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원했던 영웅, 로빈후드

-로빈후드(2010)

by 레빗구미


중세 영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로빈후드의 전설, 리들리 스콧이 이야기 하다

로빈후드는 중세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1160~1247년경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는 문학 속 영웅이다. 14세기 초반부터 유명해져 서민들의 사랑을 널리 받아온 문학 속의 인물이다. 로빈후드는 이 당시 십자군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이 원하는 바를 잘 받영하고 있는 일종의 설화다. 당시 교황청의 세력이 막강해 짐에 따른 이들의 횡포와 왕권의 횡포는 서민들이 삶을 살아갈 희망마저 짓밟아놓고 있었다. 아마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 문학 작품 속에 로빈후드를 등장 시켜 이런 서민들의 마음을 보다 따듯하고 통쾌하게 하는 보약과도 같은 역할을 일부러 자처했는 지도 모른다. 그 이후 로빈후드의 전설은 두고두고 내려왔으며, 그 이야기는 오늘날 까지 통쾌함을 전해주고 있다.


2010년에 개봉했던 로빈후드는 글래디 에이터(2010)의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한 때 그의 영화에 페르소나처럼 자주 같이 작업했던 러셀크로우까지 등장해 기대감을 높였던 영화다. 영화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는 셔우드 숲의 로빈후드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왕에 의해 죽을 뻔하고, 운좋게 탈출하게된 이후 노팅햄으로 가게 되면서 그가 왜 셔우드 숲에 은신하며 영웅노릇을 시작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 속 로빈후드는 정직하고 바른 말 할 줄 알고, 용맹스러운 모습을 시종일관 보인다.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갖춘 로빈 후드의 비현실성


우연히 영주의 아들 노릇을 시작하는 영화의 중반부부터는 귀족과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이때는 그가 설교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아주 훌륭한 웅변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용맹함과 리더십이 과연 로빈후드에게 합당한지에 대한 이야기적 설명을 부족한 편이며, 영화의 결말부에 왕이 로빈후드를 공공의적으로 몰아세운 후, 로빈후드의 웅변에 동조했던 나머지 영주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결말부에서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허구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볼거리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오락성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놓치지 않은 그 시절의 암울함


로빈후드가 태어난 시절은 암흑의 시절이었다. 왕은 세금의 명목으로 백성들의 곡식이나 돈을 억지로 빼앗아갔는데, 이는 모두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워낙 교황의 힘이 강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백성들의 권리보다는 신의 권리가 우선시 되어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마녀재판같은 비인간적인 일도 많이 나타났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과거를 플래쉬백으로 보여주면서 이런 암흑기가 로빈후드의 아버지 때부터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런 와중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의 사회변혁노력이 계속 시도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로빈후드 아버지가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사회변혁 운동(또는 저항운동)은 로빈후드에서 꽃을 피우는 듯하지만 결국 셔우드 숲이라는 어둠속으로 잠수하고 만다. 마음대로 왕가에 반항하거나 시위할 수 없었던 이 시절에는 동조자를 찾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영화 속 로빈후드가 그렇게 웅변을 잘하고 다른 영주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굳이 셔우드 숲속으로까지 숨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 속 모습처럼 영주들을 설득하고 모아서 왕에 대항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로빈후드를 원하는 사회, 그리고 계속 요구되는 적폐청산


현재 사회에도 수많은 로빈후드가 있다. 이들은 이제 예전처럼 숨지 못하지만, 여전히 예전만큼 힘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많은 활동하는 여러 사회단체들은 본의아니게 정치적이라는 오해를 받거나, 공산주의라는 오해를 받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여러 의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를 사는 백성들의 시선도 이러한데 과거에는 어떠했으랴. 지금보다 소문은 늦었으며, 퍼지는 소문은 다양한 형태로 변질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공식화된 인쇄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구전으로 로빈후드의 활약상이 전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로빈후드의 전설이 더욱 미화되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런 존재를 필요로 한다. 정직하고, 용맹스럽고, 올바른 리더십을 갖춘 존재를 늘 갈망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마블이나 DC영화 같은 영웅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현실에서 볼 때, 그런 존재를 뽑기위해 민주주의의 틀을 빌려 백성을 대변하는 존재를 뽑으려 노력하지만. 그 적폐청산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여전히 세상은 부패했고, 그 부패를 뿌리 뽑기에는 사회의 견제나 내분이 너무 많다. 권력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권리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힘없는 백성들은 언제든 착취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아니 어쩔 수 없게 착취당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현재의 로빈후드는 아마도 알게모르게 힘없는 백성들을 돕는 여러 사회단체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대도 조세형이라는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 많이 미화되긴 했지만 그는 늙어서 까지 도둑질 하는 버릇을 참지 못해 여러번 감옥에 갔다. 아마 로빈후드의 말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가 했던 일들은 분명 백성들을 위한 것이 었고,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방법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에 어쩌면 로빈후드 자신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하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너무 가공된 이야기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의 부분부분은 꽤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형의 후계를 이어받은 그의 동생은 악한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보여주지 못해 그만큼 설득력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답게 패기와 남자다움이 영화 속에 충분히 들어있지만, 글래디에이터와 비교하자면, 웅장한 느낌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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