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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tgumi Mar 03. 2019

유관순과 함께한 평범한 사람들

-<항거:유관순 이야기>(2019)





사회의 큰 변화를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지나고 보면 아주 크게 보이지만 사실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큰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도 작은 저항들이 이어졌다. 그중에 이후에 영향을 준 가장 큰 움직임은 1919년에 있었던 3월 1일, 삼일 운동 일 것이다. 그 큰 하나의 움직임 이후 임시정부가 마련되고, 국내뿐 아니라 만주 등 다른 나라에서도 독립운동은 확산되었다.


이런 독립운동에 아주 대단한 사람들만 참여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몇 사람의 이름이 역사에 남기 때문이다. 그 외에 그것을 함께 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그들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참여하게 된 계기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삼일운동 이후, 서대문 형무소 안 유관순의 이야기


영화 <항거>는 유관순(고아성)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유관순이 삼일운동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게 되면서 그 형무소 안에서 만났게 되었던 사람들과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초반, 유관순이 감옥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수십 명이 수용되어 있는 작은 방에 유관순이 떨궈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 방에 있던 유관순의 동네 아주머니는 그를 보며 이야기한다.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어! 죽일 년’.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담은 말 한마디 일 것이다.


그 동네 아주머니의 시각은 평소 우리가 집회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 사회가 부당하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부나 공권력에 대항해 집회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그런 집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일제시대 당시 삼일운동,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했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그 의미를 알게 된 사람과 직접 그런 핍박을 받은 사람들은 직접 그런 운동에 뛰어들어 한 몸을 바쳤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런 운동들은 그저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으로 비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그런 개인의 신념은 말로만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식민지배라는 아주 강력한 상황 안에서도 그것에 대항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에게 당장의 생계보다 중요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택했고 어떤 사람은 좀 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인에 종속되어 갔다. 창씨개명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독립이라는 것을 꿈꾸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로 전달되는 삼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영화 <항거>는 형무소에 있는 주요 인물 하나하나와 대화를 해 나아간다. 유관순과 이루어지는 그 대화에서 관객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왜 독립운동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각 사람들의 동기는 다르다. 뭔가 대단한 이유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괴롭혀서, 단순히 일본이 싫어서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도 있다. 크게 대단한 무언가가 운동에 참여하도록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이다.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김향화(김새벽)는 기생 출신이다. 사회 계층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그가 삼일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렇게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그곳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쩌면 참여한 동기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관순이란 인물도 그 대화 속에서 자신이 왜 삼일운동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한다. 자신의 참여로 부모를 포함하여 수없이 희생되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그 자신이 별생각 없이 삼일 운동에 참여한 건 아닌지, 대단한 이유나 대단한 신분적 지위 없이 그저 호기로운 마음으로 참여해 큰 비극만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에 대해 어떤 죄책감을 가지고 괴로워한다. 그 자신 조차 그저 너무 평범하고 힘없는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방식이 옳았는지 혹은 아니었는지를 계속 되묻는다.



그 형무소 안에서도 저항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유관순이라는 인물 하나만의 영향은 아니었다. 유관순은 대범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옆에서 저항의 정신을 전파한 건 평범한 주변 인물들의 영향이 컸다. 결국 중요한 건 일반 대중들의 힘과 전파력이다. 영화 초반 삼일운동에 참여한 유관순을 욕하던 아주머니는 집회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독립운동이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주기보단 큰 희생을 준다는 부정적 인식은 어쩌면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저항에 대한 두려움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잠재우는 것 또한 일반 대중의 힘이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정확히 일 년 후에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다시 한번 만세가 울려 퍼진다. 영화 속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고 어렵지만 그 만세가 하나의 방에서 모든 방으로 확산되는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아무 권력도, 돈도, 신분도 희미했던 대중들이 다 같이 만세를 부르며 저항하는 그 순간, 권력자들은 당황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희망의 빛은 더 넓은 세상으로 퍼진다. 집회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유관순의 만세에 동조하고 그 뜻을 같이 한다.


평범하게 모인 촛불과 같은 평민들 그리고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


우리는 촛불이 하나하나 모여 무수한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곳에 분명 눈에 띄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촛불 혁명이 힘을 얻은 건, 바로 그저 평범한 소시민들의 행동 때문이다. 삼일운동도 그 작고 평범한 불씨를 가진 일반 민중들이 모여 이룩한 혁명이다. 그렇게 모여 부른 만세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만주까지 퍼짐으로써 훗날 독립 저항의 힘을 기르고 결국 독립까지 이루는데 큰 힘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존재한다. 영화 속 친일파인 정춘영(류경수)처럼 한국인에게 더욱 독하게 몰아붙였던 사람들은 해방 이후에 별다른 심판을 받지 않고 평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런 친일파의 후손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그것의 뿌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배우 고아성의 돋보이는 연기


이 영화는 배우 고아성의 영화다. 유관순을 연기한 고아성은 그가 출연한 여느 영화보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일본에 저항하는 강인한 눈빛과 오기, 주변 사람을 챙기는 따뜻함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의 연기는 내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아성의 연기 덕분에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나서 웬만해서는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만든다. 유관순의 강인하고 당당한 모습과 함께 그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저항에 참여하게 되었고 또 어떤 어려움 속에 살아야 했는지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는 좋은 영화다. 적어도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부끄럽지 않은 완성도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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