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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an 13. 2019

60년대 미국 남부 여행을 위한 아픈 지침서

-<그린북>(2018)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을 실감 나게 그린 <그린북>


우리는 어딘가 여행할 때, 여행지에 관한 안내서나 지침서를 참고한다. 잘 모르는 지역을 방문하여 좀 더 편안하고 좋은 호텔,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기 위해 이런 여행 안내서의 정보는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가는 여행지가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여행 지역에서 보다 안전하고 문제없이 여행할 수 있는 호텔과 음식점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미국의 1960년대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여전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시기다. 특히나 미국 남부 쪽의 흑인들은 여전히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았으며, 갈 수 있는 장소도 정해져 있었다.


영화 <그린북> 은 미국 1960년대를 배경으로 그 당시 미국 내 여러 생각과 판단, 이념이 혼재되어 있던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탈리안계 미국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일하던 바 시설의 수리로 인해 몇 개월간 직장을 잃게 되어 돈벌이가 필요하자 흑인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 박사(미허샬라 알리)의 운전수 일에 지원한다. 돈 셜리 박사가 면접 본 많은 후보들 중 토니를 선택하게 되면서 토니는 흑인을 차 뒤에 태우고 미국 남부 공연 투어를 떠나게 된다.



백인과 흑인을 대표하는 인물, 토니와 셜리 박사 


영화 속 토니 역시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 인물이다. 영화는 초반 토니가 집에 일하러 온 흑인 수리공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그와 그의 가족이 어떤 태도로 흑인들을 대하는지 보여준다. 아내 돌로레스(린다 카델리나)는 흑인에 대한 반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 인물이다. 그는 수리공들에게 시원한 주스를 한 잔씩 대접한다. 반면 그들이 마시고 놓아둔 컵을 싱크대에 놓고 간 걸 본 토니는 그 컵을 세 손가락으로 겨우 들어 쓰레기 통에 버린다. 그리고 TV를 보던 가족들은 흑인 수리공들에 대한 나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이 모습들은 그 당시 미국 내 인종차별이 각 가정의 삶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토니의 가족을 비롯한 여타 일반 가정들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건 그 당시 미국 사회 내 공공연히 인식되는 일종의 관념적인 인식이었다. 흑인들은 더럽고 문제를 일으키며, 백인 가정과 섞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일종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흑인의 생활 반경과 백인의 생활 반경은 서로 완전히 섞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을 무시했던 백인들이 아주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영화 내내 토니의 행동으로 증명된다. 토니는 허풍이 좀 강하고 사소한 예의가 없지만, 그가 일반적으로 나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가족을 중요시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앞에 나서 그 문제를 돕는다. 그와 그 가족이 흑인들에 관해 나쁜 판단을 하는 것은 그 당시 환경의 영향이 컸다. 그 당시를 살던 대부분의 백인들은 그런 편견 속에 평생을 지냈다.


반대로 흑인의 상황은 어땠을까. 돈 셜리 박사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그 재능을 인정받아 백악관 공연도 두 번이나 한 인재다. 그렇게 인정받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인 영역에서는 여전히 범죄자 취급을 받거나 박해당한다. 단지 얼굴색이 검다는 이유로 백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이나 호텔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는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 평생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차분히 그 상황을 피해 가거나 무시한다. 특히나 굉장한 도덕주의자인 그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도덕적인 룰에 위반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른 사람, 특히 백인에게 트집 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전복된 관계 속에 체험하는 흑인 차별


토니는 운전사로 셜리 박사와 공연을 떠나는 모습은 그 당시 시대상황과 반대되는 전복된 관계다. 그래서 토니는 영화 초반 내내 셜리 박사를 이동시키는 역할만 하고 싶어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맨 처음 셜리 박사의 짐을 싣지 않고 집사에게 시키는 장면이다. 이는 그가 어떤 태도로 그 일을 할 작정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토니는 영화 중반까지 그저 운전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셜리 박사는 그런 태도의 토니와 말을 섞지 않는다. 토니가 말을 걸면 대부분 단답형이고, 필요한 말만 할 뿐이다. 토니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소변을 아무 곳에나 할 때 그걸 바로 잡아 주는 건 늘 셜리 박사의 몫이다. 셜리 박사의 도덕적 판단은 일견 답답해 보이지만 그런 조심성이 그를 흑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시켜왔다.


영화는 이 두 캐릭터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아주 세심하게 보여준다. 특히나 두 캐릭터 모두 미국 내에서 주류였던 부류가 아니었다. 토니는 백인이지만 이탈리아계 이주 가정 출신이고, 바에서 문제 해결 등을 도맡아 하지만 특별히 가진 기술이 있는 인물은 아니다. 반면 셜리 박사는 매우 성공한 피아니스트이고, 부유하지만 흑인이다.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는 여행할 때 그린북을 참고해야 하고 백인이 가는 장소에 쉽게 갈 수 없다. 또한 그는 성공한 흑인으로서 일반 흑인과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흑인 사회 내에서도 어울리지 못한다.


두 캐릭터를 살리는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 앙상블


이렇게 사회적으로 고립된 셜리 박사는 그가 처한 사회적 위치 때문에 더욱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으로 채찍질하게 되고, 주변 가족들과도 쉽게 연락하지 못한다. 그의 그런 고독감은 배우 미허샬라 알리의 얼굴로 고스란히 표현된다. 영화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캐릭터가 가진 복합적인 감정은 그가 호텔 방에서 혼자 위스키를 들이킬 때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로  또렷이 드러난다.


토니를 연기한 배우 비고 모텐슨도 훌륭한 배우다. 그는 몸집까지 불리며 이탈리안계 미국인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껄렁한 말투와 행동, 야구에 열광하는 모습 등 그는 미국 내에서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이탈리안계 미국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토니가 셜리 박사의 연주를 처음 들을 때 리듬을 하며 고개를 흔들고, 그의 표정이 환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그 캐릭터가 서서히 변해 나갈 것이라는 걸 표현해 낸다. 그가 가진 특유의 얼굴 주름들은 마치 계산된 것처럼 셜리 박사와의 관계가 변할 때마다 미묘하게 흔들린다. 갈등이 깊어질 때 주름이 늘어나고, 관계가 좋을 때 확 펴진 모습이 그의 감정을 관객에게 체감시킨다.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점점 남부 지역으로 내려가면서 사회적인 편견은 심해지고 백인인 토니까지 흑인과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흑인들과 같이 부당한 판단을 받는다. 게다가 토니가 이탈리안계라는 이유로 순수 미국 백인에게 무시당하는 장면은 그 당시 인종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즉흥적으로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대단한 건, 그 당시에 벌어질 법한 인종차별에 대한 사례들을 아주 차분하게 하나하나 영화 속에 녹여냈다는 것에 있다. 그 사례들은 영화의 전개에 맞게 서서히 강도가 높여진다.  


토니와 셜리 박사의 성장 그리고 각 인종차별에 대한 시각


토니와 셜리 박사는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성장시킨다. 토니는 셜리 박사의 음악과 글 쓰는 실력을 접하며 감성적인 면을 키우고 흑인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 셜리 박사는 토니의 임기응변과 직설적인 돌파 능력 속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본다. 토니가 그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 자신에게 결핍된 가족과 같은 인종,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꾼다. 이 둘의 우정은 그 당시를 뛰어넘어 이 시대의 흑인과 백인, 그리고 다른 인종들의 어우러짐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은  그 당시 시대 상을 하나의 물건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선택이다. 에메랄드 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흑인과 백인이 녹색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사회적 편견이 가득한 사회를 여행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관객의 마음을 따뜻한 녹색으로 물들인다. 거기에 영화 내내 가득 채우는 연주곡들은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영화 <그린북>은 지난 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마허살라 알리)과 각본상, 뮤지컬 코미디 부문 각본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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