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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Jul 22. 2022

6월 30일  목 _2022년

> 11화 바지 끝단이 무거운 여자          



11화의 시작은 롤스로이스가 엽니다.      


정훈  

뭐 하던 사람이래구씨     


창희  

모르지근데 왠지 쭉 몰라야 될 거 같은 느낌

형 뭐하던 사람이에요묻는 순간 차 끌고 사라질 거 같은 느낌     


정훈  

이런 차를 모는 사람이 니네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거야싱크대 공장에서     


기정은 미정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여는데요,      


기정  

불안하냐배포를 좀 키워라세상 모든 좋은 게 다 내 거왜 내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데세상 제일 좋은 남자도 내 거세상의 모든 돈도 다 내 거     


미정  

시끄러워     


기정  

나중에 나 돈 좀 꿔주라뭘 꿔줘그냥 줘     


이 장면은 미정이 현실 캐릭터가 아닌 걸 보여줍니다. 

미정이 말하는 ‘추앙’에 좋은 차 같은 건 없나 봅니다. 

그보다는 미정을 거슬리게 하는 건 직장 내 빌런입니다.      


최준호  

(미정의 바지를 보며그런 바지는 어디서 사언제 샀냐고 물어봐야 되나

그 바지 끝단이 무거운 여자 간만이라그 보기에도 답답하지 않아  

답답.. 아유패션이나 디자인이나 다 디테일인데디테일     


이 빌런과 퇴근길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게 되는데요,      


최준호  

해방클럽은 뭐하는 데야뭐에서 해방되는 건데?     


미정  

인간한테서요지겨운 인간들한테서요.     


미정은 구씨와 한잔해요.      


미정  

개새끼촌스러운 게 무슨 상종 못 할 불가촉천민을 상대하는 것처럼내가 싫어하는 새끼 나 싫어하는 거 당연하지내가 훨씬 더 싫어할걸나는 그 새끼 경멸해조직에 있을 때나 있어 보이지 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회사에서 인원 감축하려고 희망퇴직자를 받는데 있어 줬으면 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갔어여기저기 오라는데 많으니까나가 줬으면 하는 사람은 안 나가 갈 데가 없으니까그렇게 남은 인간이 그 인간이야     


구씨  

원래 약한 인간일수록 사악해그래서 사악한 놈들이 좀 어짠한 면이 있어초대 한번 해한번 불러들에 풀어놓고 종일 잡자니가 이겨     


미정  

당연히 이기지. (술 한 모금화내서 한 번도 기분이 나아진 적이 없어

화를 안 내고 넘어가면 이삼일이면 가라앉을 거 화내고 나면 열흘은 넘게 가     


구씨가 끓여온 라면을 먹는 미정입니다. 

미정에게 가장 맛있는 라면은 구씨라면이에요.      


구씨  

저녁이 되면 이쪽에서 바람이 들어와밤이면 풍향이 바뀌는 집도 달이 보이는 집도 여기가 처음창문에 달 뜨는 집은 동화책에나 있는 줄 알았지

달빛이 좀 뭔가 이상했어나중에 알고 보니까 가로등이 나갔더라고가로등 고치고 나니까 그 맛이 안 나.     


가로등 아래 서 있는 미정과 구씨가 가로등 아래 서 있는데, 

구씨가 돌을 집어 단번에 가로등을 깨버립니다. 

이제 달빛이 맛이 나는 거 같네요.      


미정  

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애그래서 밤이 더 제정신 같애     


미정과 구씨는 가로등 하나 깬 것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갑니다. 

 

미정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성적원하는 학교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신한테신인데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나 뭐에요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난 왜 늘 슬플까왜 늘 가슴이 뛸까왜 다 재미없을까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애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난 합의 안 해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살아서 천국 볼 거야     


언덕 위에 어둠 속에 올라가 가로등 불빛을 내려다보는 미정과 구씨가 키스합니다.

그러고 보니 ‘미정’의 이름이 괜히 ‘미정’이 아닌 겁니다.

구씨는 아예 이름을 모르고 이름이 미정인 미정이 어둠 위에서 키스합니다.

‘미정’이 진짜 ‘미정’이 되는 순간입니다. 

둘이 키스하는 이 어둠 위가 곧 천국입니다.     

미정의 직장 빌런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네요.      


보람  

언니 정말 이렇게 고칠 거예요

저 인간이 지시한 것보다 언니가 한 게 백배 나아요저 인간은 그냥 팬시해인간 자체가 팬시해언니는 훨씬 기품이 있어요언니 디자인한 건 항상 가만히 보고 있게 만들어요그래서 내가 맨날 언니 거 보면서 질투하는데 하진짜 이렇게 고칠 거예요?

나 이거 브랜드 실에 그대로 갖다주고 싶어저 인간이 일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좀 알려주고 싶어     


미정  

(여유너 나 추앙하니     


이제 미정은 ‘미정’이지 않아요. 확실해요. 자존감이 확실히 올라왔어요. 

하지만 기정은 지금 화가 나 있는 상태에요. 태훈에게 연락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아, 지금 연락이 왔네요.     


기정  

오늘?     


김이사  

오늘은 너무 했다며칠 미뤄 그렇게 기다리게 했는데.     


박진우  

여자한테 연락하면서 오늘은 매너 없는 건데일단 튕겨요한 방에 오케이 하면 재미없어요남자가 제일 애간장 녹을 때가 줄 듯 말 듯올 듯 말 듯 그럴 때 그때가 죽음이에요릴랙스 하시고 괜찮아요미뤄요남자는 애타게 해봅시다염팀장님남자 좀 기다리게 해봐요어떻게 맨날 본인만 기다려?     


김이사  

언제 보기로 했어?     


기정  

내일요     


김이사  

많이도 미뤘다     


박진우  

그게 염팀장님 매력이죠     


기정  

근데요애타는 게 좋은 거예요왜 좋아요애가 타는데익는 것도 아니고 타는데마음이 막그거 안 좋은 거잖아요불편한 거잖아요남녀가 사귀는데 뭔가 가득 이렇게 충만하게 채워져야지 줄 듯 말 듯 찔끔찔끔 그게 뭐야밥도 그렇게 주면 살인 나요근데 왜 애정을 그렇게 얄밉게 줘야 돼요아니간질간질한 게 뭐가 좋아시원하게 박박 긁어 줘야 좋지애타고 간질간질하고 그게 다 불쾌 아닌가요유쾌가 아니라     


김이사  

아니 유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쾌....     


박진우  

불쾌는 아니죠불만족 뭐 불.. 충분은 맞죠     


기정, 곧바로 일어나 급하게 나갑니다. 이를 본 김이사 바로 알아차리고 한마디 합니다.      

김이사  

오늘이네     


맞아요, 기정은 바로 뛰쳐나간 겁니다.      


기정  

머리만 밀면 해방될 것 같아요제가 머리를 민다는 건 그냥 동물이기로 한 거예요이름 없는 동물그렇게 살아도 될 거 같아요여태 죽기 기를 쓰고 산다고 살았어도 얻어진 것도 없고 왜 그렇게 살았나 몰라요그냥 머리 밀면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남자에 대한 욕망다 한 방에 놔질 것 같아요그래서 결심했죠올겨울엔 아무나 사랑하든 머리를 밀든 둘 중 하나는 하자여기서 결정 보지 못하면 평생 머리칼 건사하면서 시달리다 죽을 거다     


태훈  

머리 밀지 마세요     


이때 누나이자 기정의 동창 경선이 들어왔는데 태훈이 가달라고 말합니다. 단호하게. 

경선은 둘 관계의 걸림돌 중 하나인데 태훈이 가볍게 걷어내고 다시 말해요. 

기정이 잘 알아듣게.      


태훈  

머리 밀지 마세요제가 할게요아무나     


기정  

예스     


한편, 

구씨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일당이 백사장이 보낸 줄 알았지만 신사장이 보낸 거였죠. 

신사장은 구씨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구씨는 거절합니다. 

구씨는 미정 옆에 있습니다.      


구씨  

추앙한다     


동화책에나 있을 줄 알았던 달빛이 들어오는 집에 사는 구씨는 동화 속 기사처럼 공주님을 맘껏 추앙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 회차가 많이 남아서 불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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