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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Jan 15. 2020

2019년을 톺아보며, 독서 결산.

10권의 장르 불문 도서 추천 글.

첫눈에 반한 사람을 두고 그냥 지나쳐 가거나 전혀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한다면 정말 이상하지 않을까?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좋은 책은 무궁무진하고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읽기 싫은 책, 지금 나의 흥미를 끌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으려 하지 말고 마음이 끌리는 책을 먼저 읽어라.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1권을 재미있게 읽어야 100권을 읽을 수 있다 했습니다. 추천 도서에 맞춰 찾아 읽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직접 끌리는 책부터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6년을 시작으로 연말에 독서를 결산하자는 나의 마음가짐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개인 글은 모두 블로그에 업로드하는데요. 2019년 읽은 도서 157권 중 추천하고 싶은 10권의 책이 있어 작성하다 보니 글이 길어져 브런치에 업로드합니다(2019년 읽은 도서 157권의 리스트는 작가소개란 URL 연결되어있는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제목: 2019년 연말 정리 기록] ).


현재 연재하고 있는 글과는 별개입니다. 

<마침내 미술관> 중에서, 2012 / 안병광 저자






사진제공 | 알라딘

1.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류시화 엮음 | 카테고리 : 시 | 2005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서기관에서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41세기에 걸쳐 시대를 넘나드는 유명, 무명 시인들의 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방에서 눈에 띄어 가볍게 읽으려고 집었는데 한순간 몰입하며 시를 음미했습니다. 장을 쉽게 넘길 수 없던 유명, 무명 시인들의 시들. 류시화 작가가 선정하여 엮은 시들은 좋은 것들이 무척이나 많았고 기억하고 싶은 시들이 많았죠. '시'라는 것이 제게는 문학을 충분히 곱씹지 않아 난해하게 느껴졌는데, 류시화 작가가 선정한 시들을 읽으니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어째서 인류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장르인지 알겠더군요. 영화 <시인의 사랑>에서 택기는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람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영화 <시>에 출연한 김용택 시인은 시에 대해 "인생은 괴로움과 고통의 연속인데 시는 그런 것을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고통과 괴로움은 승화해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지요. 상처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외면적 상처는 눈에 보이니 약을 바르거나 꿰매거나 도려내는 등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내면적 상처는 어디가 다쳤는지,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알 수 없잖아요. 시는 내면에서부터 오는 감정을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며 공감할 수 있고 마음으로 남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시집을 발견하면 들뜬 마음으로 집어서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비슬라바 쉼보르스카가 썼듯이 삶에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 실습 없이 죽는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고

서로 닮은 두 밤도 없다.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

하나 같은 두 눈 맞춤도 없다.

도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중에서, 2005 / 류시화 엮음



사진제공 | YES24

2. <묵묵> | 고병권 저자 | 카테고리 : 에세이 | 2018

고병권 저자의 <묵묵>에는 지난 4년 여간 발표했던 글과 신문 칼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고 있는 이 에세이는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걸었던가. 목적과 이유를 잃고 오래 허둥댔다."라며 반성하고 묻고, 비판하기까지 합니다. 도서의 표지가 가벼워 보이는 에세이인 것만 같아 쉽게 읽으려고 집었는데 굉장한 필력과 곁에 있는 줄도 모른 채 지나쳐왔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묵묵히 걸어가 기록하겠다는 그의 작은 외침이 울림 있게 다가왔습니다. 고병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도 "생이란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다. (...) 우리는 끝을 관통하는 방식으로만 끝에 이를 것이다."라고 쓰고 또 썼습니다. 덧붙여 루쉰의 마지막 글이 미완인 것도 그가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 어떤 것들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것들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사회의 모습, 아픔, 현실에 대해 묵묵히 글을 써 내려가며 그것들을 읽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진중한 에세이 덕분에 예전에는 에세이라면 들춰보지도 않았던 제가 에세이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우리 인생의 끝은 ‘무덤’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 걷고 있으며 이토록 걷고 싶은데 말이다. 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철학자들은 생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생을 대하는 그들 자신의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생이 무엇이라고 거만하게 말하는 철학자들 역시 죽지 않았을 때 그 말을 했다(죽은 뒤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들은, 니체의 말처럼, 모두 ‘생의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생의 가운데’ 있을 뿐이다. 생이란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실험하고 시도할 뿐이다. 우리는 끝을 관통하는 방식으로만 끝에 이를 것이다.

도서 <묵묵> 중에서, 2018 / 고병권 저자



사진제공 | 리디북스

3. <진심의 공간> | 김현진 저자 | 카테고리 : 에세이 | 2017

건축가이자 <진심의 공간>을 쓴 김현진 저자는 늘 우리 곁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건축과 공간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말입니다. 김현진 저자는 가구 하나로, 또는 전망 좋고 교통 편리한 곳에 집을 구해서 살아야 한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그저 자신의 '공간'을 지어야 하는 이유에 주목합니다. 일상의 공간이 너무나도 일상적이지만 그 공간이 진심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텍스트적 건축은 오래된 재료와 잘 설계된 공간, 곳곳에 새겨져 있는 것들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들려줍니다. 책 속의 내용과 시 또한 깊이 있게 다가옴으로써 누구보다 공간에 대한 애착과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만의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고 또 미래에 그려볼 나만의 공간을 상상하며 안락함과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누구에겐 소박할지도 모르는 집이 당사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안락한 집이 될 수 있고 어느 누구에겐 정신없는 집이 당사자에게는 가장 편안한 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곳곳에 저자가 기록한 공간의 사진들은 겉보기엔 어느 것 하나 반짝이거나 값어치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궁극적인 공간일 겁니다. 그 공간 속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으니까요.


사물의 본연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세상과 관계 맺는 법에도 서툴다. 사물과 사물 사이, 인간과 사물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 공간을 가늠하고 자신이 직접 그들을 연결해본 경험이 적어서다. 사물은 우리에게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친다.

도서 <진심의 공간> 중에서, 2017 / 김현진 저자



사진제공 | 위즈덤하우스

4. <공포 다이어트> | 피톨로지 저자 | 카테고리 : 건강/취미 | 2017

다이어트를 성공하기 위한 정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살이 쉽게 빠지지 않을 땐 내 체형을 원망하기도 하고, 온갖 보조제의 효과를 탐색하며 구입을 고민하기까지. 많은 매체의 현혹에 당하기도 하고 효과를 아주 잠시나마 보기도 하겠지요. 우리는 '다이어트'에 대해 왜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부터 체크해야 합니다. 우리가 몸을 가꿔야 하는 건 나의 마음을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해서' 몸을 가꿔야 하는 걸까요? 사실 나는 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타인에게 더 예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매번 실패하는 '다이어트'에 도전하곤 했죠. 누구나 그렇듯 모든 인간은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타인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받고 싶고, 거울 속 내 모습이 사랑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신경전입니다. 이에 대해 <공포 다이어트>는 수많은 가짜 다이어트(자본주의는 괜히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겁니다.)로부터 누군가를 구할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중에 판을 치는 다이어트 방법은 신뢰하는 편이 아닌지라 '이 책을 읽고 얼마나 공감을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으려 집었는데 팩폭(*팩트 폭력의 준말)을 여러번 당했습니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확실히 꼬집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공포 다이어트>는 다이어트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지적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심도 있게 다가옵니다. 저는 이 책이 이름만 '다이어트'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심리학 책이라고도 말하고 싶네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죽어간다. 죽어간다는 것은 삶을 덜어내는 과정이고, 따라서 삶은 본질적으로 더하기보다는 빼기로 이루어져 있다. 살이 너무 많으면 보기 싫은 것처럼, 지식도 많으면 오히려 쓸모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운동을 ‘더’ 하고, 건강에 좋은 걸 ‘더’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뭐가 맞고 뭐가 틀렸는지, 뭘 덜어내야 할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도서 <공포 다이어트> 중에서, 2017 / 피톨로지 저자



사진제공 | YES24

5. <어느 독일인의 삶> | 브룬힐데 폼젤 저자/토레 D. 한젠 엮음 | 카테고리 : 인문/역사 | 2018

<어느 독일인의 삶>은 독일 나치 선전부장 요제프 괴벨스를 위해 일했던 브룬힐데 폼젤의 증언을 정치학자 토레 D. 한젠이 정리한 책입니다. 폼젤은 그 당시 나치의 만행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치 정권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충직한 태도를 보인 그녀였는데도 말이지요. 106세 노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들려주는 회고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까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 또한 많이 반성하게 된 책입니다. 정치적 무관심이 이용되기 쉽다는 것. "우리는 집에서 자연스럽게 순종을 배웠어요. 가정 안에서 사랑과 배려 같은 건 부족했죠. 오히려 우리는 순종하는 가운데 조금씩 서로를 속이고, 거짓말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에 익숙해졌어요."라고 회고하는 폼젤의 증언에 토레 D. 한젠은 '정치적 무관심'을 잘못이라 할 수 없을지언정 도덕적 책임은 면책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뻔뻔하게 보이기까지 하지만 현재 시대에 살고 있는 일부 정치에 무심한 사람들 또한 나치 시대를 살았더라면 자신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게 폼젤의 주장입니다. 먹고 살 걱정이 최우선이었는데, 연이은 전쟁에 나간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달고 사는,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나치의 만행을 사죄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녀의 회고와 주장은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폼젤처럼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현세대의 정치 혐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인가? 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입니다. 폼젤의 삶은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이 부족할 때 이기주의가 어떤 결과는 낳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자 경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끔찍한 일들을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보고 있어요. 또 수백 명의 난민들이 바다를 건너다 죽는 것도 보고 있어요. 하지만 그게 끝이에요. 방송이 끝나면 금세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즐겁게 저녁을 보내죠. 그런 걸 본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바뀌지도 않아요. 그런 게 인생이겠죠. 모든 게 그렇게 섞여 있는 게 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도서 <어느 독일인의 삶> 중에서, 2018 / 브룬힐데 폼젤 저자/토레 D. 한젠 엮음



사진제공 | YES24

6. <엄마의 자존감 공부> | 김미경 저자 | 카테고리 : 자기계발 | 2017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순전히 내가 '엄마'여서가 아닙니다(나는 미혼입니다). 친언니가 출산하고 나서 산후우울증을 살짝 겪었고 그 우울증을 생각하며 동생이 줄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읽어 내려간 책입니다. 물론 친언니가 아이를 출산한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서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오히려 내가 '가족'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가 공동체 삶 속에서 어떻게 발달해 가야 하는지, 어려움이 있는 구성원에게는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기까지 누구나 여성은 '초보 엄마' 시절을 반드시 거쳐갑니다. 우리들의 초보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망치고 있는 것 이 아닌지, 잘 키우고 있는 것인지 매일 몇십 번, 몇 백 번 흔들릴 겁니다. 도서 이름은 <엄마의 자존감 공부>이지만 오히려 나는 한 개인으로써,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존감"을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스스로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 넘어져도 별일 아니라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 내 길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입장에서 자존감도 적고 덜 자란 우리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겪을 때 "큰일 났다. 어떡하지?" 하며 고민하게 됩니다. 아이가 공부하지 않고 다른 것에 매진해 있을 때에도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텐데..."라며 속앓이를 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자식에게 살다 보면 단편적인 과정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긍정적인 결과로 도출해줄 수 있도록 "아이의 편"이 되어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학원은 갔다 왔니?", "성적은 어떻게 나왔니?"만 묻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그 시절에 겪을(물론, 지나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고민과 경험을 아이의 편에서 해석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엄마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 주장을 펼치지 위해선 엄마부터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자존감은 홈메이드다. 공부나 예체능 같은 지식이나 스킬은 밖에서 얻어도 되지만, 자존감은 그게 안 된다. 아이 자존감을 키워주는 양분은 부모만이 줄 수 있다. 그런데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무언가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니 무엇보다 부모 자신의 자존감이 가장 중요하다. 자존감이 없는 부모는 아이에게도 자존감을 줄 수 없다.

도서 <엄마의 자존감 공부> 중에서, 2017 / 김미경 저자



사진제공 | 알라딘

7. <마침내 미술관> | 안병광 저자 | 카테고리 : 예술/미술 | 2012

여기 아침부터 퇴근시간까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동네 의원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있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영업사원이라는 직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직서를 들고 상사를 찾아가지만, "나는 자네를 호랑이 새끼로 봤네. 어려울수록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으로 판단했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 회사를 나가려거든 1등을 한 번 하고 나가게. 그때 나간다고 하면 잡지 않겠네." 라며 자신을 믿어주며 한 번 더 기회를 준 상사의 신뢰를 등에 업고 이후 회사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린 영업사원으로 성장합니다. 바로 매출 3,000억 원이 넘는 유니온약품의 회장이자 국내에서 대중들에게 자신이 미술품 수집가라고 발표한 몇 안 되는 컬렉터 안병광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음 수양을 위해 그림을 한 점 한 점 사 모은 영업사원이었으며 30년 만에 '마침내' 석파정에 미술관을 열게 됩니다. 미술 작품은 그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저자에게 그림은 마른 일상에서 숨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으며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볼 수 있게 하는 애정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미술작품 작가의 철학과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에 완벽히 매료된 저자는 미술관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모두가 말렸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미술관 건립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에서 미술이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데요. <마침내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느꼈고 그의 뚝심 있는 실천력에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말렸던 미술관 건립에 대해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 뜻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책 후기를 따로 기재했었는데 지금도 감명받은 책이었으며, 다시 한번 저자에게 이런 책을 펼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 그렇기에 이중섭의 <자화상>은 나에게 깨진 거울이다. 지난 나를 돌아보게 하고 앞날의 나를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그러니 이중섭의 자화상은 나에게 끊임없는 자기 검열의 메아리로 말을 건넨다. 내가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온전히 살아 있음을 스스로 보여 주기 위한 존재의 증명, 그 자체이다. 우리가 모두 삶 속에서 슬픈 자화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내가 누군가에게 타인으로 존재할 때 더 따스해지자. 아낌없이 위안을 주자. 그가 누구 건 더는 외롭게 하지 말자. 그가 나다. 바로 내가 그다.

도서 <마침내 미술관> 중에서, 2012 / 안병광 저자



사진제공 | YES24

8. <숨결이 바람 될 때> | 폴 칼라니티 저자 | 카테고리 : 에세이 | 2016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는 치명적인 뇌 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그들의 죽음과 싸우다가 자신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과 싸우게 된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는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감동적이고 슬프고 너무 아름다운 책"이라고 평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젊은 의사의 마지막 기록을 책으로 담아낸 것인데요. 그 기록이 무척이나 지적이고 유려한 언어로 펼쳐져 그의 본업이 의사였는지 잠시 잊을 정도입니다. 그의 담당의는 "나는 시간이 남았는지 말해줄 수 없어요. 당신 스스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해요."라고 말할 뿐입니다. 폴 칼라니티는 사력을 다해 써 내려갔지만 미완성으로 남긴 이 책을 아내 루시가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집필하면서 완성된 책입니다. 이 책은 문학, 철학, 의학을 넘나들면서 감성과 지성을 결합하며 삶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거의 다 읽어 내려갈 즈음에 나는 너무 슬퍼서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지만요. 그에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문학"의 활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도에 일부 속독하는 책이 있었지만 이 책만큼은 도무지 빨리 읽을 수 없었습니다.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빛나기보다는 모든 문장이 애틋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정말이지 조심스럽게, 정성스럽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도서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2016 / 폴 칼라니티 저자



사진제공 | 리디북스

9. <드래곤 라자> | 이영도 저자 | 카테고리 : 판타지 | 1998(문고본)/2008(양장본)

<드래곤 라자>는 1998년 출간되어 10년간 국내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판매된 판타지 소설입니다. 권수가 좀 많아서(전 8권 / 양장본 기준) 읽기를 주저했는데, 고민하다 집은 책이 최종화에 도달하기까지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 막 출간되었다고 해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만 같은 <드래곤 라자>는 1998년도에 출간되었으니 당시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을지 감이 잘 안 오긴 하지만요. 한국의 대표적 환상 문학으로 자리 잡은 작품인 것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가벼운 오락 소설로 치부할 뻔했는데 캐릭터들이 조우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에피소드들은 흡인력이 굉장히 높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깨닫는 철학적 성찰과 수준 높은 담론에 내가 갖고 있던 판타지 소설의 편견을 확실히 깨부수어준 작품입니다. 저자는 아마도 98년도 당시 한국 판타지 장르에서 아이디어 뱅크 탑이 아니었나 싶었을 정도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색적인 것도 빼놓을 수 없으면서도 유머와 재치를 깨알같이 챙겨 넣은 저자의 기량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경지였습니다. 며칠을 새벽에 잠들며 <드래곤 라자>에 대한 꿈도 꾸고요. 2019년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 가장 몰입하며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별이오."

"별?"

"무수히 많고 그래서 어쩌면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지. 바라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서로를 잊을 수도 있소. 영원의 숲에서처럼 우리들은 서로를, 자신을 돌보지 않는 한 언제라도 그 빛을 잊어버리고 존재를 상실할 수도 있는 별들이지."

숲은 거대한 암흑으로 변했고 그 위의 밤하늘은 온통 빛무리들 뿐이었다. 칼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줄 아오. 밤하늘은 어둡고, 주위는 차가운 암흑뿐이지만, 별은 바라보는 자에겐 반드시 빛을 주지요.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 존재하는 별빛 같은 존재들이지. 하지만 우리의 빛은 약하지 않소.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빛을 뿜어내지."

"나 같은 싸구려 도둑도요?"

네리아의 목소리는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칼의 대답도 평온했다.

"이제는 아시겠지? 네리아 양. 당신들 주위에 우리가 있고, 우리는 당신을 바라본다오. 그리고 당신은 우리들에게 당신의 빛을 뿜어내고 있소. 우리는 서로에게 잊혀질 수 없는 존재들이오. 최소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이상은."

어둠 속에서 네리아의 눈이 별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나는 혹시 반짝인 것은 그녀의 눈물이 아닐까 따위의 생각은 관두기로 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자, 별들은 나에게 빛을 주었다.

도서 <드래곤 라자> 중에서, 1998 / 이영도 저자



사진제공 | 알라딘

10.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 김연식 저자 | 카테고리 : 에세이 | 2015

김연식 저자는 학창 시절부터 기자가 되는 꿈을 품고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겨우 턱걸이로 졸업한 청년이었습니다. 간신히 신문기자가 되긴 했지만 자질이 부족해서인지 3년 만에 사직을 하고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백수가 되었죠. 현재보다 나은 서른을 꿈꿀 나이 스물아홉에 엉뚱하게도 배를 타는 선원이 되었습니다. 기자가 되는 건 그의 오랜 꿈이었는데, 선원 모집 공고만을 보고 바다로 나오다니. 정말 생뚱맞은 이야기였습니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옛이야기에 절로 공감이 갔습니다. 저자는 고단한 현실 앞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푸념하는 청춘들에게 말합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면 틀리고, 넘어지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항해사라는 직업에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너무나 신선한 내용 때문이었는지 저자의 인생 자체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책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꿈의 기준은 다 거기서 거기인 듯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선택은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지요.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안전한 항로보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선택했고, 그 삶을 자기의 방식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스물아홉, 서른을 앞둔 나이에 저지르고 실패하며 성찰하고 일어서며 도전을 계속해 나간 겁니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너무 멋진 저자의 선택. 한 번이라도 독하지 않기엔 청춘이 너무 짧다고 말합니다. 항해사가 되어 지난 4년간 축구 경기장보다 큰 부정기 화물선을 타고 서른두 나라, 마흔여섯 항구에 기항하며 전 세계를 유랑합니다. 항해사라는 직업에 도움을 주는 경험도 담겨 있어 관심 있는 자들에게 도움도 될 것 같습니다.


대학 때는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신문사에서는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려다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고, 백수가 되어서는 세상이 나만 따돌리는 것 같았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링 위에 살 때는 원망과 질투, 비관과 절망밖에 없었다. 질주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으니 푸른 하늘도 먹구름 낀 것처럼 어두워 보였다. 그런데 인생의 항로를 급히 틀어 바다에 가니 그곳엔 경쟁이란 게 없다. 하루를 조금은 지루하게, 그러나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새로운 법칙과 리듬으로 지내는 사이 조금 더 넓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여유도 생겼다.

도서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중에서, 2015 / 김연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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