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 했다.
난 ‘천만영화’가 싫다. 무턱대고 싫어하는 건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거 같은데, 언제부터인가는 ‘천만영화’가 될 것 같아만 보여도 덮어놓고 보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천만영화’가 아닌데도 안 본 영화가 꽤 있다. 일테면 ‘백두산’이 그러하다.
‘명량’이나 ‘신과 함께’ ‘극한직업’도 보지 않고 지나쳤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와챠에 가입하면서 ‘극한직업’을 보게 되었다. 사실 ‘와챠’에 가입한 게 작년 가을에 일인데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별 기대 없이 봤다. 하지만 아주 유쾌하게 봤다. 내용만 듣고서는 우디앨런의 ‘스몰타임 크룩스’을 흡사하여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 정도는 참으로 바람직한 ‘우라까이’다.
참고로 ‘우라까이’는 친일적 단어선택이라기보다는 영화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기존에 만들어진 영화를 차용해서 재창조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용어가 아직도 살아남는 것은 이 의미의 맛을 더 잘 살리는 단어가 아직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극한직업’의 감독은 이병헌이다. 배우 이병헌이 아닌 감독 이병헌이다.
이병헌감독이 만든 저예산 영화가 있다. 그러니까 딱 ‘극한직업’이 나오기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제목도 찌질한 <힘을 내요 병헌씨>다. 난 이 보석 같은 작품을 오늘에야 보게 됐다. 이조차도 ‘와챠’를 통해서이다. ‘극한직업’ 보고 난 뒤에 이 영화를 접하니 더 재밌고 더 신선하다.
난 ‘극한직업’ 보다 확실히 <힘을 내요 병헌씨>가 더 재밌다.
“병헌씨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병헌씨는 그날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날을 위해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을 뿐이고, 오늘도 그날에 가까워진 하루일 뿐이다. 병헌씨는 그럼 오늘 힘차게 외친다.”
영화 말미에 (‘인간극장’처럼) 내레이션이 흐른 뒤 병헌씨가 음이탈 하듯 갈리지는 소리로 외친다.
"레디 액뗜~!"
이제 진짜 엔딩.
밤길을 뛰다 넘어진 병헌씨가 바라보는 어두운 하늘이 밝아지며 자막이 뜬다.
이 자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갑니다. 가로등이 꾸부정하게 저를 내려다보며 다그칩니다.
신발의 밑창이나 적실만한 깊이로 사람의 발을 적실 수 있겠어요?
어서 돌아가 시나리오 다시 쓰세요.”
“그러네요. 네 다시 해보겠습니다. 근데요...
저는 사람의 발이 아니라 마음을 적시고 싶네요.. 이번엔 정말...”
이제 진짜 마지막 자막이자 제목인 <힘내세요, 병헌씨>와 함께 엔딩 스크롤 올라간다.
여기 자신의 이름까지 제목에 내걸고 다짐한 이병헌 감독은 10년 후에 ‘극한직업’으로 천육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를 찍게 된다.
내가 이병헌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보다는 <힘내세요, 병헌씨>를 봐서이고, 더 더 그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천만영화’를 한 다음에 ‘명량2’니 ‘신과 함께2’처럼 ‘극한직업2’가 아닌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찍어서이다.
<멜로가 체질>은 넷플릭스에 있어서 이미 본 바 있다. ‘멜로가 체질’은 어떤 의미로 <힘을 내요, 병헌씨>와 결을 같이 한다. 어떤 의미인지는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적어도 이병헌 감독은 흥행영화, 소위 말하는 ‘천명영화’ 덫에 걸리지 않고 자유로운 행보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다음 작품, 내가 사랑하는 아이유가 나와서 더 기대되는 <드림>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