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의 편협한 비판에 관하여
“선생님, 선생님도 스카이캐슬 봐요?"
또 딴소리다. 학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자면 늘 겪는 일이다. 어떻게든 다른 주제를 던져서 선생의 정신을 홀리려는 얕은 수작이다. 얼마 전에는 ‘호날두가 좋아요, 메시가 좋아요?’ 같은 철 지난 질문을 던지더니, 이젠 꽤나 트렌디해진 학생들이다. 그래봤자 가뭄철 중랑천 수위보다도 얕은 수작인지라, 넘어가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 응. 알기는 알지. 요새 그거 모르면 안 되지.”
“선생님, 진짜로 스카이 가려면 저렇게 해야 해요? 막 집 통째로 그렇게?”
“그래. 근데 지금 미리 해두면 고등학교 때 덜 해도 되거든? 그니까 수업 나가자.”
“아니 선생님, 진짜 그러냐니깐요? 아니 쌤 고등학교 때도 저랬어요?”
1차 진압 실패다. 사실 저 녀석들의 비위에 맞추어, 학창시절 내내 하루 두 시간만 자며 코피는 물론이요 온 몸의 구멍에서 눈물과 피를 쏟으며 쓰러질 때까지 공부했다는 구시대적 무용담을 늘어놓고 넘겨 버릴 수도 있다. 사실과는 굉장히 거리가 있지만,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 귀퉁이가 쿡쿡 쑤셔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2차 진압을 어떻게 할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따끔한 이유가 단지 거짓말을 한 다는 것에 대한 양심통만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앞에 늘어앉아 자동사와 타동사를 낑낑거리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저 녀석들은, 스카이캐슬의 주인공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도전하려면 적어도 상위 20% 안에 드는 성적이어야 하는데, 이 교실 안의 학생들은 하위 20%나 아니면 다행인 수준이니 말이다. 같은 나이에 외고를 준비하며 온갖 영어 자격증을 휩쓰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제 겨우 문장의 5형식을 익힌 녀석들은 아무래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자기네들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무슨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입시교육의 피해자가 될 것이란 공포에 휩싸여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그 성적으로는 피해자 취급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단 ‘스카이캐슬’ 뿐만이 아니다.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친구를 옥상에서 밀어 죽였다는 그 괴담 속의 주인공들도 전교 1등과 전교 2등이다. 아무도 교실 한켠에서 엎드려 자던 전교 173등에겐 관심을 주지 않는다. 분명 수능 응시인원의 54%는 4~6등급일 텐데, 미디어는 늘 상위 10%, 또는 하위 10%만을 주목한다. 실제로 ‘입시 지옥’ 이라 불리는 재수학원들의 상당수는 상위권 대학에 불만족한 최상위권 학생들을 대상들을 주 고객층으로 삼고 있다.
결국 전국 고등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4~6등급 학생의 경우,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상위권 학생들은 혹독한 입시경쟁의 희생자로 묘사되어 동정을 받고,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된다. 또한 하위권 학생들은 사회의 걱정의 대상이며, 이 역시도 이슈화가 쉽게 이루어진다. 그에 비해 중위권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사회의 시선 밖으로 밀려난다. ‘학교를 다니면서 두드러지는 점도 없지만, 별다른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학생’을 기억하고 관심을 쏟는 교사 역시 적다. 그들은 이렇게 교육계에서 소외되고 만다.
대치동의 학생들이 입시 지옥에 빠져 있다고, 온 나라가 주목하는 사이에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한 면목동의 한 고등학생은 잊혀진다. 흔한 보습학원조차 없는 고성의 한 중학생은 잊혀진다. 그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을 적당히 흘려보내듯, 사회 역시 그들을 적당히 흘려보낸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54%는 한 번의 시선조차 받지 못하고 그저, 흘러갈 뿐이다. 이런 다수를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 스카이캐슬의 사회비판은 결국 또 하나의 편협한 비판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