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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인터뷰
by 김병철 안선희 Sep 10. 2017

독일에 살아보니 한국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민자 인터뷰⑩] 독일 베를린 박은영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년간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이민자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로 산다는 건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 속에 들어가 보면, 나에겐 자연스럽고 아주 당연하던 “자기 나라”의 관습이 꼭 그렇진 않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외국 식당에서 물 한 잔을 마셔도 돈을 내야 하고, 거기다 팁까지 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생소했던가. 반대로 한국에 온 외국인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반찬을 추가로 요구하는 한국인의 모습에 놀랐을 것이다.


이런 양쪽에서의 경험은 이민자에게 좀 더 객관적인 시야를 부여한다. 처음엔 다른 나라의 낯선 모습이 눈에 띄지만, 이내 눈을 돌려 익숙했던 자기 나라의 제도, 문화에도 ‘물음표’를 붙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주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소수자에 대한 공감력,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도 된다. 이민자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그래서 항상 흥미롭다. 이번엔 처음으로 국제결혼한 이민자를 만났다. 베를린에서 독일인 남편과 딸 래아와 함께 살고 있는 박은영씨가 그 주인공이다. 


육아휴직 중 서울을 방문한 은영씨를 지난 8월19일 서울에서 만났다. 그가 보고 경험했던 독일과 한국의 차이를 함께 들어보자. 이번엔 기존과 같이 전체 이민 스토리를 듣기보다 ‘미니(?) 인터뷰’로 진행했다.

결혼식 전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 사진제공=박은영

-소개를 좀 해주세요.

저는 29살이고요. 독일인 남편(로버트·Robert)과 2016년 5월에 결혼해서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래아(Lea)를 낳아서 1년짜리 육아 휴직을 사용 중이에요. 로버트도 육아휴직을 사용해서 6개월 간 한국에 있을 거예요. 한국에는 1년마다 오는데요. 이렇게 길게 있는 건 처음이에요. 


-한국에 오면 독일과 다른 점이 더 잘 보이지 않나요?

한국에 오면 ‘행정 서비스’에서 문화 충격을 받아요. 정말 빠르고 공무원이 친절해요. 도착하자마자 구청에 래아의 주민등록을 하러 갔어요. 독일에선 (주민등록) 예약하면 3개월 정도 걸리고, 당일 관공서에 가서도 2~3시간 기다려야 해요.


근데 한국에선 금요일 오후에 갔는데 30분 만에 끝났어요. 은행 계좌 여는 것도 30분 만에 다 끝났고요. 예약할 필요도 없고 다들 너무 친절한 거예요. 남편이 너무 놀랐죠. 가기 전에 저한테 “금요일 오후인데 예약 안 하고 가도 되냐?”고 물었거든요. 근데 30분 만에 끝나니까.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될 수 있지?"


저희가 진짜 놀란 건 토요일 밤 11시에 지하철 타러 갔는데, 역무실에서 누가 일하고 있는 거예요. 그 늦은 시간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신기했죠. 독일은 아예 사람이 없고 경비하시는 분만 계실 거예요. 언제든 벨 누르면 응답해주는 사람이 대기하고 있고, 그런 행정이 너무 잘 되어 있어요. 


로버트가 또 신기해한 건 ‘1330 관광통역 전화번호’예요. 24시간 연중무휴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통역해줘요. “이런 게 있는 한국은 너무 대단하다.”고 해요. 로버트와 있으면 한국의 새로운 면을 저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점도 보이고요. 


-저도 여러 나라에 사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의 행정 서비스가 탁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근데 그 이유가 뭘까요?

군대 때문이 아닐까요?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들이 지하철 같은 공공기관에서 일하잖아요. 양질의 20대 노동력을 행정으로 값싸게 쏟으니까… 독일에 비해서 한국의 공공 일자리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까지는 좋은 점 위주로 말씀해주셨는데, 안 좋은 점도 꽤 보이죠?

인도, 차도 구분이 없어서 아기랑 다니는 게 힘들어요. 운전자가 보행자 배려를 안 하고요. 차가 횡단보도를 막는 경우도 많아요. 이만큼 자리 주면서 지나가라고 하기도 하고요.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독일은 모든 길에 인도와 차도가 있어서 아기를 데리고 어디든 다닐 수 있어요. 그리고 항상 사람이 차보다 우선이에요.

인터뷰를 마친 후 때마침 횡단보도에 정차해 있는 택시를 만났다. 유모차를 밀던 은영씨는 사진 속 보행자들처럼 택시를 돌아서 길을 건너야 했다. 사진=김병철

제가 너무 무서운 게 로버트가 그런 걸 못 참아요. 자전거를 타니까 어디 가든 교통법을 알아봐요. 한국도 법으로는 사람이 우선이에요. 싸움에 휘말릴 뻔한 게 두 번 있어요. 한 번은 인도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걸 막아서서 “천천히”라고 말해서 싸울 뻔했어요.


다른 한 번은 카센터에서 무슨 통 같은 걸 인도에 세워둔 거예요. 한국 사람이라면 그냥 돌아서 지나갈 텐데 로버트는 그 선을 뽑아버렸어요. “저 사람들이 불법인데 이 정도 복수는 해야 한다”고요. 가게가 인도를 점유하는 그런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거예요.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골목. 인도를 만들기엔 골목이 너무 좁다. 사진 제공=박은영

저도 아기랑 다니니까 스트레스가 심해요. 휠체어, 유모차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인도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계단만 있는 곳도 많고요. 여기 올 때도 지하도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친구들이 유모차를 들어줬어요. 혼자는 절대 못 오는 거죠. 교통 약자가 정말 살기 힘들겠다고 생각해요.


한국이 너무 빨리 발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겠죠. 1970년대와 2020년이 섞여있다랄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서울 공덕에 살아서 그런지, 옆에는 높은 아파트가 으리으리한데 공덕 재래시장만 가도 완전히 다르거든요. 옛것과 새것의 드라마틱하게 공존한 곳. 서울에 살던 외국인 친구들이 모두 하던 말인데 그땐 못 알아들었거든요. 근데 독일 살다 와서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독일의 삶은 어때요?

(한국에 비해선) 굉장히 느려요. 삶이 템포도 느리고 변화하는 것도 느리고요. 저도 스타트업에 일하고, 베를린이 빨리 변하는 도시지만 한국처럼 드라마틱하진 않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어떤 모습이에요?

제 친구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일단 음식이 맛있는 나라, 빨리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인식해요. 싸이, 삼성도 있으니까요. 래아와 공원에서 있으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난민들이 제가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와요.


대부분 방탄소년단 팬 청소년인데요.한국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해요.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고 싶고,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고요. 한국 사람은 예쁘고 옷도 잘 입는 모든 게 환상적인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정말 한류로 한국 위상이 달라진 걸 느껴요. 제 친구가 (동유럽에 있는) 몰도바 사람인데 대장금이 인기래요. 그 친구 할머니가 70대인데 이영애 포스터를 집에 붙여놨대요. 아랍어 자막이 달리는 한국 드라마 앱도 있고요.

베를린의 한 전철역에 있는 매대. 눈높이에 맥주가 즐비하다. 사진=김병철

-은영님이 외국에서 미디어로 접한 한국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상반된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부, 부정부패를 보면서 ‘한국은 멀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동시에 또 국민들이 나서서 시위를 하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멋지구나’라고 생각했죠.


-독일과 한국이 일상에서 다른 점은 뭔가요?

독일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현지채용으로)일한 적이 있는데 ‘하이어라키(위계화된 조직구조·Hierarchy)’가 너무 심해서 힘들었어요. 제가 밤새서 근무하고 다음날 점심에도 너무 바빠서 라면을 먹어야 했어요. 같은 사무실에 일이 많지 않은 대리 분이 계셨고요. 바빠 죽겠는데 누구 한 명이 라면 물을 부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분이 "너가 바쁘지만, 대리인 내가 해야 할까?"하는 거예요. 결국 바쁜 제가 했죠.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가 대신 주문해준 저녁 메뉴가 맛없다고 불평을 했어요. 말을 뱉고 너무나 후회하고 미안했죠. 회사의 위계질서가 나를 괴물로 만드는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자책했어요. 회식하면 높은 분이 가운데 앉아서 나머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분의 재미없는 농담만 계속 들어야 했죠. 사원, 대리, 과장, 차장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 윗사람이 말하면 ‘노(No)’라고 못하는 분위기.


그러다 독일 회사에 들어갔는데요. 제 직속 상사가 CEO였지만 서로 이름으로 불렀어요. 회식에도 CEO는 저 끝에 앉고 뭐라고 해도 직원들이 별로 신경 안 쓰고요. 그걸 경험하니까 한국 회사가 너무 싫더라고요. 왜 직책이 업무가 아닌 사적인 부분까지 결정하는가? 그런 것 있잖아요. 항상 막내가 식사를 주문하죠. 막내는 메뉴 결정도 못하면서요.


-저는 ‘막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봐요. ‘막내’라고 부르면서 그 직책이 해야 할 역할을 부여하잖아요. 식당 가면 수저 놓고 주문해야 하고…

저는 예전엔 잘 할 수 있었는데 이젠 못할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에 돌아오니까 음식도 맛있고 너무 좋아요. 근데 돌아와서 살 수 없는 두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런 (위계적인 조직) 문화와 교육이에요. 

베를린의 상징인 ‘신호등 아저씨’ 암펠만(Ampelmann). 사진=김병철

-독일의 교육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 안에서도 천차만별인 것처럼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좀 다르긴 하죠. 지인에게 들은 얘기인데요. 한국에서 사교육을 안 시켰는데 자녀가 초등학교에 가서 받아쓰기를 많이 틀린 거예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학원 좀 보내라’고 했다고 해요. 여기는 사교육을 안 하면 안 되잖아요.


최근 자녀를 독일로 무용, 미술 유학 보내는 부모님들을 만났는데요. ‘차라리 사교육비를 모아서 나중에 아이 사업자금으로 해줄까’라고 하시더라고요. 초등학생부터 월 200만원은 드니까 그거 모으면 10억원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 거 생각하면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아이의 인권도 빼앗기는 거잖아요.


제가 연봉이 약 3억원인 독일 사람을 아는데 그분은 자녀의 사교육에 아예 관심 없더라고요. 그냥 공교육에 보낸다고 하셨어요. “요즘 경쟁 심해지는데 걱정 안 되냐?”고 물어보니 “사교육을 하면 애들이 놀 시간이 없는데 왜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독일도 사교육 열풍이 분다고 하는데 극소수인 것 같아요.


입시 제도도 많이 다르고요. 독일 대학은 입학이 쉬운데 졸업이 되게 어렵거든요. 입학생의 20~30%만 졸업하고 대다수는 1, 2학년에 관둔대요. 수업이 따라가기도 힘든데, 같은 과목을 3번 이상 낙제하면 다시 못 들어요. 등록금이 무료잖아요. ‘너가 공부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 기회를) 넘겨야 한다’는 거죠. 1, 2학년 때에는 200~300명이 수업을 듣다가 3, 4학년이 되면 학생이 빠지면서 소규모 수업이 된다고 해요.

독일 베를린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사진=김병철

-독일 공교육에 대한 믿음이 있으세요?

100% 신뢰는 아니지만 독일 공교육이 (한국과는) 다를 거라는 기대는 있어요. 적어도 사교육을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아프면 수업 일주일씩 안 나오고 그러긴 하지만요. 어느 사회나 각자의 문제는 있잖아요.


-독일에도 학원이나 과외가 있나요?

있긴 한데 공부 못하는 학생을 위한 곳이에요.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보내죠. ‘나흐힐페(Nachhilfe)’라고 학원 같은 건데 이민자, 저소득층을 위해 비영리로 운영해요.

한국은 보여주기 행정을 잘하죠. 실질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건 잘 안 되어 있잖아요. 구조를 바꾸지는 않으면서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는 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독일은 (행정)서비스는 형편없지만 아픈 사람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걸 잘 되어 있어요. 


-독일인 남편과 살면서 놀란 점이 있나요?

결혼한지 1년 정도 됐어요. 독일인 남편이라서 그런 건지 이 사람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일 놀란 건 첫 데이트 때에요. 제가 좀 춥게 입고 나갔더니, “내가 오늘 한 번만 옷을 주지만 다음엔 추우면 너가 옷 입고 나와”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 다음에 춥게 입고 간 적이 있는데 절대 안 주는 거예요. 자기는 목도리, 장갑까지 다 했으면서. 한국 남자라면 줬을 텐데. 서운했는데 어쩔 수 없었죠.


집에서도 뭘 고치는 건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구 좀 갈아’ ‘이것 좀 해’했더니, 저에게 전동공구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줬어요. “자전거 수리하거나 가구 조립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여자가 못하는 건 없다.” 이렇게 남녀 평등적인 게 있어요. 근데 가끔은 너무 무미건조하고 너무 칼 같으니까 “얘가 날 사랑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말싸움을 할 때도 감정적 싸움은 거의 없고 다 논리적으로 다 풀어야 해요. 그리고 결론이 나야해요. 해결책을 만들고 새로운 룰을 만드는 거죠. 집에 룰이 많아요. 


-육아에 대한 룰이 있나요?

래아를 돌보는 건 50대 50인 것 같아요. 일주일에 각자 3일씩 래아를 봐요. 남은 하루는 패밀리 데이고요. 패밀리 데이는 세 가족이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거예요. 로버트가 효율성을 추구해요. 월수금 제가 래아를 보면, 화목토 로버트가 래아를 보잖아요. 그러면 셋이 같이 있는 시간이 없으니 하루를 정한 거예요. 


이유식도 처음엔 점심은 로버트가 만들고, 저녁은 제가 만들었어요. 근데 점심은 오트밀과 과일이고, 저녁은 야채가 들어가서 오래 걸려요. 제가 이걸 얘기하자 “그러면 일주일마다 점심, 저녁 당번을 바꾸자”고 했어요.


-집안일에 대한 분담도 있나요?

제가 요리를 하면 남편이 설거지를 해요. 로버트는 저녁에도 빵과 치즈를 내놓는 경우가 있어요. 독일에선 저녁에도 빵처럼 찬 식사를 먹기도 하는데, 전 저녁은 꼭 따뜻한 식사가 필요해요. 그걸로 싸우다가 결국 요리는 제가 하는 거로 정했죠.


-독일의 출산, 육아는 어떤가요?

너무 좋아요. 일단 의사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의료진의 차이보다 독일은 자연분만을 중요시해요. 가족 분만실에 아내와 남편이 함께 있고, 간호사가 계속 확인하러 들어와요. 저는 6일 동안 분만을 했거든요. 그게 한국은 되게 비싸대요. 독일은 모든 병원이 그렇고 출산 과정이 모두 무료예요.

출산 전 출산 고통을 모른채 분만실에서 해맑게 찍은 사진. 사진제공=박은영

-영국의 무상의료가 유명하지만 오래 걸린다는 불만도 있던데요.

독일도 그래요. 무상이지만 너무 오래 걸려요. 증세에 따라 병원에서 바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는데, 심각하지 않으면 3~4개월은 기다려야 해요. 한국에선 소아과 갔는데 20분도 안 걸려서 로버트가 문화충격을 받았어요. 

독일에선 래아 태어난 다음에 소아과 병원  8군데를 다니면서 래아의 주치의가 되어 달라고 신청했거든요. 근데 예약해도 가서 1시간 기다려야 하고, 예약 안 하고 가면 4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시부모님과는 어떻게 지내세요?

베를린에 사는데 30분 거리예요. 애를 잘 봐주셔서 제가 일부러 많이 오라고 하죠. 사람마다 다르지만 독일 사람들이 좀 남의 일에 관여를 잘 안 하잖아요. 한국 부모님들은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투자했으니 보상 심리가 있어서 관여를 더 하는 것 같아요. 시댁과 문제는 집을 사줬거나 지원을 해주셨으면 어머니가 와서 반찬이 ‘이게 뭐니’하시는데 독일은 안 해주고 바라지도 않는 문화예요. 독일 애들은 자기 엄마나 시어머니가 애 보러 자주 오는 것도 싫어해요.


저는 그게 문화충격이었어요. ‘내가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냐’고 생각해요. 저는 산후조리도 한 후에 친정어머니가 한 달 와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독일 친구들은 그걸 이해 못하더라고요. 굉장히 독립적인 걸 좋아해요. 저만 시어머니에게 아무 때도 와도 좋으니 와달라고 하죠. 시어머니는 그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시어머니는 ‘독일 며느리라면 눈치 봐서 잘 못 볼 텐데 너라서 (래아를) 자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해요.


독일은 가족관계가 소홀한 것 같아요. 한 번 독립하면 부모님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해요. 근데 저는 아니잖아요. 남편은 (독일, 한국 문화) 두 개를 다 경험했잖아요. 이번에도 남편이 여행 가기 전에 친정어머니가 갈비를 해줬어요. 한국 사람들이 정 많고 그런 걸 알죠. 


다른 건 시어머니는 래아에게 뭘 먹일 때도 제 허락을 꼭 받으세요. 근데 우리 아빠, 엄마는 그냥 래아를 데리고 산책을 가죠. 그러면 로버트가 많이 놀라더라고요.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하루동안 히잡을 쓰고 베를린 “아랍타운”에 갔다. 사진제공=박은영

-독일에서 소수인종으로 사시는 건데요. 인종차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종이라는 이유로 긍정, 부정적 특징을 결부 짓는 것, 고정관념을 갖는 게 모두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인종을 이유로 배제하는 것이요.


예를 들면 터키계 독일인은 항상 이 질문을 받아요. 너 어디서 왔냐고. 그러면 정말 유창한 독일어로 ‘나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 사람’이라고 하죠. 그러면 독일애가 다시 “아니 너 진짜 출신이 어디냐”고 다시 물어보죠. 그러면 터키계 독일인들은 정말 열 받거든요.(미국에서 동양계 미국인이 받는 질문과 똑같네요.)


한국은 인종차별이 정말 심해요. 한국에 있을 때 흑인 친구가 많았는데 지하철에서 아줌마들이 “어머 신기하네”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머리카락을 만지고 가요. 택시 타면 기사가 “냄새난다”고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백인우월주의가 너무 강해요. 저는 아기 정체성이 걱정되거든요. 어느 곳도 속하지 않잖아요. 저는 아이와 닮은 인형을 사주고 싶은데 한국 와서도 백인 인형밖에 없어요. 육아 서적에 나오는 사람도 대다수가 백인이에요. 이런 게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내 눈은 찢어졌는데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인형은 쌍꺼풀 가진 백인 같은 인형인 거잖아요. 저는 그것도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이민자 인터뷰④ 곽원철씨가 찍은 프랑스의 마트 장난감 사진

박은영씨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그의 독일 생활을 더 볼 수 있다.

동서독을 갈랐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 사진=김병철
베를린의 한 카페. I ♡ BERLIN. 사진=김병철
베를린 슈프레강가의 주말 밤 풍경. 사진=김병철
독일 베를린. 사진=구글 맵스 캡처

[독일]

- 기본정보

o 인구 : 8,085만 명(독일인 88.9%, 외국인 11.1%)

o 면적 : 357,112㎢(한반도의 1.6배)

o 인종 : 게르만족

o 종교 : 개신교(30.8%), 천주교(31.5%), 이슬람교(4%)

o 언어 : 독일어

o 화폐 : 유로

o 교민 수 : 39,047명

출처 : 외교부 

 

- 워킹홀리데이 정보

o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 신청 가능

o 관련 사이트 :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 이민 정보

o 영주권 신청 : 5년 이상 체류허가를 얻으면 신청 가능

o 노동허가, 체류허가 : 코트라(KOTRA)

o 관련 사이트 : BAMF 


글쓴이의 한 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 7월 18일부터 1년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유럽→남미→북미→오세아니아→아시아) 이민 1~10년 차 분 중에 저희 인터뷰 콘셉트에 적합한 분을 알고 계시다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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