 때문에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요. 근데 저희는 나름대로 여기서 꾸려서 살고 있으니까 현실적으로 한국 가서 살 수는 없어요. 초반 3, 4년이라면 어떻게라도 접고 들어갈 수 있지만, 아이가 생기면 그걸 접고 갈 수가 없어요. 아이가 적응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 한국에 기반이 없으니까요.


- 포르투갈 이민은 어떤 사람들에게 맞을까요? 추천하세요?

소정 : 스웨덴 같은 나라는 ‘교육은 정부가 할게, 부모는 경제생활을 하라’고 하잖아요. 이민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가는 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는 정말 맨바닥에서 시작해야 해요. 유로화 사용하고 나서 물가도 너무 올랐어요. 빈부격차도 많이 심해져서 서민들은 더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래도 욕심 없이 큰돈 벌 생각 없는 사람에게는 괜찮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족이 같이 나와 살면 괜찮은데, 결혼 전에 혼자 오면 한국 사람도 없고 외로울 것 같아요.


규성 :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이민 가면 적응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여기는 시스템이나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사업하기도 어렵고요.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서 쓰러 오는 거면 좋지만, 이민으로 오면... 글쎄요. 포르투갈어를 배워도 브라질 아니고선 쓸 곳이 없기 때문에 선뜻 포르투갈을 추천하기가 어렵네요.


-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주시겠어요?
규성 : 저는 여기서 살 계획인데 아내는 모르겠어요. 내년 정도면 영주권이 나오는데, 포르투갈이 비전이 없어서요. 의사 월급도 2,000유로(약 250만 원 2017년 1월 기준)가 안 돼요. 독일 의사 1년 월급과 여기 10년 월급이 같으니 다들 나가려고 하죠.


소정 : 저희가 좋아했던 리스본의 매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프랑스 테러 이후 관광객이 너무 많아지니까 제대로 시내를 못 다닐 정도예요. 소매치기도 너무 많고요. 한적하게 언덕에서 맥주 마시면서 늘어지고, 여유롭고, 저렴한 게 여기 콘셉트였는데 이제 그러기 힘들어졌거든요.


저는 차라리 조그맣게 카페 겸해서 한식당을 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요. 여름 한 달 쉴 수도 있고요. 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아니면 규모를 줄여서 손님 적게 받고 재미있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남편 꿈은 작은 집을 사서 손님 3명만 받는 거예요. 저녁에 손님이랑 술도 마시고요. 그래서 신트라*로 가자고 꼬시고 있어요. 5년쯤 후에는 작은 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요. 


조금 벌어서 조금 쓰는 인생을 생각해서 온 건데 이건 우리가 살려던 방식이 아니잖아.


*신트라(Sintra) : 리스본 근교 도시

붉은 타일이 붙어 있는 두개층이 민박집이다. 사진=김병철
민박집 주방 벽에 붙어있는 관광 정보. 사진=김병철
손님들이 관광을 나가면 방 밖으로 나오는 고양이 ‘꽃님이’. 사진=김병철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마주보고 있다. 사진=구글맵스 캡처

[포르투갈]

- 기본정보

o 인 구 : 1,082만 명(2015년)

o 면 적 : 92,141k㎡(한반도의 약 2/5)

o 민 족 : 이베리아족, 켈트족, 라틴족, 게르만족, 무어족 등 혼혈

o 수 도 : 리스본

o 종 교 : 가톨릭(90% 이상, 국교는 아님)

o 언 어 : 포르투갈어(로망스어계)

o 화폐 : 유로

출처 : 외교부


- 이민 정보

o 영구거주증 : 5년 이상 임시거주증을 받으면 신청 가능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민자 인터뷰'는 2018년 12월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책에는 온라인에 없는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요. 글 공유하고 많이 응원해주세요!


[요청드립니다]

해외에서의 민박사업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이민 준비와 시작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인터뷰에 응해 준 두 분은 경험담을 전해 주신 것 뿐, 민박업과 이민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두 분께 숙박 예약과 관련 된 문의가 아닌 다른 문의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하는 사람은 간단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받으시는 분은 그 질문에 답변할 의무도 없을 뿐더러 수 백 건의 문의로 사업과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민 관련 문의는 이민 커뮤니티 또는 이민 에이전시를 통해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난, 이민자 11팀의 정착 이야기가 담긴 저희 책이 나왔습니다.

브런치에는 없고 책에만 실린 인터뷰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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