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월 _ 2020년

by 이게바라

초겨울 기온이 떠받든 눈부신 하늘



‘브레이킹 배드’ 영화판 ‘엘 카미노’를 봤다.

오늘은 저번에 못 한 '브레이킹 배드'의 크리에이터 '빈스 길리건'을 얘기하려고 한다.

'엘 카미노'는 ‘브배’의 거대한 이야기 줄기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빈스 길리건’을 느끼기 좋은 이야기다.

‘엘 카미노’는 철저하게 ‘브레이킹 배드’에서 파생된 에피소드다.

우선 ‘브배’의 영화판은 만들어질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이런 식이라면. 달리 말하면 이런 식으로밖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브레이킹 배드’의 아우라는 절대적이다.

대신 ‘브레이킹 배드’의 세계관을 만든 ‘빈스 길리건’을 크리에이터가 아닌 연출자로 온전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놀란’처럼 허리우드에게 각광받으며 데뷔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시스템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꾸준히 공무원처럼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주위 사람은 알았을 것이다. 그가 대단한 크리에이터, 이야기꾼이고,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것을. 결국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다시없을 드라마를 완성해낸다. ‘브레이킹 배드’처럼 시작은 그저 그럴 수 있으나 그 끝은 어마어마한 세계를 구현해 냈다.

‘빈스 길리건’은 크리에이터로는 더할 나위 없음을 이미 증명하고도 남았으나 연출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봤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는 있었다.

그의 연출을 말하기에 앞서 나는 이 영화 기획에 찬성할 수가 없다. 제시 핑크맨이 도망치는 여정은 알 필요 없는 여정이다. 전혀!

‘브배’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 나온 핑크맨이 도망치는 여정 속에 지난 장면들의 기억이 이 영화인데, 그게 뭐? 어쩌라고?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런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브배’의 아우라가 크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다시 월터와 제인을 보는 것만으로, 그들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 의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빈스 길리건’의 연출자적 역량이 보통이 아닌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전혀 이야기로 효용성이 없는 핑크맨이 도망치는 여정. 이야기로 가치는 제로인데 그걸 연출한 것이 흥미롭다. 최고의 이야기꾼이면서 그는 연출자로 욕심도 상당했던 것이다. 아니 연출자로서의 능력이 있었던 그가 허리우드에서 주목해주지 않아 크리에이터의 능력까지 겸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순서가 어찌 되었든 영화 ‘엘 카미노’에서는 ‘브배’에서 사울이 주선했던 그 승합차에 다시 타는 얘기가 전부이다. 거기에 회상 장면이 들쑥날쑥하다가는 급기야 월터가 나오고, 제인까지 나온다. 제시가 일어나 옆방 문을 두드리자 불쑥 나오는 월터에서는 탄성을 지를 정도로 반가웠다.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브배’가 끝나고 5년? 6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조금은 변했는데, 우선 제시가 연륜이 느껴지고, 무엇보다 토드가 살이 엄청 쪘다. 멧 데이먼 같던 토드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처럼 변했다. 그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또 월터가 많이 늙었더라. 번뜩이는 눈매는 없어지고 조금 왜소해진 몸에 할아버지같이 인자한 눈매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제인은 여전히 예쁘더라.

워낙 ‘브배’ 팬이다 보니 잡소리가 많았다. 나는 지금 ‘빈스 길리건’의 연출을 얘기하고자 한다. 그렇다. 그는 지금 이야기는 배제되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 속에서 제시만을 데리고 2시간을 끌고 가고자 한다. 연출자로 본인의 역량을 보여주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충분히 봤다. 그는 영화광이었다. ‘브배’를 봐도 간간이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심장을 쪼이는 장면들이 상당히 많다. 장르영화의 어법을 이미 손에 쥐고 있었던 그였다. 더 나아가 나는 그 모습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모습도 얼핏 엿봤다.

이번 ‘엘 카미노’에서는 이야기 측면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 있다. 바로 Kandy용접을 찾아가 나머지 1,800달러를 받아내는 장면이다. 제시가 문을 열고 등장하자 티브이 볼륨을 줄이는 장면에서 ‘어, 이거 서부영화 시퀀스 같은데...?’ 아니나 달를까 곧 대놓고 서부영화의 시퀀스를 재현해낸다.

빈스 길리건의 취향을 확인해서 흥미롭지만 이 장면이 썩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역시 캐릭터를 표현하는 솜씨다. 이 영화에서는 그 사이 살이 쪄버린 토드 캐릭터가 가장 도드라진 주인공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살쪄버린 모습이 더 어울리기도 한다. 사실 이 인물은 이미 죽은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리 흥미로울 것이 없음에도 이 영화에서 가장 풍부하게 살려냈다. 덧붙여 ‘빈스 길리건’이 캐릭터를 어떻게 숨 쉬게 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토드 캐릭터를 결정적으로 설명해주는 세 장면을 얘기하겠다.

그 첫 번째, 토드는 가사 도우미를 죽인다. 자신의 돈을 발견해냈다는 이유다. 그 후에 제시가 시체를 어떻게 할 건지 묻는다. 거기에 토드가 답한다.

Someplace pretty. She deserves that.

뭐지, 이 인간미는....? 자신이 살해한 사람한테 할 소린가?!!

이어지는 장면에서 가사 도우미 시체를 싣고 가는 차 안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Sharing the night togeter’를 여유롭게 따라 부르는 토드. 근데 이 모습이 뭔가 귀엽고 능글맞으면서 티 없이 맑아 식겁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체를 유기하러 가는 차가 천천히 달린다. 그 장면을 무지 큰 트럭이 추월하는 장면으로 확연하게 보여준다. 기가 막힌 연출이다. (이 영화에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체를 유기한 후 토드가 제시에게 어깨동무하며 말한다. 이 장면이 무엇보다 섬뜩한데, 제시에게 진심을 다해 이렇게 얘기한다.

Look at that view. Should be a heck of a sunset. You know what uncle Jack says,

“Life is what you make it.”

이 영화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엉클 잭이라 하면 ‘브배’ 시리즈 중 가장 순수한 악당 중의 악당이다. 나치즘을 숭상하는 타투를 목과 손에 한 캐릭터. 그런 캐릭터의 말을 진리인 양 인용하는 토드. 그것도 진정성 있게 말하는 장면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토드는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에서도 독특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브배’에서 그는 메스암페타민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를 서슴지 않고 죽이는 대목에서 존재를 각인시키는데, ‘엘 카미노’에서 그 아이가 갖고 있던 거미를 정성스레 키우는 대목도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다.

‘브배’의 영화 버전은 안 봐도 무방하나 ‘브배’의 팬으로 안 볼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더욱이 ‘빈스 길리건’이라는 아직은 만개하지 않은 Director를 대면할 수 있다.

나는 ‘빈스 길리건’이란 크리에이터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내공이 들어있는 대목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엘 카미노’이다. ‘엘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이란 뜻이라는데, 제목을 스페인어로 지었다는 것은 그의 목적지가 남미가 되어야 한다는 암시다. 근데 정작 그가 간 곳은 알래스카다. 이것이 ‘엘 카미노’의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다 이유가 있다. 그가 멕시코 반대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곳에 ‘브록’ 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시 가슴에 뼈아프게 박힌 응어리. ‘브록’ 말이다. 그러니 '브록'이 있는 정반대로 향할 수밖에.....

(브록의 엄마를 토드가 죽인 바 있다.)

아~ 내 어찌 이리 인간적인 ‘빈스 길리건’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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