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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Sep 06. 2024

9월 6일  금요일 _ 2024년

더할 나위 없는 오승욱


이제야 진짜 그를 만났습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진짜 그의 모습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만난 그는 <리볼버>를 폼 나게 차고 돌아온 바로~~


오승욱 감독님이십니다. 



한때 오승욱 감독님을 자주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꽤나 오래전 이야긴데요.... 

제가 한참 영화를 보러 다닐 때, 시네마데크를 종종 찾고는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영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곳은 ‘영화’라는 종교로 귀의한 나 같은 인간에게는 성전이자 법당이었습니다. 

그곳엔 마치 드레스코드를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에 귀의한 신도들이 모였습니다. 

자주 다니다 보니 눈이 익은 관객이 매표소에 앉아있기도 하고, 영사기를 트는 곳을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걔 중에 때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아니 몰라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영화감독 ‘오승욱’.


그 당시 그는 이미 <킬리만자로>라는 영화를 찍은 뒤였습니다. 

사실 그는 영화를 찍기 전이 더 유명했습니다. 

<초록 물고기>는 소설가였던 이창동 감독님이 함께 각본을 썼으니 논외로 하고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오승욱감독님이 거의 다 썼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전해 들었으니, 

저뿐만 아니라 그의 입봉작을 기대하는 관객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입봉 전이 더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그는 안 본 영화가 없고, 모르는 영화가 없다 하였습니다. 

또 시나리오는 얼마나 잘 쓰는지, 그냥 글로 남겨지는 것이 아깝다는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오승욱 감독이 강원도 강릉 인근 어딘가에서 <킬리만자로>를 찍을 당시 촬영중인 시나리오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얀 쌀밥에 시뻘건 피가 몰려들며 시작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당시 봤던 ‘킬리만자로 시나리오’는 강력한 이미지의 향연. 앞을 알 수 없는 전개. 기괴한 결말..... 시나리오를 덮고 나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그런 시나리오였습니다. 

뭔가 찜찜했지만 오승욱감독의 ‘글발’에 미혹되어 막연히 ‘킬리만자로’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영화 <킬리만자로>는 정말이지 싫은, 재미 드럽게 없는 영화였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재밌기 마련인데, 

<킬리만자로>는 영화가 ‘글’을 스크린에 절반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종두’는 진짜 빌런이 되어 영화를 속 시원하게 말아먹어 버렸습니다.

언제고 오승욱감독님을 만나게 된다면 ‘종두’역에 왜 그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꼭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촬영감독을 결정한 것도 ‘종두’역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도 감독의 책임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시네마데크’에서 오승욱감독님을 볼 때마다 시나리오 쓰는 능력과 연출 능력이 같이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킬리만자로>를 안 좋게 본 탓이었습니다. 


그 후....

무려 15년이 흘러 영화 <무뢰한>이 나왔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동트기 전의 어둠을 아름답게 잡아낸 영화. 

시나리오에 묘사된 오승욱 감독님의 '글발'이 이제는 제대로 표현되는 구나, 아니 그런 생각이 불필요한 영화였습니다. 

특히 저는 이 영화의 전도연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최고의 연기는, <밀양>이나 <인어공주>가 아닌 바로 <무뢰한>의 ‘김혜경’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무뢰한’ 속 전도연이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무뢰한>으로 애간장을 태운 후, 

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나온 영화가 바로~

<리볼버> 

전 이 영화를 개봉 첫날 보았습니다. 

이제는 시네마데크를 찾지 않지만, 

혹여 길거리에서 오승욱감독님과 마주친다면, 

깊이 머리 숙여 감독님께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서야 비로소 감독 오승욱을 제대로 만난 느낌입니다. 


<리볼버>는 저에게 <킬리만자로>의 해설판 같은 영화였습니다.

강력한 이미지의 향연. 앞을 알 수 없는 전개. 기괴한 결말..... 

오승욱 감독이 입을 굳게 다물고 복화술 하듯 나지막이 얘기합니다. 

“나는 줄곧 변하지 않았다. 대신 갈고 닦았다.”라고. 

정말 황소 같은 감독입니다. 좋은 것이 너무나도 명백한 감독입니다. 

저는 <리볼버>를 보고 나서야 이제야 <킬리만자로>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많은 관객이 오승욱 감독을 몰라보네요. 

<리볼버>는 과거 미진했던 <킬리만자로>의 해석 판이자, 

오승욱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 시킨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흥행에 참패했기에 분노에 차 몇 자 적어봅니다.


오승욱 감독님... 당신은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건 당신을 몰라준 관객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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