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화 _ 2020년

by 이게바라

늦은 밤부터 비



가게로 예전에 영화를 함께 하던 도반(道伴)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스크립터였으나 지금은 사업을 하는 친구. 그리고 미술감독, 조명감독, 마지막으로 조감독을 하다가 지금은 시나리오를 쓰며 입봉 준비를 하는 친구다.

미술감독 형은 한때 천만 영화도 한 미술감독이었으나 지금은 저예산 독립영화 촬영장소 헌팅 후 뒤늦게 합류하였고,

조명감독도 요즘 일이 없어 노가다로 돈벌이한다고 하고,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친구는 언제 시나리오를 끝낼지 기약이 없다.


늘 그렇듯 쓸데없는 얘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다가 캠핑 얘기가 나왔다. 스크립터였던 친구는 차박에 빠져있고, 시나리오 쓰고 있는 친구도 주말이면 캠핑을 가 ‘불멍’에 빠진다고 한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다음에 함께 캠핑을 가자고, 모닥불 피워놓고 ‘불멍’하자고 얘기하고는 술자리를 끝마쳤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우리가 다시 모이기까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 예전의 우리는 거의 매일 밤새 술을 마셨었다. 해가 떠야 겨우 술자리가 끝나고는 했던 우리다.

이제는 한 번 모이기가 쉽지 않다. 세월이란 불순물에 부식된 우리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오늘 만남을 주도한 사업하는 막내 여동생이 계산을 하고 자리를 파한다.

그들이 밖으로 나서는데 마침 빗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들 우산을 안 가져온 탓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한다. 그 모습에서 ‘불멍’을 하려 막 피운 모닥불이 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을 떠나보낸 나는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지펴본다.

꺼트리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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