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으로

신화를 찢고 들어간 봉감독

by 이게바라

'기생충' 이 칸느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받는 날이 오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거다.


그런 조짐이나 낌새는 있어왔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받았단다.


헐.... 왠열?


아카데미라는 로컬 영화제가 한국에서 만든 영화에다가 주요 부문 상을 몰아주다니!


그저 '희한일 일이 다 있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그렇게 넘겼다.


깊이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난 '영화'에 관한 한 '상'이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유는 이러하다.


과학이나 스포츠처럼 분명한 평가 기준이 있다면 그 상의 의미는 그 기준만큼의 의미를 지닐 텐데


영화란 것이 어디 그러한가?


오롯이 내 개인의 취향만이 우선하기에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이 무엇인지,


세계 유수의 영화제의 그랑프리가 무엇인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짤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을 보게 되었다.


그 짤을 보다가 돌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칫 잘못하면 울 뻔했다.


그의 회자되는 수상 소감들,


'1인치의 장벽' 등은 한 번 생각해야 되는 수상소감이기는 하나 별로 와 닿지 않는 소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말은 미국인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우리야 허리우드, 미드에 단련되어 '1인치의 장벽' 따윈 가볍게 넘을 수 있는 허들일 뿐이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울 뻔한 이유는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를 손에 움켜쥐고 고맙다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봉준호 감독과 같이 감독상 후보에 오른) 감독들은 봉준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어서였다.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봉준호 감독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 한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신화 속 영웅이다.


그야말로 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신화 속 영웅이다.


함께 동참했던 샘 멘데스, <조커> 감독도 대단하지만 이들이 눈에 안 들어올 만큼


이 두 감독은 영웅이다.


영웅이 봉준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봉준호 감독은 영웅들을 가리키며 고맙다고 말하는 거다.


어떠한 SF 판타지도 보다도 비현실적인 장면.


이것은 시공간을 뛰어넘은 봉준호 감독이 신화를 찢어발겨 영웅들이 인간계로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


혹은 봉준호 감독이 신화를 찢고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 다름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제 신화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아닌 당당한 신화 속 영웅이 되었다.


이 비현실적 장면에 눈물 흘릴 뻔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는 이제 더 이상 신화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내 신화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씹어 삼켜 항문으로 배출한지 오래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대한다.


신화를 찢고 들어간 봉준호 감독의 다음 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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