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에게 보내는 팬레터
영화 <파수꾼>을 보고 흥분했던 기억이 1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아직 생생하다.
그 기억을 ‘파수꾼’의 주인공 기태(이제훈 분)의 대사, 영화 엔딩에 했던 대사를 다시 들어봄으로 되새겨본다.
결승에서 딱 만루 홈런치고 MVP 받으면서 인터뷰하는 거야. 그럼 세상이 날 보고 있잖아, 어? 안 그러냐?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시늉을 해보이는) 깡! 야, 보이냐?
씨발, 나를 향한 이 함성 소리, 어? 다 나를 향해서 열광하고 어, 환호하고. 존나 보이냐고, 야, 봐 봐! 동윤아! 야, 씨발, 누가 최고야? 누가 최고야? 어? 동윤이! 야! 누가 최고야?! 개새끼 나 씹네. 누가 최고야? 어?
우리는 ‘파수꾼’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그것은 곧 윤성현이라는 신인감독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윤성현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 감독 이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의 차기작은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후에야 이 영화가 나왔다.
<사냥의 시간>
그렇게 기다렸던 윤성현 감독의 신작은 졸작. 형편없는 졸작.
윤성현 감독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단번에 털어버리면 되는 영화.
하지만 나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적어도 그가 이렇게 졸작을 찍은 이유, 아니 변명이라도 들어봐야겠다.
많은 독립영화가 그렇듯, 적잖은 신인감독들은 성장기 영화를 들고 데뷔를 한다.
‘파수꾼’이 그러하였다.
이 영화가 훌륭한 것은 기태, 동윤, 희준의 관계가 매우 입체적이었다는데 있다.
여느 ‘성장기’영화에서 보여주는 서열 나누기 식 힘겨루기 관계에서 멈추지 않고 더 미묘하게 그들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재능 넘치며 감각적인 윤성현 감독은 거기에 자신의 욕망도 투영하였다. 그의 욕망은 ‘파수꾼’이라는 결과물로 모두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였다.
바로 기태(이제훈 분)의 마지막 대사가 울림이 있었던 이유다.
<사냥의 시간>을 이야기함에 앞서 왜 이리도 ‘파수꾼’ 얘기만 주구장창하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메라 뒤에 숨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윤성현 감독을 불러 세워야 한다.
다시 한 번 ‘파수꾼’ 기태의 마지막 대사를 읊어본다.
씨발, 나를 향한 이 함성 소리, 어? 다 나를 향해서 열광하고 어, 환호하고. 누가 최고야? 어?
그랬다. ‘파수꾼’에 홀릭된 관객들은 그러했다. 특히 영화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정도는 일반 관객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그 같은 시선, 관심, 찬사는 고스란히 윤성현 감독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많은 영화제에 불려 다녔을 것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감독님, 감독님 영화 잘 봤습니다.’ 하며 그를 추켜세웠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영화를 준비했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뜻대로 되지 않았던 거다.
독립영화계와 상업영화시스템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지분이 있음을 강조하며 바꾸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희열을 만끽한 감독은 상업영화의 시스템과 타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 정확하게는 아직 여물지 않은 재능을 가진 신인감독들을 컨트롤할 기획자, 제작자가 없는 충무로의 빈약한 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아! 그렇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윤성현 같은 아이(child)형 감독은 특히 그러하다. 기획부터 믿고 밀어주는 제작자가 필요했던 감독이었다. 결국 윤성현 감독은 홀로 해냈다. 온전히 모든 것을 윤성현 감독에게 짊어지게 한 것이다. 이야기도 혼자 짜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적어도 영화를 보면 그러하다. 영화의 이야기에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것은 그나마 장점으로 보인다.
윤성현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에 그간 시스템에서 겪은 불만 등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그냥 딱 거기까지만 해냈다. 어찌 보면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보다 더 감독의 내면에 귀를 기울인 영화가 되어버렸다. 충무로 시스템에 발을 넣고 10년 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응축된 한을 푸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풀지도 못 했지만)
그런 영화를 누가 보고 싶겠는가!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의 영광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야 했다. ‘파수꾼’은 과거로 돌려놓고 성장한 모습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온 윤성현 감독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 하고 쪼그라든 자신의 모습을 새 영화에 투영하였다. 엄밀히 그 영화는 새로운 영화가 아닌 ‘파수꾼’ 연장선상에 있는 나쁜 습관 같은 거였다.
그럼에도 그는 튼튼한 성장판이 있는 감독이라 믿는다.
<사냥의 시간>
차라리 잘 되었다. 이 영화로 자신의 성장판이 오롯이 드러났으니.
이제 바닥을 드러낸 성장판을 치고 올라올 일만 남았으니.
그리하여
이 영화를 통해 윤성현 감독이 진짜 성장했으면 좋겠다.
아이러니 하게도 <사냥의 시간>의 유일한 장점은 감독의 의지대로 이야기를 끝까지 ‘성장기’ 영화로 밀어붙인데 있다.
‘사냥의 시간’ 마지막 준석(이제훈 분)의 대사다. 이는 윤성현 감독의 다짐과도 같다.
기훈아, 네가 이 메시지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가 살아있다면 볼 수 있겠지? 그자가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했던 말, 기억하지? 그 자 말이 맞았어. 내가 이곳에 있어도 내가 어디에 있든 간에 그 지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어. 나 다시 돌아갈 거야. 내가 죽더라도. 그자도 다시 찾아갈 거야. 더는 도망가지 않아. 싸울 거야. 그게 내가 있을 곳이야.
여기에 나는 이렇게 화답하고 싶다.
‘파수꾼’의 진짜 마지막 대사로.
자신이 최고냐고 묻는 기태에게 했던 동윤(서준영 분)의 대답으로 말이다.
그래, (그래도) 네가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