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_ 위대하고 위대하신.....
미정이 직장동료와 식사 중입니다.
수진
그 남자가 어디가 좋아?
지희
어디가 좋은데?
미정
몰라
수진
그놈의 몰라를 그냥
지희
어디가 좋은데? 어, 그 남자의 매력 포인트. 끌림 포인트. 괜찮아. 천천히, 천천히.
미정의 대답을 기다리다.... 다들 포기하고 식사하려는데,
미정
껍데기가 없어. 왜 되게 예의 바른데 껍데기처럼 느껴지는 사람 있잖아. 뭔가 겹겹이 단단해서 평생을 만나도 닿을 수 없을 거 같은 사람. 이 사람은 껍데기가 없어.
지희
이 사람이래, 이 사람.
직원
그게 뭐?
지희
너 그 사람하고 이 사람하고 상당히 거리가 있다. 여기 없는데 ‘이 사람’ 이래.
(지희 가슴을 손을 대는) 여기 있다는 거지.
직원들 까르르 웃는데, 미정도 배시시 따라 웃어요.
여기는 미정의 집. 미정은 아직 퇴근 전이라 없는데요, 기정이 구씨를 노려보다 입을 엽니다.
이제 구씨는 정말 의상이며 헤어스타일이 깔끔해졌습니다.
기정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구씨
(보는)
기정
진짜 해요? 추앙? 위대하고 위대하신 끝내주게 황홀하신.. 이런 거 하냐고요.
창희
(기정을 의아하게 보는)
기정
사귀자고 안 했대. 추앙하라고 했대. 한다고 했대. 한다고 했다면서요?
하이, 히틀러! 위대하고 위대하신, 뭐 이런 게 추앙 아니야? 이런 거, 이런..
창희
불쌍히 여기세요. 올 겨울엔 아무나 사랑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뭐 이렇게 아직..
이 시각 야근을 하던 미정은 돌연 짐을 싸들고 당미역에 도착합니다.
당미역에 도착한 미정은 카페에 들어갑니다.
혹시 1화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그때 미정은 일꺼리를 들고 카페에 가서 이런 혼잣말을 했습니다.
(미정)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거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예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 척.
1화에 ‘당신’은 미정이 설정은 아무나였는데요,
지금 미정에게는 구씨가 있습니다. 때마침 구씨가 들어섭니다.
미정을 방해 안 되게 옆자리에 앉아 묵묵히 맥주를 마시는 구씨입니다.
이를 보는 미정의 혼잣말.
“염미정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미정. 구씨가 에스코트해주네요.
미정
술 참 특이하게 마셔. 멍때리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난 하이해지려고 마시는데.
구씨
나는 차분해지려고 마셔. 술 들어가면 머릿속이 붕 떠서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던 퍼즐 조각들이 착 제자리에 앉는 거 같아. 순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미정
머릿속에 뭐가 왔다 갔다 하는데?
구씨
욕. 욕만 해. 하루 종일 속으로.
미정
누구한테?
구씨
몰라, 나도.
미정
욕에 스토리가 있을 거 아니야.
구씨
없어, 그냥 욕만 해. 욕 안 할 땐 술 마실 때, 잘 때, 이렇게 말할 때
구씨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건 염미정입니다. 미정을 추앙해서 변하는 겁니다.
‘추앙’의 이면을 현아가 뒤집어 까 보여 주네요.
창희
추앙하라고 했대. 대단하지 않냐? 염미정?
현아
그 남자 문제 많지? 느낌이 그러네. 왠지 그 남자 살리려고 한 말 같다, 염미정.
창희
응? 음.....
다음 장면에서 구씨는 트럭에 기름을 넣으면서도 ‘추앙’ 하고 있네요.
구씨
위대하시고 위대하신...
기름을 넣고 가는 구씨를 똘마니 삼식이 봅니다.
삼식
구사장 같습니다.
백사장
뭐? 어디?
삼식
저기, 저 트럭이요.
백사장
야, 걔가 용달을 왜 몰아, 씨.
전화 상에서 언급되었던 백사장이 등장했습니다.
불길한 기운이 서서시 산포시의 구씨를 향해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를 알 리 없는 구씨는 식탁에 앉아 어린 미정이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아있는 사진을 봅니다.
엄마
그거 미정이. 걔는 어려서 카메라 보는 사진이 별로 없어.
산포시에 추앙이 무르익어 가자 여기저기 사랑이 샘솟습니다.
기정은 태훈이 중고거래로 사려는 ‘너바나2집’을 대신 받아놨습니다. (마침 일이 되려니까 산포시에 매물이 나온 겁니다.)
기정은 미정이 편에 달라는 것을 직접 전해주겠다며 토요일 약속을 잡습니다.
태훈과 자연스럽게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한편 창희 친구 두환은 짝사랑하는 곽선생이 보고 싶어 교무실을 찾습니다만 그녀는 없고 그녀의 슬리퍼만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두환이 곽선생의 슬리퍼를 보는 장면은 참 짠하네요.
두환의 스쿠터가 산포시 신도시인 아파트 촌을 가로질러 달립니다.
두환
아파트는 낭만이 없어. 좋아하는 집도 멀리서 볼 수도 없고. 애타는 마음을 오픈하는 날 같은 거를 좀 국가에서 제정을 해줬으면 좋겠어. 우리 같은 샤이한 남자들을 위해서.
창희
샤이한 울 아버지도 결혼해서 애 셋 낳고 잘 사셨어.
두환
마음이 막 달려가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전화도 못 하고, 맨날 톡 사진만 보고, 혼자서 애타고 가슴 졸이고. 대한민국의 나처럼 애타는 사람들 에너지만 다 모아도 원전 하나 돌리고도 남는다. 하 지금 그 정도 에너지야. 방출되지 못하고 눌려 있는 힘이. 아니, 얼마나 국가적으로 손해냐고, 야 한번 생각을 해 봐, 어? 자, 그런 날이 있고 그런 문화가 있어. 그럼 나처럼 이렇게 혼자서 애타고, 뭐 가슴 졸이느라고 에너지 낭비할 일도 없고 얼마나 좋냐고. 국가가 인정을 해주는 거야. 또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매너 있게 딱 거절하는 날. ‘국가의 허락을 받아서 내가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오픈합니다. 사랑합니다.’ 거절 멘트도 국가가 정해 줘. ‘아,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관계로...’ 이거 국민 청원에 올리잖아? 이거 호응할 사라들 꽤 된다, 이거.
창희
그러니까 고백하면 까일 건 뻔한데 포기는 못 하겠고, 하고는 싶은데 내상은 적게 입고 싶고 그걸 나라보고 해달라 그러냐? 그냥 남들은 고백하고 들이대고 까이고 상처받고, 뭐 그러고 살아. 뭘 그걸 나라까지 들먹거리면서, 쯧.
두환
아니, 뭐 맨날 그 소수자, 약자를 위한 그런 정책은 쏟아지면서 왜 연애사의 소수자, 약자를 보호하는 왜 연애사의 소수자, 약자를 보호하는 그런 시스템은 없는 거냐고?
창희
국가가 네 간땡이 작은 것까지 케어해 줘야 되냐고?
두환
그러니까 그런 문화를 만들자는 거지. 자, 이것은 당신에 대한 호의를 최대한 예의를 갖
춰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하고 있는 거다. 저, 한마디로 건강한 연애 문화. 아니 싫어한다는 것도 아니고 왜 좋아한다는 말을 못 해?
창희
국가가 인정해 준다 치자 너 그 여자한테 고백하면 까여, 안 까여? 영혼이 대답해 봐. 까여, 안 까여? 학교는 다녀야 될 거 아니야. 교장쌤 딸한테 들이댔다가 뭔 꼴 나려고, 씨.
두환
고백했다가 까이면은 기억 안 난다고 하면 되지, 뭐. 내가 저, 자전거 타다가 사고 난 사람 두 명 봤는데 둘 다 사고 난 순간의 그 기억이 없대. 쯧 내가 고백했다가 까이면은 니 오토바이로 와 가지고 나 슬쩍 부딪쳐 줘. 내가 할리우드 액션 제대로 해 가지고는 나가떨어질 게. 아, 기억 안 난다는데 뭐 어떡할 거야?
기정
도전. 내가 해볼 게 되나 안 되나.
두환의 이야기를 듣던 기정이 고백하겠답니다.
두환의 곽선생에 대한 짝사랑과 이 긴 대사가 실은 기정의 고백을 하기 위한 밑밥이었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미정과 구씨의 알콩달콩은 동네에도 소문이 날 지경입니다.
늘 소주를 사던 구씨가 캔커피와 빵빠레만 삽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슈퍼아줌마가 구씨가 미정과 걸어가는 것을 보고 이러네요.
“ 미정이 큰일 하네. ”
슈퍼 앞에서 구씨를 맞닥뜨린 미정은 숨기지 않고 자신의 맘을 표현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표현도 ‘추앙’의 범주에 들어가겠네요.
미정
아, 안을 뻔했네, 반가워서.
이 말을 들은 구씨는 그냥 앞장서 걷습니다.
미정
이 동네에 살던 미친 언니가 있는데, 그쪽 궁금하다고 보러 온대서 오지 말랬어요.
서로 안 좋아할 거야.
구씨
왜? 말하기 껄끄러울 때 항상 그러더라. 멈칫, 멈칫.
미정
비슷해, 둘이.
구씨
뭐가?
미정
둘 다 세. 둘 다 거칠고, 투명해.
구씨
(피식) 무슨 투명은.... 미쳤구나.
미정
투명해.
구씨
너 지금 나 추앙하냐?
미정
응.
크~ 이제 대놓고 ‘추앙’ 합니다. 둘은.
왠지 둘은 황순원의 ‘소나기’ 어른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태훈에게 기정이 고백하려는 사실을 미정도 알아버렸습니다.
기정이 발끈합니다.
기정
너랑 같은 부서도 아니라며 너한테 불이익 줄 사람도 아니고, 근데 뭐?
지는 씨, 이름도 모르는 남자랑 별짓 다 하면서.
난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하게, 씨. 확 승질나면 추앙하라고 해 버릴까 보다, 씨.
미정
밥 든든히 먹고 나가. 날씬해 보이려고 굶고 나갔다 또 진땀 빼지 말고.
기정에게 태훈은 여고동창생의 남동생이자, 첫 만남의 기억이 좋지 않았고, 심지어 동생의 직장동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기정이 고백하기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여 전씬에서 두환이 말했던 방식을 고대로 쓰기로 하고 태훈을 만납니다.
태훈
고등학교 때 진짜 매일 듣고 살았어요. 듣다 보면 한순간에 날 어디로 데려다 놓는데 그 감정에 계속 붙들려 있고 싶어서 계속 듣고 또 들었어요. 무슨 중독자처럼.
기정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며칠 동안 계속 듣게 되더라고요. 1번 트랙을 듣는데 저 아래에서 뭔가 막 끓어오르는 게 옛날엔 이런 음악 시끄러워서 잘 안 들었는데, 아, 뭔가 올라온다. 뭔지 올라오지만 올라온다.
태훈
올라오죠, 뭔진 모르지만.
기정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그 사람만 오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이 몇 개의 우주를 달고 오는 것 같아요. 어... 너바나라는 우주도 달고 오고.
태훈
아, 설레네요.
기정
(두근두근)
태훈
집에 가서 들을 생각하니까... 설레요.
기정
(아...)
창희와 두환은 스쿠터를 타고 대기하고 있는데,
기정과 태훈이 카페에서 나옵니다.
태훈
조심해서 가세요.
기정
(인사하고 가려다가) 아, 저기... 아니에요. (인사하고 돌아서는)
(다시 돌아서며) 저, 저, 저기... 죄송해요, 아니에요. 가세요.
(다시 돌어서는) 아, 저.... 제가 한번 떠오른 말은 잘 삼켜지지가 않아서요.
(태훈에게 다가가는) 언젠가 할 거 같은데 그냥 지금 할게요.
혹시 연애하실 맘 없으세요?
태훈
......?
기정
저랑요.
태훈
..!!
기정
아, 연애가 거창하다 싶으면 한번 만나 보는 건....
태훈
아.... 쓰읍 지금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
기정
생각지도 못한 질문인가요? 전혀 감이 안 오진 않았을 거 같은데?
태훈
아, 그...
기정
몰랐어요? 내가 이렇게 웃었는데? 항상 웃었는데?
태훈
아.... 아, 죄송해요. 하, 정말 죄송해요, 그.... 그래서 아...
기정
몰랐구나? 어... 아이고, 당황하셨겠다,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요. 아닌 거 같았는데 그냥 한번 말해 보고 싶었어요. 저 진짜 괜찮아요. 들어가세요, 갈게요.
태훈
아유, 저....
이 광경을 보던 창희 안타까워하다 작전대로 시도하지만
기절은 하지 못한 기정은 손목만 부러집니다.
다음 날 카페 알로하에 현아를 비롯한 정훈까지 다 모였습니다.
막 한 상 차리는데,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다들 처마 밑에 쪼르륵 서 있습니다.
창희
아, 기억상실증은, 옘병. 뭐, 그냥 쪽팔리면 쪽팔린 대로 사는 거저.
인간사가 원래 쪽팔림의 역사야. 태어나는 순간부터 쪽팔려.
빨개벗고 태어나.
현아
맞네.
두환, 정훈
(웃는)
그새 비가 그치고,
정훈
미정이는?
현아
남친이랑 나갔대. 남친 얼굴 좀 보려고 했더니.
두환
잘 생겼어.
현아
그런 거 말고. 야, 그 사람 이름도 모른다며? 내가 남자 좀 보잖아.
보면 그 남자 어린 시절부터 줄줄이 다 나온다.
정훈
무섭다. 남자를 얼마나 많이 만나면 그 정도 되는 거냐?
현아
인간이 원래 한 종자라 한 놈을 만나도 깊이 만나면 공부 끝이야.
정훈
한 종자야?
현아
어, 한 종자더라.
정훈
야. (두환 가리키며) 얘랑 나랑 한 종자야?
현아
다 한 종자야. 다르다고 믿고 싶겠지만 결국 한 종자야.
열등감, 우월감, 자기애, 자기혐오. 정도 차이만 있지 갖고 있는 건 똑같아.
다 있어. 내가 모든 남자들이 다 있었어.
뒤늦게 기정도 자리에 참석한다.
기정
한동안 잠도 못 자고 속이 시끄러웠는데, 그게 없어지니까 살 거 같아, 어.
편해. 진작 까일걸. ....... 무지개다.
소나기 온 뒤 무지개가 떴습니다.
다들 무지개를 찍으려 핸드폰을 꺼냅니다.
창희도 핸드폰을 꺼내는데, 문자가 와 있네요.
지원한 개발팀에 뽑히지 않았다는.
이 시각 미정과 구씨는 미정이 어린 시절 사진 찍었던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아 무지개를 보고 있네요.
미정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세 살 때, 일곱 살 때, 열아홉 살 때, 어린 시절 당신 옆에 가 앉아서 가만히 같이 있어 주고 싶다.
구씨
있어 주네, 지금. 내 나이 아흔이면 지금이 어린 시절이야.
무지개의 시선을 주는 구씨, 그리고 미정.
아, 차라리 여기서 이 드라마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구씨의 과거 때문에 ‘무지개’가 위태롭게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