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코 깨지고 불행은 그렇게 잘게 잘게 부숴서 맞아야 되는데 자꾸 막아서 크게 만들어. 나나 네가 막을 때마다 무서워. 더 커졌다. 얼마나 큰 게 올까?
(앞서 걷는) 너는 본능 죽여야 돼. 도시로 가서 본능을 무뎌지게 해야 돼. 그래서 개구리 터져 죽은 얘기 같은 거 말고 여자들 수박 겉 핥는 얘기 그런 지겨운 얘기를 정성스럽게 할 줄 알아야 돼. 지겹고 지겹게. 그래서 남자가 지겨워서 죽고 싶게. 본능이 살아있는 여잔 무서워.
(멈춰서 미정 보곤) 너 무서워.
(평상에 벌러덩 눕는) 이런 데서 사는 한 넌 본능을 못 죽여.
이때 창희가 나타나 평상, 구씨 옆에 함께 눕습니다.
창희
씁, 이렇게 다정한 모습은 인증 샷을 남겨 둬야...
(핸드폰 꺼내 몇 장 찍는) 형 우리 같이 별 본 사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진짜, 그러니까 가장 사실적인 캐릭터는 창희입니다.
그래서인지 대사량으로 따지면 구씨의 10배가 넘을 텐데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크게는 못 받은 거 같아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박해영작가는 끊임없이 ‘창희’를 등장시킵니다. 심지어 밭에서 떠도는 들개처리도 창희 몫입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들개 잡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라며 하소연을 하네요. 이 얘기를 묵묵히 구씨가 듣고 있습니다.
9화에서 미정은 구씨와의 고민을 현아에게 털어놓으려 찾아갔다가 현아의 연애문제가 더 힘들다는 것을 봤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현아의 고민을 들어줍니다.
미정
이번엔 몇 점이었어?
현아
십.... 오점. 괜찮았어.
미정
어디서 15점씩이나 준 거야.
2화에서 현아 생일날 현아는 100점 짜리 남자를 찾지 않고 적은 점수의 남자라도 그 점수에 만족하고 만난다고 한 적이 있어서 나온 대사입니다.
미정
폭력에 바람에, 다 있는데.
현아
음... 변명에 안 해. 바람 피다 걸렸는데, 어버버버 하다가 바로 잘못했다고 하더라. 아니, 뭐 좀 걸렸다 싶으면 바로 멍청해지는 거 같아. 사고 친 강아지처럼. 야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미친놈들이 한둘인 줄 알아? 그래서 염미정. 니 남친은 몇 점?
현아 역으로로 나온 배우는 이천희 배우와 결혼한 전혜진 배우십니다.
이 드라마에서 염씨 삼남매와 구씨를 제외하고는 나오는 분량에 비해 가장 자기 역할이 뚜렷한 캐릭터인데요, 저는 이 전혜진 배우를 잘 모릅니다. 이천희 배우와 결혼한 지도 몰랐고, 그녀가 출연한 다른 드라마도 전혀 본 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네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나는 겁니다.
<네 멋대로 해라>는 양동근, 이나영이 주연한 2002년도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전혜진 배우는 공효진의 여동생으로 양동근을 쥐잡듯 잡는 되바라진 여고생으로 나옵니다.
저는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전혜진을 배우를 처음 만나 봅니다.
미정
십오점은 넘었네. 변명은 안 하니까.
현아
음, 그리고? ......그리고 변명은 안 하고?
미정
(웃는) 보면 깜짝 놀랄걸? 서울역에서 주워 왔는 줄 알고.
현아
어마어마하구나?
식사를 끝낸 미정과 현아는 차를 마시러 왔습니다.
미정
내가 무서워? 그 사람이 내가 무섭대.
현아
그 인간 너한테 읽히나 보다. 그냥 기라 그래. 무서울 땐 기는 거야.
자식들이 도망갈 생각부터 하지.
미정
문제가 있긴 있어.
현아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졌니? 똑같은 인간을 놓고도 사랑하지 못할 만한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대고 사랑할 만한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또 대. 염창희 몰라? 정아름 서클 렌즈 낀 것까지도 욕하는 거. 야, 나도 껴. 나를 사랑하는 이유 천 가지에도 서클 렌즈가 들어가고 정아름 미워하는 이유 천 가지에도 서클 렌즈가 들어가. 이유 같은 게 어딨냐? 그냥 좋아하기로 작정하고 미워하기로 작정한 거지.
미정이 창희를 만나러 창희 회사 앞으로 왔습니다.
창희
(급하게 나와, 봉투에서 술 꺼내 보이며) 야, 이거 술인데, 이 술 진짜 죽여. 내가 형 빨리 먹이고 싶은데 나 오늘 늦게 끝나 가지고
미정
(술 받아 바로 가는)
창희
형한테 내가 준 거라고 꼭 말해.
창희가 시킨 대로 술을 구씨에게 갖다주는 미정입니다.
미정
오빠가 갖다 주래요.
일부러 핑계 만들어서 온 거 아니고 진짜로 오빠가 갖다주랬어요.
구씨
알어. 문자 왔었어.
저는 ‘문자 왔었어’에서 빵 터졌습니다.
창희 캐릭터 진짜 현실 캐릭터입니다.
미정
할 말 없나?
구씨
(웃으며) 웬일이냐? 지겨운 여자들이 하는 말을 다 하고?
미정
.......
구씨
뭐? 사과해야 되나? 할 말이 있으면 니가 해.
여자들은 꼭 뭐 맡겨 놓은 거 있는 것처럼 툭하면 뭘 달래. 내가 너한테 빚졌냐?
와, 너무 못 되게 말하는가 싶더니만, 곧바로 위로 멘트 나갑니다.
(자작하며) 인생이 그래. 좋다 싶으면 갑자기 뒤통수 후려치고, 뭐 마냥 좋을 줄 알았냐?
미정
병신.
구씨
(보는)
미정
누가 다이아몬드 달래?
구씨
다이아몬드가 더 쉬워. 추앙이 뭐냐? 나 몰라.
미정
들개한테 팔뚝 물어뜯길 각오하는 놈이 그 팔로 여자 안는 건 힘들어?
어금니 꽉 깨물고 고통을 견디는 건 있어 보이고 여자랑 알콩달콩 즐겁게 사는 건 시시한가 보지? 뭐가 더 힘든 건데? 들개한테 팔뚝 물어뜯기고 코 깨지는 거랑 좋아하는 여자 편하게 해주는 거랑 뭐가 더 어려운 건데?
나보고 꿔 간 돈도 못 받아내는 등신 취급 하더니... 지는?
미정이 나가자 웃는 구씨.
이 웃는 모습에서 둘 사이에 추앙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이 느껴집니다.
다음 날 출근길의 미정... 구씨에게 보낸 문자로 추앙의 불씨에 입김을 불어 넣습니다.
(미정)
이름이 뭐든 세상 사람들이 다 욕하는 범죄자여도 외계인이어도 상관없다고 했잖아.
근데 그게 뭐? 난 아직도 당신이 괜찮아요. 그러니까 더 가요. 더 가봐요.
아침 바람이 차졌단 말이에요.
미정의 문자를 보고 구씨가 한 행동이 돌연 백사장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구씨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는 나중에야 어림잡을 수 있습니다.
구씨
(신문을 들어 읽는) 2분기 수출, 투자 뚝 정부가 5개월 연속 경기 부진 판단을 내렸다. 2005년 3월 정부가 매달 경제 동향을 공식 발표해 온 이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백사장
야, 근데 뭐 하는 거냐?
구씨
내 파트너가 말이 없어서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해. 그래서 내가 말이 좀 느려졌어. 심지어 버벅대. 간만에 왔는데 버벅대면 폼이 안 나잖아.
백사장
(픽 웃는) 아, 씨.
구씨
내가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열 받아서. 뭐 때문에 열받았나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쇼할 놈으로 보여? 내가 왜 망가진 척 쇼를 해야 되는데? 어? 나 쉬는 거야. 15년을 이런 지하에서 술 취한 인간들 떠드는 소리, 노래하는 소리. 하, 집에 들어가면 또... 간신히 걸어만 다녔어. 숨만 붙어서. 근데 죽기 전에 네가 나 살려 준 거야. 내 뒤통수 쳐서. 고맙다.
백사장
이제 반말을 막 까네, 이 새끼가.
구씨
그럼 뒤통수친 놈한테 형이라 그럴까?
내가 요즘 싱크대도 만들어야 되고 좀 바빠. 내가 결정 나면 올게. 싱크대가 좋다. 이 세계 접으련다. 아니면 아무래도 이 세계다. 내가 씹어 먹어야 겠다. 둘 중 하난데, 내가 결정 갖고 올 테니까 기다려. 자꾸 알짱대면서 열받게 하면 그땐 나 진짜 이 세계에 내가 말뚝 박는 거니까 조용히 기다리라고. 응?
구씨 여기서 마지막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응?’ 다른 건달들과 다른 레벨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참 멋집니다.
구씨가 방에서 나가자 백사장은 어땠냐면, 숨을 탁 놓습니다. 그만큼 긴장탔다는 것이지요.
구씨 이 바닥에 보통 인물이 아닌 겁니다.
이제 구씨는 미정 앞에 섭니다.
그러니까 구씨는 미정을 제대로 ‘추앙’하기 위해서는 처리해야 할 ‘백사장’이 있었던 겁니다.
다시 만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이쁜데요, 구씨는 트럭 창에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고, 미정은 헐레벌떡 그를 보러 뛰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