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인사

by 이게바라

설날인 오늘, 여전히 ‘달빛동맹’은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만,


점심은 집에 가서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왔습니다.


명절에는 늘 아버지, 어머니 저 이렇게 식사 후 예배를 드리는데요.


(아! 저는 신이 있더라도 믿을 필요 없다는 주의입니다. 왜 그런지 설명하자면 길어 생략하고 말 이을게요.)


작년 추석 가정예배 성경구절은 이랬습니다.


아버지 의도는 아니겠지만


저번 추석 가정예배 구절이 이번 설 성경구절과 맥락이 이어져 옮겨 적어봅니다.


(호세아 4장 1절~3절)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인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 진리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 이음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진리도 없고 인애도 없고 피가 피를 뒤잇는 땅에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곳이라는 거예요.


전 이 성경구절이 맘에 들었습니다, 무척이나.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구절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미련이나 기대감을 싹둑 잘라주는 느낌이 들어 그랬나 봅니다.


이 가정예배를 본 것이 작년 추석에 불과한데요,


그 사이 저희 아버지는 부쩍 늙으셨습니다.


가정예배를 찬송가로 시작했는데요,

오늘은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르려 했습니다.


헌데 아버지는 자꾸 ‘이제까지 지내온 것’이 맞다며 찬송가를 뒤적이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게 맞다 틀리다 하시며 찬송가를 흥얼거리는 것이 어찌나 웃기던지


이를 악 물고 웃음을 참았습니다.


왜 웃겼냐면 노래를 너무 못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극혐 하는 저까지 합세해 코믹 버전 찬송가를 무사히 마치고,


가정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설 가정예배 성경구절은 이러했는데요.



(전도서 4장 9절 ~ 12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니라


이번 가정예배는 저에게 결혼을 종용하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저에게는 다른 쪽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그것은 오랜 진통 끝에 발족한 <시나리오 창작집단>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도 없고 인애도 없고 피가 피를 뒤잇는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동료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특히 이 구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니라



저의 감독의 꿈은 마모되고 소멸된 지 오래입니다.


그것은 그저 먼 옛날의 추억 같은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꿈을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요.


요즘 더 깊이 제 꿈에 다가가는 느낌입니다.


그 꿈에는 저와 함께 꿈을 나눴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같은 길을 걸어온 동료,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이 감독되는 것을 지켜보려 다큐멘터리도 찍었고,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짜증 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당신들은, 그저 접니다. 당신들이 제 체취이자 발자국입니다.


분명한 것은 피가 피를 뒤잇는 세상에서


영화와 영화를 저버리지 않은 당신들이 저에게는 희망이라는 사실입니다.


내 주위에 많은 희망이 있어 새삼 반갑습니다.


믿기지 않는 년도 2020년, 설날. 홍이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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