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도 않는 개그맨

김생민의 영수증

by 이게바라

못 웃기는 개그맨이 있었다.

못 웃겼기에 개그맨으로 입지가 좁혀졌고,

웃기기 위해 설 무대가 없어졌을 것이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개그맨은 당연히 생활고가 따라왔을 테고,

그리하여

못 웃기는 개그맨은 리포터로, 영화 소개하는 사람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그랬던 그가 공중파에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김생민의 영수증>

그 프로에서 보여주는 그의 캐릭터는 극단의 검소한 생활을 종용하는 역할이다.

"스뜌삣!"

헛되게 돈을 쓴 영수증을 보고 그가 하는 말.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에게 어떤 선배, 어떤 PD 등....

무엇보다 수많은 관객이 그에게 '스뜌삣'이라 말했을 것이다.


저번 주 그는 가장 핫하다는 예능 프로 '라디오스타'에 출연하기에 이른다.

이 프로에 함께 출연했던 여행작가로 유명한 전직 아나운서가 그에게 묻는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게 없냐' 고...

그 질문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오히려 그의 진면목을 봤다.

지난 25년간 그는 '미래의 꿈' 이 아닌 '현재'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가장 싼 주유소가 어디인지, 같은 어찌 보면 하찮아 보이는 고민들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작은 삶의 방식을 결정하며 사는 그에게 '미래의 꿈'은 사치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라디오스타'에서 웃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면박을 주던 김구라에게 항의할 정도의 팬덤이 생겼다.

시청자들은 자신의 직장을 내던지고 여행작가가 된 '워너비' 아나운서보다

자동차를 모으고, 피규어를 사 모으는 어느 중견 탤런트보다

그의 삶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는

25년을, 무려 25년을 한결같이 살았다.

사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억제하면서 말이다.

산속에서 수도승처럼 산 것이 아니다.

가장 화려한 연예계에서 자신의 삶을 지킨 것이다.


이런 삶의 태도가 그를 누구보다 웃기는 개그맨으로 만들었다.


이런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한때 웃기지 못했던 개그맨 김생민을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Atomic Blo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