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다가 흐려졌다. 날씨는 푸근하다.
2017년 가을, 술집을 차리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물건을 버렸다.
그때 손에 움켜쥐고 버려야 하나 마나를 두고 꽤나 고민했던 물건 하나가 있다.
그것은 파란색 야구모자, LA다저스 모자다. 그 모자 챙을 뒤집어 보면, ‘김성수’ 라는 싸인이 되어있다. ‘김성수’는 야구선수가 아니다. ‘김성수’는 영화감독이다.
그 모자는 김성수감독께서 영화 <비트>와 <태양은 없다> 촬영현장에서 썼던 모자다.
김성수 감독님은 내게 그 모자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도 <그들도 우리처럼> 영화를 찍고 박광수감독에게 모자를 받은 적이 있다고.
그 모자를 받아 든 나는 이렇게 다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내 첫 영화, 첫 촬영 날에 이 모자를 쓰고 나가리라.’
그 다짐 비슷한 생각은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왜냐하면 2017년 가을 그 모자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자를 버릴 때 나도 같이 버렸다. 내가 버려지며 내 꿈도 딸려 버려졌다.
그렇게 나를 버려도 나는 여전히 흐릿하게 남아 있다.
흐릿한 잔재가 남아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다.
그 파란색 LA다저스 모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